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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엔딩> 감독 우디 앨런 인터뷰
2002-05-21

"돈 번 졸작이 돈 못 번 걸작보다 높이 평가되는 게 현실"<할리우드 엔딩>이라는 영화 제목은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어울릴 법하지 않지만, 그것이 프랑스가 사랑하는 감독 우디 앨런의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돈을 갖고 튀어라> <바나나 공화국> 등 ‘괴상하다’ 싶은 우디 앨런의 초기작을 눈여겨본 것도, 끊임없이 지지하고 사랑해준 것도, 미국이 아닌 프랑스였다. 고소공포증에 광장공포증이 있다는 이 예민한 감독은 칸의 구애를 번번이 뿌리친 것이 맘에 걸렸던 듯, 프랑스 관객과 칸영화제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할리우드 엔딩>을 들고 와, 드디어 레드 카펫을 밟았다. 한물간 영화감독 발(우디 앨런)에게 6천만달러짜리 스튜디오영화 <뉴욕은 잠들지 않는다>의 연출 제의가 들어온다. 문제는 그 영화의 프로듀서가 전 부인(테아 레오니)이고, 영화사 대표가 그녀를 빼앗아간 할리우드의 실력자라는 사실. 상황은 꼬여만 간다. 신경안정제 중독인 그의 예민하고 불안정한 내면은, 자신을 연출자로 추천했다는 전 부인에 대한 미련, 연적한테 고용당한다는 치욕스러움, 동거중인 배우지망생의 좌충우돌로 통제 불가능한 카오스 상태에 이른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다. 포기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상황.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속인 채 영화를 찍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21세기 뉴욕판 베토벤의 비밀이 드러나고, 영화는 폐기처분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때 프랑스 관객이 그의 영화를, 그리고 그를 구원한다. 우디 앨런은 한결 따뜻하고 밝아져 있다.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영화는, 예술을 사칭한 자위에 불과하다”는 대사로 그런 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작품에 프랑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난다.-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뛰어난 감식안을 갖고 있다. 미국영화, 재즈음악은 물론이고, 윌리엄 포크너나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미국 작가들까지 본고장에서보다 먼저 알아보고 인정해줬다. 그래서 늘 고맙고 정이 갔다. 아카데미에 이어 칸에도 나타났다. 무슨 신상의 변화라도 있었나. -올 아카데미는 9·11 사건에 대한 추도의 뜻을 담았다. 뉴욕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칸은 조금 다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영화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 봐줬고 좋아하고 지지해줬다. 칸영화제에도 여러 번 불러줬는데, 단 한번도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어떤 제스처를 보여줘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근 연이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우연이다. 내가 개종을 했거나 은둔자 생활을 청산한 줄로 아는데, 아니다. 몇 시간 뒤에 집으로 들어가 콕 틀어박힐 참이니까. 생애 최초로 레드 카펫을 오르게 된다. 소감이 어떤가. -글쎄, 미소를 지어보일 수 있어야 할 텐데, 많이 걱정된다. 지금 완전히 패닉상태다. 나 자신에게 ‘릴랙스’하라고 타이르는 중이다. 여기에 오기로 맘먹고 기분은 좋았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드 카펫 주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거라는 얘길 듣고, 너무 긴장되고 겁나기 시작했다. 후회해봤자다. 이미 턱시도도 빌려놨는걸. (장내 폭소)할리우드영화는 감독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눈 먼 감독’이라는 설정은 그런 현실을 풍자한 것인지.-할리우드영화는 계산이 많이 돼 있는데, 그게 대개 돈 버는 문제다. 영화가 좋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돈을 많이 번 후진 영화가 돈을 못 번 걸작보다 높이 평가되는 게 현실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라는 30, 40년대부터 그랬다. 감독들은 스튜디오와 싸워 이겨서, 걸출한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체로 보면 아주 적은 편수에 불과했다. 내 자신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속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배우 캐스팅은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찾을 뿐이다. 난 훌륭한 배우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하곤 한다. 사실 난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시하진 않는다. 말을 거의 안 하니까.(장내 폭소) 그런데 배우들이 알아서 잘해준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들을 고르는 것뿐, 그 이상은 아니다. 영화 속에 평론가 집단을 쓰레기로 매도하는 대사가 나온다. 당신 생각의 반영인가. -난 개의치 않는 편이다. 어떤 평이나 기사도 읽지 않으니까. 일일이 평을 읽다보면, 그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읽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인생이 심플해진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평단이 내게 친절하고 관대해진 걸 느낀다. 잘못한 건 눈감아주고, 잘한 건 과장하는 거다. 관객이 외면할 때도 평단은 지지해줬고, 그게 많은 힘이 됐다. 영화 속에 그런 대사가 있었던 건, 문화에 딴죽걸기 좋아하는 캐릭터의 성격상 필요한 설정일 뿐이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당신도 당신 영화를 보며 웃곤 하는가. -그렇다. 영화는 특히 코미디는 무의식에서 나온다. 각본을 쓸 때도 뭘 쓸지 모르는데, 그냥 뭔가가 튀어나온다. 생전 처음 구사하는 유머 같은 것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많이 웃고 즐기는 편이다. 영화 포스터가 당신의 캐리커처다. 채플린처럼 당신도 하나의 코미디 캐릭터가 된 것 같은데. -코미디는 다른 진지한 영화들보다 훨씬 일반적이고 대중적이다. 그런 면에서 자크 타티나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무성영화 속에서 코믹 아이디어를,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해냈으니까. 코미디가 소리를 얻었다는 것은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는 것 같다. ▶ 제55회 칸영화제 Canne 2002 - 영화귀족들, `현실정치`를 고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