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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생 '탕준상', 겸손한 자신감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1-09-02

<사랑의 불시착>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라켓소년단>

<라켓소년단>의 윤해강(탕준상)은 우리가 사랑했던 스포츠 만화 속 소년들을 쏙 빼닮았다. 자기 재능을 뽐내고 으스대며 관심을 즐기는 배드민턴계의 ‘강백호’(<슬램덩크>)는 사실 누구보다 속 깊고 선의로 가득 찬 아이다. 미워할 수 없는 치기와 허세는 탕준상의 그 나이대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과 꼼꼼한 연기를 매개로 현실로 소환된다.

배드민턴 신동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 선수들이 받는 굉장히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것은 물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화면에 잘 담기 위한 계산이 모든 순간에 녹아 있다. “역동작(선수가 움직이려는 쪽 반대쪽으로 공이 날아와 몸을 급히 반대로 움직이는 동작)을 한다든지 자세를 잡기 전에 공을 따라가는 시선을 분명히 잡으면 그 상황이 더 긴박해 보일 수 있다.” 진짜 발목을 다쳤음에도 다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던 에피소드는 배우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볼 때 디테일이 더 돋보인다. “처음에 서브를 넣을 때는 아픈데도 참는 느낌으로, 마지막 스매시는 ‘힝, 속았지?’라는 느낌으로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 사람마다 표현법이 다르다는 것을 배운” 것처럼 탕준상은 작품을 할 때마다 다각도로 무섭게 진화 중이다. 노래와 춤이 그저 즐거웠던 그는 10살 때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디션에서 난생처음 떨어지곤 “어린 마음에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숙제”란다. 뮤지컬에서 매체로 넘어오면서 큰 발성을 낮춰야 했고 긴장할 때마다 몸을 움직이는 습관도 고쳤다.

<생일> 땐 잔뜩 겁먹은 상태에서 전도연·설경구 같은 대선배들의 연기를 입을 떡 벌리고 보기만 했지만 <나랏말싸미>부터 힘을 빼고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7년의 밤> <영주> 때부터 완성형 배우처럼 보였다며, 연기 학원에서 배운 정석 스타일도 아니고 예고 대신 홈스쿨링을 택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연기를 배웠냐고 묻자 드라마 마니아인 어머니 얘기를 먼저 꺼냈다.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를 봐서 배우 연기를 보는 눈이 있으시다. 대사 칠 때 호흡부터 발성까지 예리한 시청자의 눈으로 늘 내 연기를 지적해주셨다.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틀린 연기는 있다. 엄마는 늘 그걸 확실히 짚어준다. 어렸을 땐 인정하기 싫어서 말 안 듣고 반항도 많이 했는데 현장에서 연기를 하다 보면 결국 엄마 말이 다 맞았다.”

더불어 성대모사 등 남을 잘 따라하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는 장기로 소개한 그는 “여러 사람들의 좋은 점을 내 것으로 흡수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 현장에서 만난 이제훈의 연기 스타일을 열심히 관찰한 후 <라켓소년단>에 녹여냈다.

연기라면 못할 게 없는 근성은 타고난 재능에 부스터를 달았다. <나랏말싸미>에서 1분30초 넘는 산스크리트어로 염불 외는 장면을 위해 염불을 알람음으로 등록해놓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따라하며 깼고, 교과서의 주기율표는 너무 싫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연기한 <무브 투 헤븐>에서 “암모니아, 메테인사이올, 황화수소, 다이메틸 설파이드, 트라이메틸아민, 아세트알데하이드, 톨루엔, 자일렌, 메틸에틸케톤…”을 중얼거리는 신은 즐겁게 외웠다. 변성기 이후 제대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건 “발성과 보컬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은 후 정말 자신 있을 때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목소리를 한번 더 가다듬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예능 프로 <무한도전>이 낳은 유행어, ‘하하 유니버스’(자기가 잘난 것을 본인만 모르고 주변은 다 아는 상황)가 떠올랐다. 벌써 눈빛이 완성형 배우라는 평을 받았던 옛날 작품 얘기를 꺼내면 “그때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가관이었다”며 부끄러워하고, 연기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곧 있을 대학 입시가 너무너무 걱정된다”고 한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지 자각하지 못하며 연기하는, 신인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일까? 어느 쪽이든 이 배우를 보면 마음이 살랑인다. 지금 모습이 도저히 성에 안 찬다는 건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의미일 테니.

첫 연기의 기억

“롯데월드 안에 있는 엄청 작은 극장에서 했던 어린이 뮤지컬 <아기공룡 둘리>(2009). 희동이를 연기했다. 이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 무대에 한창 설 때도 이게 연기라고 잘 생각하지 못했다. 나가라면 나가고, 노래 부르라면 부르고, 웃으라면 웃고, 화난 표정 지으라면 화난 표정 짓고. 그땐 그냥 춤추고 노래하고 많은 사람에게 박수 받는 게 기분 좋았다. EBS 드라마 <플루토 비밀결사대>와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진중하게 연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롤모델

조승우, 조정석 선배님. 뮤지컬도 드라마도 영화도 다 하는 모습, 뛰어난 연기력, 화제성을 항상 이끌고 다닌다는 점에서 본받고 싶다. 언젠가 당당하게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꿈이다.”

10년 후 나의 모습

“찍어놓은 영화가 개봉하고, 뮤지컬도 하고 있고, 차기작 드라마 대본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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