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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모로 (Jeanne Moreau)

1928-01-2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5

/

네티즌7.3

기본정보

  • 다른 이름잔느 모로
  • 직업배우
  • 생년월일1928-01-23
  • 성별

소개

잔 모로는 1928년 1월23일 영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줄곧 자랐지만 영국과 프랑스를 오간 국제 결혼 덕분에 그녀는 4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바깥 나들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던 모로였지만 2차대전의 와중에서 그녀가 마음을 빼앗긴 것은 연극이었다.

코미디 프랑세즈에서 연기수업을 받던 그녀는 1948년 <마지막 사랑>으로 영화에 데뷔하고 1953년 장 가뱅과 공연한 <현금에 손대지 마라>로 프랑스에서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후 <여왕 마고>와 <여학생 기숙사> <가스 오일> 등을 거쳐 1958년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출연하면서 명실공히 월드 스타로 발돋움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 잔 모로는 이미 10여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중견 여배우였다. 당시 촬영기사는 첫 일주일치 촬영 분량을 보고 “애송이 감독 루이 말이 잔 모로를 망치지 않게 해달라”고 제작자에게 요구할 정도로 그녀의 역할에는 무거운 음영이 드리워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잔 모로의 얼굴을 화면 전체에 익스트림 클로즈업시키며 살인을 모의하는 장면부터 시작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전세계 관객의 가슴에 그녀의 얼굴을 깊이 각인시켰다. 이후 프랑스영화에서 잔 모로가 빠진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녀가 빠진 유럽영화의 어떤 시기 역시. 당시 약관 스물일곱이던 루이 말과 서른살이던 잔 모로는 사형대 대신 일약 전세계의 감독과 여신으로 스크린에 등극하였던 것이다.

이듬해 그녀는 다시 한번 루이 말과 함께 ‘사고’를 친다. 신문사의 사장인 남편에게 싫증난 유한마담 역을 한 잔 모로는 당시로써는 드문 에로티시즘으로 스크린을 달구었던 것. 우연히 만난 남자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자유부인이라는, 불륜을 옹호하는 역할로 잔 모로는 국내외에 각종 스캔들을 일으켰고, <연인들>은 이탈리아 등에서 상영 금지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벨바그는 그녀에게 영광과 패배를 동시에 안겨준 모순의 창이었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이야기할 때 잔 모로는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이다. 잔 모로의 이미지는 기존의 영화 관습과 문법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뉴벨바그의 지향성과 완벽히 일치하는 어떤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쥴 앤 짐>에서 삼각연애의 핵심에 선 그녀의 일탈은 1960년대 상황에선 너무나도 과감해 보일 수 있었지만,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자유로움은 그녀를 보는 모든 이에게 그 자체로 설득되는 어떤 신비이자 당당함이었던 것. 그러나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스타 이미지에 압도당하고 싶지 않았던 누벨바그 감독들은 트뤼포를 제외하고는 그녀를 거의 캐스팅하지 않았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 프랑스 감독들은 새로운 스타 카트린 드뇌브나 로미 슈나이더의 차가운 매혹에 마음을 빼앗긴다.

1960년대 이후 잔 모로는 프랑스를 벗어나 전세계 감독들과 손을 잡는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접고 유럽과 할리우드로 발을 넓힌 그녀의 작품목록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슨 웰스, 루이 브뉘엘, 조셉 로지, 토니 리처드슨 같은 감독들이 등재되어 있다. 조셉 로지 감독의 <에바>(1962)에서 남자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고급창녀 역할을 할 때나 토니 리처드슨의 <마드모아젤>에서 스스로의 리비도에 의해 파멸해가는 여교사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그녀는 프랑스라는 전 국가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신낭만주의 여성의 딱지를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또다른 거인을 만난다. 영화 <심판>에서 앤서니 퍼킨스를 유혹하는 이웃집 창녀로 분했던 그녀는 이후 오슨 웰스와의 연대를 통해 카메라를 잡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얻어갔다고 한다. 이후 잔 모로는 배우로뿐 아니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첫 감독 연출작인 <뤼미에르>는 마흔을 넘긴 잔 모로의 자전적 이야기였고, 이후 그녀는 <유년기>를 거쳐 무성영화의 전설적 스타에 관한 <릴리 기쉬의 초상>을 감독했다.

<비바 마리아>에서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 멕시코를 누비면서 ‘뇌가 있는 브리지트’로 뭇 남자를 불러모았던 그녀도 이제 일흔이 훌쩍 넘었다. 그녀는 세번의 결혼을 통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녀의 남편 중에는 1977년부터 3년을 함께 살았던 <프렌치 커넥션>의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도 있다.

그러나 어떤 남자도 잔 모로를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으리라. 일찍이 <쥴 앤 짐>에서 여자의 정숙함과 법에 대해서 말하자 “그럼 저항을 해야죠”라고 말한 뒤, 강물에 풍덩 뛰어들던 그녀. 잔 모로는 우아함과 정신적 강인함에 있어서 쥴과 짐, 아니 모든 남자들이 그 반쪽이라도 갖기를 애원했던 영혼의 매혹, 혹은 모든 여성들의 삶의 전범으로서의 잔 다르(Jeanne d’art)이다.
/영화 평론가 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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