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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자본주의의 적>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21-05-18

정지아 지음 / 창비 펴냄

소설집 첫 번째 단편인 <자본주의의 적>을 몇줄 읽다 보면 ‘이거 자전소설인가?’ 하고 표지로 돌아가 작가 이름을 확인하게 된다. 첫장부터 ‘정지아, 하면 <빨치산의 딸>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대다수인 마당에’라고 시작하는데 소설을 쓴 작가 이름이 정지아다. 그의 첫 소설은 남로당 일원이었던 부모의 삶을 재구성한 <빨치산의 딸>이었고. 이름만 빌려온 게 아니라 문예창작과를 나와 띄엄띄엄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는 직업 설정 역시 작가의 것이 맞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뒤섞인 내용은 다음 소설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에서도 이어진다. 일찍이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하고 세권의 소설집을 냈으나 지금은 지리산에 살며 지역 대학에 가끔 강의를 나가는 문학박사 정지아 설정 역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가 본인에게서 가져왔는지 헛갈린다.

그런데 실은 대단한 포부 없이 쫓기듯 낙향한 작가를 “진정한 소확행의 삶”으로 오해해 취재 오겠다는 일간지 기자의 전화를 받고 텅 빈 텃밭에 이틀 만에 농작물을 심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그래, 이게 실화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하리. 이렇게 웃긴데…. 열정을 불살라 경쟁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저 식물처럼 밥만 먹고 살아도 만족하는 자폐가족(소설에서 이렇게 언급된다)의 안분지족 에피소드 역시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야망 없는 부모를 닮아 아이들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가 꿈이다. 사람과의 접촉 없이 배달만 하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꿈이라는 중학생 남자애를 이 소설은 비웃거나 가여워하지 않는다.

원두 본연의 향을 살린 브루잉 커피만 팔기에 구례 현지인은 가지 않는 힙스터 카페, ‘펍’이 배경인 <애틀랜타 힙스터> 역시 풍자가 넘실댄다. 미국에서 도태돼 한국에서 저렴한 임금을 받으며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스텔라의 취미는 뜨개질이다. 과잉된 힙스터 카페에서 금발 여성이 뜨개질하는 풍경은 ‘힙스터 갬성’으로 포장되어 인스타그램에 태그(#아직도_코끝에_맴도는_예가체프의_향기)된다. 9편의 소설 중 어느 것은 시트콤이고 어느 것은 전원일기이고 또 어떤 것은 부모님 전상서다. 세태를 냉소하는 것 같다가도, 인물을 껴안는 따듯한 시선에 이내 훈기가 돈다. 재미있다. 소설을 읽는 데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다.

왜 가져야 해?

그들의 삶에는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부재하므로. 아 단하나의 싶다, 가 존재하긴 한다. 이대로 가만있고 싶다는 것. 욕망이 부재하므로 자폐가족은 자본주의의 적이지만 자본주의의 실질적 위협이 될 수는 없다.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그건 모르겠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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