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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생 '박지후', 배우의 아우라
임수연 2021-09-02

<벌새> <지금 우리 학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어떤 사람은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순간부터 배우가 된다. 이는 결국 배우가 보는 사람에 의해 평가받는 직업군이기에 가능한 일인데,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이분법적인 구분이나 기술적인 연기를 뛰어넘는 마술적 순간을 동반한다. 박지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관객은 그가 가상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산적 기억을 공명하는 힘이 있는 배우임을 직감했다. <벌새>의 은희와 같은 중학교 2학년 때 첫 장편영화를 만난 박지후는 그렇게 필연적으로 배우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벌새>가 전세계 영화제 59관왕 기록을 세우고 배우 역시 트라이베카페스티벌 여우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와중에도 쉽게 요동치지 않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학생의 모습을 잃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박지후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대단하지 않다고 묘사한다. 자신이 자라온 대구에서 학교도 계속 다니고 있다. “그냥 급식 메뉴 얘기하고 랜덤 게임 하면서 논다. 친구들이 내가 나온 영상을 다 찾아보면서 ‘제발 그렇게 바보처럼 웃지 말고 눈 좀 크게 떠라’, ‘도도한 척 좀 해라’라고 한다. 친구들 때문에 고3은 꼭 대구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또래처럼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파고드는 행위)을 하며 10대를 보냈다는 박지후는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 준비된 스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기에, 팬들이 보여주는 정성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벌새> 10만 관객 돌파 당시 ‘고독한 벌새단’ 오픈카톡방에 (비밀번호도 한번에 맞히고) 들어가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얼마 전 양궁선수 안산이 인스타그램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와,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야지”라고 다짐했다.

최근엔 SNS에서 한지민, 김태리 등 여성 배우들의 화보를 보면 ‘마음에 들어요’를 누르고 위키에 올라온 트리비아도 섭렵하고 있다는 그의 덕질은 “선배 배우들처럼 멋지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동력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기교 없이 날것을 보여주는 연기 스타일은 현실감을 놓지 않는 박지후만의 매력을 배가한다. 함께한 감독들이 그에게 학원 연기를 배우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지후다운 모습이 자칫 정형화된 패턴에 묻히는 것은 경계하되 현장 경험으로 자연스레 터득하게 될 스킬이 더해지면 박지후의 일상성은 더 다채로운 영역에 가닿을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평범성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편하고 안정된 상태로 10대를 마무리한 것은 분명 앞으로 더 빛을 볼 강점이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해 간절한 날갯짓을 하던 <벌새>의 은희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두편의 재난물을 찍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가 배경이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 고립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작품의 규모도 장르도 너무 다른 세계에 적응하는 데 과도기가 있진 않았을까 궁금했던 것도 잠시, “원래 좀비나 감염 소재가 나오는 재난물을 밥먹으면서 볼 정도로 좋아해서 친구들이 ‘너는 왜 이리 음흉하고 음침한 것만 보냐’고 한다. 좋아했던 장르를 직접 연기한다는 게 너무 재밌었다”며 활짝 웃는 모습에 물음표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특히 <지금 우리 학교는>은 박지후에게 “연기에 대한 욕심도 열정도 동시에 불안감도 커졌던” 작품이다. “따로 연기 일기장도 샀다. ‘이 신에서 어떤 언니랑 오빠가 이런 식으로 연기했는데 너무 멋있었다. 배워야겠다’라고 적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그렇게 배운 걸 내 연기에 써먹기도 했다.” 최근엔 백은하배우연구소의 <배우 이병헌>도 많은 성찰을 가져다줬다.

“신인배우보다 더 열심히 대본을 분석하고 플랜 A·B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 많이 배웠다. 학교에서 서평 쓰기와 영어 말하기 수행평가도 그 책으로 했다. 이중 서평 쓰기는 교내에서 우수상도 받았다. (웃음)” 배우의 아우라를 타고났고 일상성을 놓지 않으면서 매 순간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 소녀는 곧 20살이 된다. 찬란한 비행을 위한 채비를 마친 박지후의 눈이 언제나처럼 또렷하다.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첫 연기의 기억

“연기 학원에서 소개해준 오디션을 보고 출연한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2017). 대구에서 촬영했고 사투리도 마음껏 썼다. <벌새>를 보신 분들은 은희가 여기에서는 동생 괴롭힌다고, 세계관을 연결시키더라. (웃음) 이후에 단편 <페노미나>를 거쳐 만난 작품이 <벌새>다.”

롤모델

“내 1순위 덕질 상대인 한지민 선배님. 너무 사랑스럽고 연기도 잘하시고 뜻깊은 일에도 많이 참여하는 걸 보면서 이분은 천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20살 되면 맥주 사주신다고 했는데 그날이 내가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는 날이다. 만약 함께 연기할 수 있다면 <벌새>의 영지 샘과 은희처럼 솔메이트 관계로 나오고 싶다.”

10년 후 나의 모습

“내가 이끌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하고, 떳떳하게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선배 배우님들 덕질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날 덕질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성이든 연기든 태도든 변함없는 박지후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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