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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워크숍
2002-05-22

조선희의 이창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계간 <문학과사회>가 추모특집을 꾸몄는데, 병상에 누운 그의 마지막 나날들을 지켜본 제자 이인성씨의 <죽음 앞에서 낙타 다리 씹기>라는 글이 실렸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하나의 큰 지성이 지상에서 소멸하는데 결코 세상이 조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인성 소설의 톤과는 정반대로 감정이 격앙돼 있던 그 글이 낯설었고 좀 호들갑스럽다고 느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고 나는 40대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오빠가 암으로 투병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마침내 며칠 전 세상을 떠나보냈다. 그제야 나는 그때 그것이 호들갑도 감상주의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을 반납하고 세상에서 물러가는 절차는 참으로 참담하고 어이없다. 국립 서울대 교수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가 침대 위에 배설하고는 제자에게 기저귀를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절차인 것이다.

내 오빠는 죽음 앞에서 의연하려 했고 자존심 때문에 진통을 참았고 의식이 남은 마지막 순간까지 농담을 해서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죽음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왔고, 처음엔 팔과 다리가 기능을 잃고, 명료하던 의식이 흐릿해지고, 자존심과 염치가 무너지고, 농담하던 혀가 굳어지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듣지 못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호흡이 멎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한때 병원 뒷곁에서 휠체어에 담요를 덮고 앉아 내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하숙생>을 부르던 그 사람이 지금은 한줌의 하얗고 보드라운 재가 되어 오대산 기슭의 수풀 사이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공기와 흙 속으로 조금씩 흩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이란 사방에 널려 있지만 자기 발끝에 채여야 비로소 알게 된다. 형제의 죽음을 겪고나니 무심코 흘려듣던 말들이 다시 의미를 싣고 내게 되돌아온다. ‘사람은 세상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거나, ‘한번 왔다가는 인생인데’라는 말 같은 것들도.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하숙생> 가사도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가 왜 불세출의 덕담인지도 알 것 같다.

나는 이제 막 3년간의 ‘죽음을 주제로 한 워크숍’을 마친 셈이다. 워크숍을 끝내고 보니 나도 오빠가 빠져나간 그 문 앞의 긴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 노화(老化)란 죽음의 과정이다. 유기체의 기능을 한 가지씩 반납하는 절차다. 내 몸에서도 이미 노화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치열에는 의치가 끼어 있고 흰 머리카락이 자꾸 새로 돋아난다. 눈가에 주름이 깊어진다.

자살하는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행복은 누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함께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고독과 소외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죽음이란 절대적인 고독과 소외의 세계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정신적 고문이다. 그 고문으로 인해 죽기 전에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워크숍 과정을 이수하면서 나는 죽음의 운명을 시인하게 됐고 내 앞의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일회적 삶이라는 운명이 사람에게 지시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본다. 아주 뻔한 얘기지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축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잘 안 풀리거나 간에,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도 존재의 축복인 것이다.

노화가 완만한 죽음이라면 완만한 안락사도 있을 것이다. 고통없이 편안하게 늙어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일 텐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게 그중 한 가지 아닐까. 마르케스 소설 <미로 속의 장군>을 보면 19세기 남미 해방운동의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는 권좌에서 물러난 뒤 보름 뒤에 폐결핵으로 죽는다. 의사에게 가보라고 조언하면 그는 “두 가지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는 없다”는 말을 했다. 해방전쟁 하기도 바쁘다는 얘기다. 물론, 나라면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방전쟁을 그만두고 집에서 푹 쉬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죽음이 코앞에 닥쳐왔더라’는 인생도 나쁘지는 않았겠다 싶다.

올해 일흔여덟의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고스포드 파크>를 찍으면서 유사시에 대비해 스티븐 프리어즈를 대타로 지정해두었다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한참 동안 이 구절의 의미를 머리 속에서 굴려보았다.

UPI기자 헬렌 토머스는 <백악관 맨 앞줄에서>를 쓰던 2년 전만 해도 여든둘의 나이에 백악관 출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두 가지 일은 여행하는 것과 책 쓰는 일이라고 했다. 만일 누가 내게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묻는다면 나도 그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여행과 글쓰기. 실존의 위태로움을 잊고 그 모든 ‘무의미’들과 싸워나가기 위해 그건 효과적인 방략인 것 같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