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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사진 오계옥최수임 2002-05-24

<승부리 사건파일>의 조미정 감독

“예술이 휴머니티를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등을 연출한 조미정(30)씨는 물리학과를 중퇴하고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특이한 전과(?)를 캐물으려 하자 “주위에서는 물리학과를 중퇴했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각오가 서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냥 영화가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대학을 졸업한 뒤 다른 사람들의 기발한 단편영화들을 보며 오히려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유희의 인간’으로서 영화를 가지고 이제는 제대로 ‘놀아’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00년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로 영진위 독립영화 사전제작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고, 당분간은 단편영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대학에 다닐 때 ‘날적이’라고 불렀던 과방 노트에서 까막눈인 어머니가 가출한 형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게 10년쯤 전이었는데, 얼마 전 승부리 이야기를 TV에서 보면서 그때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고립된 마을과 글을 모르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엮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산간마을이라는 설정이나, 할머니의 손자의 이야기가 <집으로…>를 연상시킨다. <집으로…>뿐이 아니라 TV의 <좋은 세상 만들기> <고향에 가자> 같은 프로들도 생각나게 한다.

<집으로…>의 성공이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TV프로그램들은 노인들의 순수성을 이용하고 있다. 승부리의 경우도 오지 마을이라고 여러 매체에 소개된 뒤 오히려 도시 사람들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고 진실하게, 단순한 삶을 사셨던 어르신들 삶의 진정성을 담고 싶다.

-주인공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시골 주민들의 앙상블 드라마의 성격이 짙다. 연기지도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촬영 초반에는 굳이 연기지도를 한다기보다는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실 때까지 섞여 지내면서 자연스런 생활장면을 많이 촬영할 것이다. 이제껏 영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르신들을 멀리서, 풍경화처럼 찍어놓고 싶지는 않다. 젊은이들 부럽잖게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그분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활발한 일상의 묘사에 주력할 것이다.

-제작일정은.

=문서, 콘티작업은 6월 중순에 마무리짓고 캐스팅에 들어갈 생각이다. 캐스팅 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12월에 1차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완성은 2월 중순쯤으로 예정하고 있다.

-단편작업을 계속할 생각인가.

=단편을 장편으로 가는 지름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은 단편에 주력하면서 단편만의 맛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단편영화를 기획, 촬영, 완성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배급, 상영단계에서 좌절하게 된다. 평생 단편만 하면서도 인정받을수 있는 토양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영화는.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좋아한다. 언젠가는 개인의 삶과 역사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해 보고 싶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도 좋아해서 여러번 반복해 보았는데,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이 휴머니티를 복원할 수 있다고, 그리고 복원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고 싶나.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펀드 매니저니 디자이너니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더라. 하지만 실연당했다고 썬그라스 끼고 파리로 뉴욕으로 휙 떠나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좀더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승부리 사건파일> 시놉시스

장덕수씨 집에서 승부리 최초의 도난사건이 발생한 아침, 공교롭게도 이웃 황옥순 할머니의 손자 덕규가 편지 한장을 남긴 채 사라진다. 정황상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 덕규. 그런데 안타깝게도 승부리 사람들은 모두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눈 쌓인 길을 헤치고 부랴부랴 승부역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런데 마침 부역장의 부재로 사건은 또다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글은 모르지만 승부역 표지판에 쓰인 글자가 <승부>일 거라는 추측을 토대로 일단 편지 속의 ‘부’자를 읽어낸 노인들. 그때부터 덕규의 편지를 읽기 위한 승부리 주민들의 ‘낫 놓고 ㄱ자 알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러나 제법 알아볼 수 있게 맞춰진 몇몇 단어 중 덕규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글자가 튀어나오자 일순 침울해지고 만다. 덕규가 돈을 훔쳐 아버지를 찾아나선 것으로 짐작하는 주민들. 그때 부역장이 도착,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그 편지는 알고보니 문예공모에 응시한 덕규의 글 중 일부였던 것. 그리고 돈은 치매기가 있는 장덕수씨의 노모가 가져간 것으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