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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이다혜 백종헌 2022-04-19

곽재식 지음 / 비채 펴냄

곽재식의 소설집.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 눈에 보이는, 관행으로 굴러가는 세계의 수수께끼가 소설에 유머를 더한다는 점에서 곽재식의 세계를 ‘생활인계(系)’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진지할수록 웃기고 이상해진다. SF작가들과 팬이 소설을 창작하고 읽는 공간인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2018년부터 2021년 동안 올린 글을 묶었다.

표제작인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은 말할 것도 없이 빵을 좋아하다 못해 자기 피까지 내주는 헌혈이라는 행동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관찰보고서다. ‘헌혈? 빵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 곽재식 작가의 계획에 완전히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에 딸린 세 번째 행성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 사이에 번지고 있다는 소식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문제의 행성에는 ‘사람’이라는 미생물이 사는데, 사람은 문제의 행성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생물인 식물과 세균에 기생해서 살아간다. 이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방식은 의사소통 기관을 이용해 억지로 다른 생물의 몸을 빨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몸속 붉은 액체를 일부러 빼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것은 자기 파괴적 행동 아닌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외계인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들의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신기해한다. 하지만 외계인 입장에서 보면 지구인이야말로 외계인. 그렇게 입장을 바꿔놓고 진지하게 관찰을 시작하자,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일이 기이해지고 수수께끼가 된다. <이상한 녹정 이야기>는 올림픽에 혜성처럼 등장한 뛰어난 선수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 <시간여행문>은 시간 여행과 관련한 이론에서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많은 창작자들이나 독자들이 무심코 넘긴 핵심적 설정을 중심에 두고 비튼 소설이다. 액티브X와 씨름하다가 인격에 문제가 생긴 수많은 한국인들을 위한 블랙코미디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과 직장인 두 사람의 대화 같지만 사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멘토인 척하는 잔소리의 피곤함을 느끼게 하는 <판단>은 곽재식 작가 스타일의 생활밀착형 장면을 포착한 스토리텔링 특유의 유머를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표제작과 더불어 <멋쟁이 곽 상사>. 원칙주의자가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멋쟁이 같은 작품이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

어지간한 문제가 다 해결된 뒤에도 보고서를 출력하기 위한 별도의 출력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보안 프로그램을 또 설치해야 하고, 그러면 기껏 작업을 해놓은 후 보안 프로그램이‘현재 열려 있는 모든 브라우저를 닫습니다.’라는 개 같은 소리를 하면서 다시 모든 것을 닫고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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