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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음악감독 김준석
2002-05-22

한 프레임 느리게, 혹은 빠르게

김준석(29)의 브랜드 네임은 ‘조성우’다.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여전히 그를 설명하는 첫 단어는 “조성우가 키운”이다. 이제 막 자신의 첫 필모를 가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음악감독 김준석에게 그러나 조성우는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라기보단 좋은 앙상블에 가깝다. 지금은 거의 유물 취급을 받는 충무로 도제시스템하에서 14편의 장편 어시스트와 다시 14편의 단편음악 감독을 착실하게 수행한 그의 이력을 듣고 나니 어쩐지 스물아홉이란 나이에 착 감기지 않던 ‘음악감독’이란 직함이 조금 편안하게 느껴진다.

사제관계란, 발가락이라도 닮았으면 싶은 부자관계라기보단 끊임없이 서로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데서 그 발전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 아닌가. 김준석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일단 저랑 조성우 감독님이랑은 화면을 해석하는 것부터 차이가 나요. 그러니까 자연히 음악도 다르게 쓰죠. 물론 제 스스로 감독님과 차별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요” 수제자의 첫 장편 감독에 스승은 일부러 무심했단다. 자고로 ‘감독’의 위치란, 아랫사람의 믿음을 먹고 일어서는 자리기 때문이다. 작업이 끝나고 그 침묵은 조용한 옛이야기 한 소절로 바뀌어 돌아왔다. 조성우의 입봉 당시 얘기, 감독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힘들었던 얘기. 평소에 듣지 못한 속얘기를 들어선지, 아니면 ‘같은 처지’임을 인정하는 발언 때문이었는지 김준석은 처음으로 조성우를 윗사람이 아닌 동반자로 느끼기 시작했다. 김준석이 조성우를 만난 건 97년 대학 동아리에서. 지금도 유명한 서강대 록밴드 ‘킨잭스’에서, 조성우는 11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대선배였고, 영화음악 해보지 않겠냐고 후배들을 쿡쿡 찌르고 다니던 중이었다.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던 김준석은 영화음악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조성우를 따라나섰고, 그게 시작이었다.

얼마 전 음악평론가 성기완씨가 <결혼은…>의 음악을 “약간은 들떠 있다”고 평한 데 대해 김준석은 “의도적 연출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유하 감독은, 영화 속에서 결혼제도에 대한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듯, 영화 밖에선 관객과 화면 사이의 거리두기를 원했고, 따라서 초반에 자주 들리는 언더스코어를 제외하곤, 영화 전반에 걸쳐 음악의 사용은 극히 자제되고 대사의 묘미는 살아난다. 제3세계 음악에 관심이 있던 김준석은 남미의 리듬을 화면에 옮겼고, 의도하지 않은 섹시함을 장면 곳곳에서 연출한다. 또 하나 김준석이 공들인 부분은 ‘타이밍’. 장면이 바뀌면 바로 튀어나오는 드라마식 음악 사용을 최대한 피한 것. 한 프레임 느리게 혹은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김준석의 음악은, 그래서 관객에게 배우의 연기와 대사의 맛을 조금 더 음미하게 하는 여유와 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어린 나이에 감독 입봉을 하며 적잖이 나이 콤플렉스에 시달린 그지만, 지금은 ‘20대에 뭔가 하나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앞선다고.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74년생

서강대 철학과

97년부터 꾸준한 장·단편 음악 작업

현재 M&F(대표 조성우) 소속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