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밀크

Milk Milk

2008 미국 15세이상관람가

전기, 드라마 상영시간 : 128분

개봉일 : 2010-02-25 누적관객 : 13,372명

감독 : 구스 반 산트

출연 : 숀 펜(하비 밀크) 에밀 허쉬(클리브 존스) more

  • 씨네217.50
  • 네티즌7.93

거대한 편견의 벽을 무너뜨린 희망의 이름

거대한 편견의 벽을 무너뜨린 희망의 이름, 하비 밀크!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이름이 된,하비 밀크의 생애 마지막 8년의 이야기.
1970년, 40세 생일을 맞이한 뉴욕의 평범한 증권맨 하비 밀크(숀 펜)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 인생을 뒤돌아보며 애인인 스콧(제임스 프랑코)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린 밀크는 편견 없는 마음과 유쾌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의 친구가 되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편견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보며 게이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인종, 나이, 성에 상관 없이 모두가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를 꿈꾸던 그는 3번의 실패 끝에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되는데...
more

별점주기

0
리뷰 남기기

포토 (22)


동영상 (1)

전문가 별점 (4명참여)

  • 7
    이동진숀 펜에겐 아직 안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더 있을까
  • 7
    황진미차별금지법안을 기억하라.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가?
  • 7
    박평식배우의 관록, 그 생생하고 강렬한 힘!
  • 9
    이용철하비 밀크의 시대에 대한 감탄할 만한 기록
제작 노트
이 시대 최고의 배우 숀 펜 주연 & 세계적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
제81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각본상에 빛나는 걸작 <밀크>!


<굿 윌 헌팅><엘리펀트>의 세계적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과 <아이 엠 샘><미스틱 리버><데드 맨 워킹>의 이 시대 최고의 배우 숀 펜이 빛나는 걸작 <밀크>로 돌아왔다!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하비 밀크”의 드라마틱한 생애 마지막 8년을 담은 감동 실화 <밀크>는, 제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요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고 전세계 영화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뿐만 아니라, <밀크>는 저명한 평단들로부터 쏟아진 압도적인 찬사로 숱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밀크>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뉴욕 타임즈는 “<밀크>는 기적이다!” 라는 말로,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숀 펜은 날 충격에 빠트렸다!” 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을 정도로, 거장 구스 반 산트의 귀환과 배우 숀 펜의 변신, 그리고 영화의 완성도는 실제 하비 밀크의 존재만큼이나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밀크의 삶과 죽음은 1970년대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거대한 편견의 벽을 무너뜨렸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꿈을 전파하며 세상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이름이 된 밀크! 구스반 산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숀 펜을 비롯한 출연진들의 명연기가 더해져 완성된 빛나는 걸작 <밀크>는,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실제 하비 밀크의 명성만큼이나 모두에게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밀크>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쥔 숀 펜
하비 밀크를 완벽히 부활시킨 그의 경이로운 연기!


<아이 엠 샘><데드 맨 워킹> 등 매 작품마다 완벽한 변신을 꾀하는 숀 펜은 <밀크>를 통해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으며 연기의 신경지를 선보인다. 실재했던 인물인 “하비 밀크”로 완벽히 변신하며 신들린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숀 펜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 주요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미스틱 리버>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밀크>를 준비하던 각본가, 감독, 제작진 그리고 실제 밀크의 친구들 모두 “하비 밀크”역에 “숀 펜”을 꼽았을 정도로 밀크는 숀 펜이었기에 가능했고, 숀 펜 없이는 완성 될 수 없었던 캐릭터였다. 놀랍게도 숀 펜은 모두의 기대 그 이상을 뛰어 넘으며 완벽히 밀크를 체화해 그를 부활시키기에 이르렀다. 모두를 전율케한 기적에 가까운 숀 펜의 연기는 70년대 실존하며 밀크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마저 감탄과 혼란 속으로 이끌 정도로 완벽했다. 촬영장을 찾은 밀크의 동료 중 한 명은 “숀 펜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진짜 하비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 속에서 밀크가 가지고 있던 광채와 카리스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어떠한 역할이든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캐릭터에 동화되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이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 숀 펜! <밀크>는 우리들에게 그의 가장 경이로운 연기를 목격할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조쉬 브롤린,
<스파이더 맨> 제임스 프랑코 등 연기파 배우들의 총출동!
모든 배우들이 하나 되어 선보이는 최고의 연기 앙상블!


하비 밀크의 생애를 그려내기 위해 <밀크> 속엔 주인공 밀크 역을 맡은 숀 펜과 함께할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합류했다.
밀크를 시기했던 동료이자 그를 살해한 결정적 악역 댄 화이트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조쉬 브롤린이 맡았다. 조쉬 브롤린은 실제 댄 화이트의 가족들과 그의 자백을 받아냈던 그의 친구이자 형사인 프랭크 팔존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댄 화이트의 심리를 분석하는 등 철두철미한 준비로 완벽히 댄 화이트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조쉬 브롤린의 출충한 연기로 재탄생한 댄 화이트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유약한 한 인간의 불안과 슬픔까지 전해준다. <밀크>로 조쉬 브롤린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전미비평가협회와 뉴욕비평가협회로부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밀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하는 그의 애인 스콧 스미스 역엔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제임스 프랑코가 캐스팅되었다. ‘밀크의 미망인’이라 불릴 정도로 밀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스콧으로 변신하기 위해 제임스 프랑코는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의 롭 엡스타인 감독의 도움으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스콧의 인터뷰 장면들을 보며 역할을 준비했다. 밀크의 정치 이력에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 스콧을 표현하기 위해, 제임스 프랑코는 영화의 중요한 감정선을 차지하는 스콧과 밀크의 관계를 그리며 수려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를 선보인다.
한편, 숀 펜이 감독한 <인투 더 와일드>와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로 주목 받은 에밀 허쉬는 밀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모았던 위트가이 클리브 존스 역을 맡아 이번엔 숀 펜의 동료 연기자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실제 클리브 존스는 <밀크>의 현장에서 매일같이 함께하는 중요한 자문위원이기도 했는데, 덕분에 에밀 허쉬는 실제 인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사람을 연기하는 엄청난 도전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부담과 걱정을 뒤로한 채 에밀 허쉬는 클리브로부터 직접 클리브에 대해 배우며 클리브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실제 인물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그를 묘사하는 연기의 진수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이 투 마마> <터미널>의 디에고 루나가 밀크의 마지막 애인인 멕시코계 게이 잭 리라 역을, 밀크의 네 번째 선거를 승리로 이끈 캠페인 매니저이자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앤 크로넨버그 역은 뉴욕 연극계의 신예 앨리슨 필 등, 오로지 희망의 이름 “하비 밀크”를 전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모든 배우들은 최고의 하모니를 자랑한다. 이러한 이들의 값진 노력의 결과로 <밀크>의 출연진은 유수의 영화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며 방송영화비평가협회(BFCA) 최우수앙상블상을 수상하였으며, 수많은 평단과 관객들은 이 최고의 연기 앙상블을 향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한
천재 각본가 더스틴 랜스 블랙!!


그리고 밀크의 친구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실현된 희망의 프로젝트 <밀크>!
영화 <밀크>는 74년생의 젊은 청년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혼란과 고통의 연속이었던 10대 시절, 더스틴 랜스 블랙에게 하비 밀크는 희망을 안겨준 인생의 영웅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밀크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소망을 품게 된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한 4년여에 달하는 기간 동안 더스틴 랜스 블랙은 쉴 틈 없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비 밀크와 함께 했던 사람들을 직접 취재했다. 기나긴 날들을 홀로 고군분투한 더스틴 랜스 블랙의 땀과 눈물로 완성된 첫 작품 <밀크>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비롯, 세계 유수의 각본상을 수상하며 비로소 참된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밀크>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결코 더스틴 랜스 블랙 혼자만의 공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해준 수많은 베테랑 스탭들과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밀크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밀크>의 각본이 완성에 가까워졌을 즈음, 그의 주변에는 실제 밀크의 친구들이 그의 친구이자 멘토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으로 더스틴 랜스 블랙은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 그리고 최고의 배우 숀 펜과 함께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미 <아메리칸 갱스터>와 <조디악>에서 70년대 풍경을 제대로 보여준 바 있는 촬영감독 해리스 새비디스는 <밀크>를 통해 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이미지를 리얼하게 담아냈고, <배트맨><가위손><시카고><원티드>등 환상적인 선율을 자랑하는 음악감독 대니 엘프먼이 70년대를 풍미한 데이빗 보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등의 곡들과 자신만의 오리지널 곡들을 삽입하여 <밀크>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켰다. 뿐만 아니라, 미술팀과 의상팀은 영화의 주무대가 될 카스트로 거리를 70년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악전고투의 현장엔 언제나 밀크의 친구들이 <밀크>의 자문위원으로서 함께했다. 그들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생생한 경험들은 “하비 밀크의 시대”를 완벽히 재현해 내는데 없어선 안될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오직 단 한가지, 희망의 이름 <밀크>를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하기 위한 굳건한 의지 하나로 모두가 아낌없는 노력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실현시킨 희망의 프로젝트 <밀크>는 2010년 가장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2010년을 희망의 빛으로 물들일 감동 실화 <밀크>
그의 인생은 역사를, 그의 용기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인권 운동가인 동시에 정치인이었고, 게이이면서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아버지였던 ‘하비 밀크’의 이름은 ‘희망’이라는 단어로 기억된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시의원이 된 그는, 존재 자체로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성별, 인종, 성정체성 등 수많은 편견으로 인한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그는 “당신은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기도 했다.
하비 밀크는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서 회자되지만, 사실 나이 사십이 되도록 스스로에게 한 번도 솔직하지 못했던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참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던 그가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기 전까지 8년 동안 새로운 인생을 살며 그의 시대는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었던 건, 40세 생일에 그가 스스로에게 선물한 ‘희망’ 때문이었다. 나이, 인종, 성을 떠나 인권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밀크가 꿈꾸던 희망이었고, 그의 희망은 다른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 게이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배우, 감독들은 물론이고, 미국 역사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 오바마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벽장 속에 가두며 평범한 척 살아온 하비 밀크의 인생은 그가 희망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드라마틱해진다. 사랑하고, 상처받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어느 때보다 가장 빛나는 삶의 정점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그의 인생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꿈을 품게 할 것이다.

Production Note

각본

<밀크>의 각본을 쓴 더스틴 랜스 블랙은 극단에서 일하던 1990년대 초 그의 스승으로부터 처음 하비 밀크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하비 밀크의 시대>에서 밀크의 연설 장면을 본 블랙은 왈칵 눈물을 쏟고 만다. 방황하던 그에게 밀크가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블랙은 말한다. “그는 우리가 멀쩡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훌륭한 일들을 해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에이즈 문제로 게이 커뮤니티는 아주 힘든 시기였죠. 그래서 전 그때 밀크의 메시지를 계속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단시간 내에 많은 것들을 이뤄낸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이자, 모든 게이들의 대부였던 밀크가 남긴 유산은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하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포부를 갖도록 북돋는 것이었다. 블랙은 이러한 밀크의 메시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몇 년 후 블랙은 작가와 프로듀서 그리고 감독으로 활동하며 TV와 영화계에 발판을 마련했고, 밀크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위험부담이 큰 이 프로젝트를 향한 수많은 업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접 밀크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블랙은 다행히 밀크의 측근들과 조력자들 대부분이 여전히 생존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블랙은 말한다. “처음부터 저의 전략은 실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수많은 인터뷰와 긴 여행을 의미했지만, 저는 어디선가 쓰였던 것들을 읽는 것보다 직접 자세한 이야기를 파헤치고 싶었습니다. 작가로서 책이나 원고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 말이죠. 밀크의 주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현재도 일을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전 생각했죠. ‘그래, 이거 쓸 수 있겠어!’”
블랙이 처음 만난 사람은 밀크의 피후견인이자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던 클리브 존스였다. 밀크와 함께 운동을 선동했던 존스는, 당시 수많은 행진과 시위, 집회를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열정적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네임스 프로젝트의 창립자이자 전세계적인 에이즈 심벌이 된 네임스 프로젝트의 에이즈 퀼트(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퀼트)를 고안하고 디자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존스는 말한다. “더스틴 랜스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진실함, 친절함, 명석함, 그리고 그가 하비 밀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블랙이 존스에게 밀크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존스는 프로젝트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증을 위한 자문으로서 촬영 내내 현장을 지켰다. “클리브는 정말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죠.”라고 블랙은 회상한다. 뿐만 아니라, 존스는 그에게 대니 니콜레타, 앤 크로넨버그, 앨런 배어드, 캐롤 루스 실버, 프랭크 로빈슨, 톰 아미아노, 짐 리발도, 아트 애그노스, 마이클 웡을 포함한 많은 이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하비 밀크를 잘 알았으며, 정치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와 함께 했던 동반자들이었다. 하지만 블랙은 말한다. “처음에 이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다른 이들이 그들을 찾아와 밀크와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이라고 약속했었지만,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 이후 거의 30년 동안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쇼타임의 TV영화 <정의의 처형>은 밀크의 생애와 업적보다는 댄 화이트, 그리고 밀크와 조지 모스코니 시장의 암살에 초점을 맞추었다. 블랙은 인정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그들을 설득하게 된 후엔 제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 전 가족처럼 친해졌고, 그들은 제게 고통스런 기억들까지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움에 떨게 되었죠.”
밀크의 핵심 참모였던 마이클 웡은 밀크의 아주 상세한 이야기들이 담긴 일기를 블랙에게 전해주었다. 웡의 일기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더해 개인적인 이야기 역시 비중 있게 다루고 싶었던 블랙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블랙에 따르면 자료가 너무 방대함을 불평할 정도였다. “항상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찾게 되죠. 전 하비 밀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놀라운 이야기들을 수없이 많이 찾았습니다. 하지만 수백 개의 이야기들 중에서 오직 한 움큼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죠.”
블랙은 밀크가 1972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인권운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1978년 그가 암살당할 때까지를 이야기의 기본 골격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블랙은 밀크의 암살을 극적인 장치로 활용할 수 있었다. 실제 밀크는 자신이 녹음한 유언에서 스스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을 내비쳤고, 그의 친구들에게 ‘50살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밀크의 전 생애를 다룰 수 없음을 깨닫자 블랙은 어떤 인간관계가 밀크에게 중요했고, 그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 활동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지에 주목하였다. 블랙은 생각한다.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만남은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연인 스콧과의 관계가 바로 그를 시의원의 자리에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스콧이 없었다면 밀크가 그런 일을 이룰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밀크가 이룬 일들은 그의 개인적인 이유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스콧과 사랑한다는 것, 혹은 잭 리라와 사랑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일로 인정받는 것에 관계된 문제였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당당할 수 있는 권리를 원했습니다. 당시 동성애와 관계된 것은 모두 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죠. 사랑을 위해 뛰어든 정치 말입니다.”

구스 반 산트와 숀 펜의 합류
시나리오 작업을 끝마친 후 블랙은 영화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예산이 없었던 데다, 등장하는 모두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을 받아야만 했다.
클리브 존스는 말한다. “랜스의 시나리오는 훌륭했습니다. 아주 간결하고, 우아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죠. 그 안에서 하비의 목소리는 분명했고, 저는 랜스가 쓴 대사들을 하비가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랜스에게 알맞은 감독을 소개하겠다고 말했죠. 저는 만약 제 친구인 구스 반 산트가 연출한다면 감독 자신보다 오로지 하비에 대한 영화가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구스 반 산트는 회상한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가 기대치를 높여 놓긴 했지만, 극영화 버전이 하비 밀크의 이야기가 지속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저는 이미 이 이야기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고, 하비의 생애의 많은 요소들과 ‘카스트로 카메라’에서 일어난 여러 이야기들 때문에 항상 구성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랜스가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간결한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하나의 이유는 하비의 시대를 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그를 전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러 영화들을 만들었던 만큼, 구스 반 산트는 하비 밀크가 주류사회에서 벗어난 그의 다른 캐릭터들과도 잘 부합한다고 여겼다.
숀 펜은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하비 역을 맡을 대체 불가능한 단 하나의 캐스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구스 반 산트는 숀 펜에게 시나리오를 보냈고, 숀 펜은 곧바로작가와 감독을 만나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을 결정했다. 제작진에게 숀 펜은 정치인으로서의 밀크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그려줄 것을 주문했다.
블랙은 인정한다. “우리 마음 속엔 주연배우가 위험을 감수할 지에 대한 걱정뿐이었죠. 하지만 숀 펜은 ‘제대로 해 봅시다.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합시다’라고 말하더군요. 숀 펜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연기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는 정확성에 목을 맬 정도인데, 결국 마음과 영혼조차 완벽하게 하비 밀크를 구현하기에 이르렀어요.”
존스는 말한다. “숀 펜이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잖습니까!”
프로듀서 댄 징크스가 말한다. “매일 촬영장에서 숀 펜이 정말 하비와 똑같은 사람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우리 모두를 전율하게 했습니다. 하비의 삶과 이 영화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숀 펜의 변신에 입을 다물지 못했죠.”
특히 구스 반 산트는 “숀 펜은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있어 정말 고전적이고, 강렬하고, 탁월한 솜씨를 스크린에 선보입니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프로듀서 브루스 코헨은 말한다. “영화 <밀크>는 하비 밀크 역을 맡아 그를 감쪽같이 구현해 내는 숀 펜의 연기에 의해 상승하고 활공합니다. 숀 펜이 하비가 했던 말이나 연설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촬영장에서 그런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소름이 돋는 일이었죠.”
숀 펜은 이야기한다. “길잡이가 되어주는 뛰어난 시나리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양의 기록들도 있었지요. 저는 하비라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영혼과 사랑에 빠졌고, 이는 배우로서의 과제를 뛰어넘은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늘 걸작을 탄생시켰던 구스 반 산트 감독과의 작업인 만큼 배우로서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
더스틴 랜스 블랙은 말한다. “촬영 첫날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4년 전에 시작했던 일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해낸 거예요. 정말 일을 내버린 거죠. 그날 무지개를 보고 저는 울고 말았어요. 클리브 존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죠.”
존스는 설명한다. “날은 추운데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정말 최악의 아침이었어요. 우린 첫 장면을 찍기 위해 댄 화이트의 선거구에 나와 있었죠. 카메라가 돌기 2분 전에 구름이 사라지고 해가 나더니 촬영지 위로 거대한 무지개가 펼쳐진 겁니다. 이건 계시라고 생각했죠.”
구스 반 산트와 촬영감독 해리스 새비디스는 날씨 걱정으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5번째 공동 작업을 시작하며 감독은 말한다. “해리스와 함께 했던 모든 영화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 찍을지에 대한 고민의 여정이었습니다. <밀크>의 경우 우리는 그동안 만든 작은 규모의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더욱 커진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촬영감독은 스토리보드를 이용하지 않고 그들의 협동과 실험정신으로 모든 장면을 일궈냈다.
프로듀서 브루스 코헨은 말한다. “<밀크>를 만들면서 신나는 일 중 하나는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70년대의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스 반 산트가 촬영감독으로 해리스 새비디스는 어떻겠냐고 묻자 저희는 꼭 부탁한다고 대답했죠. 우리는 그가 구스 반 산트와 함께 한 <게리><엘리펀트><라스트 데이즈>같은 훌륭한 영화들 이외에도, 조쉬 브롤린과 함께한 <아메리칸 갱스터>나 <조디악>에서 70년대의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해리스의 촬영이라면 관객들이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라며 멀찌감치 구경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에 휘말려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촬영장에서 블랙은 말한다. “구스 반 산트를 보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의 스타일은 제가 함께 일해 본 어떤 감독과도 달랐습니다. 아주 유기적이지요. 그는 한 발짝 뒤에서 어떻게 사건이 벌어지게 하고 예기치 않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를 둘러싼 배우들과 아티스트들이 이런저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거예요.”
댄 징크스는 말한다. “그는 단순히 무게를 잡기 위해 지시를 내리는 감독이 아닙니다. 그는 꼭 필요할 때만 입을 열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두어마디 뿐이지만 그 정도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앤 클로넨버그 역을 맡은 앨리슨 필은 감격한다. “촬영은 마치 감으로만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 같았어요. 대부분 2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돌아갔죠. 커다란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 이는 가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 방식이에요. 온 종일 모든 순간에 연기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에밀 허쉬는 말한다. “구스 반 산트는 목발 대신 배우를 자신의 두 다리로 설 수 있도록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항상 전례 없이 과감해지고, 그들 자신의 본능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에요.”

하비 밀크의 친구들
더스틴 랜스 블랙이 알아낸 바와 같이 밀크를 가장 잘 알았던 실존 인물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배우들은 그들이 그려내야 하는 인물들과 실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밀크가 남긴 유산을 이어가려는 제작진의 열정과 배려로 밀크의 오랜 친구들과 동지들이 촬영장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작진은 이들의 도움으로 영화를 완성하고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며 경탄을 금치 못한다. 몇몇은 직접 카메라 앞에 서게 되기도 했다.
댄 징크스는 말한다. “구스 반 산트가 말했죠. ‘톰 아미아노 역을 실제 톰 아미아노가 연기하는 건 어떨까요?’ 그는 이어 하비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이 예전처럼 카메라 가게에서 함께 어울리거나, 행렬과 집회에 참여하는 본인을 직접 연기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하비와 동맹관계였던 팀스터 유니언의 앨런 배어드 역시 감독의 요청을 수락해 본인의 캐릭터를 극중에서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비 밀크의 세계를 살아갔던 이들이 지금 다시 하비의 세상의 일원이 된 것이지요!”
본인 스스로를 연기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을 연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배우 에밀 허쉬가 클리브 존스를 연기한 반면, 실제 클리브 존스는 또 다른 실제 운동가이자 밀크의 후원자였던 돈 아마도르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는 등 곳곳에 실제 밀크의 친구들이 함께 했다. 오랜 세월 구스 반 산트는 전문적인 배우들은 물론 다수의 비전문 연기자들과 일해 왔다. 그는 말한다. “전문적인 연기자건, 처음 연기를 접하는 사람이건 감독으로서 저는 모두와 같은 방식으로 동선과 감정, 캐릭터들과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죠.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저 역시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항상 비전문 배우들을 제 영화에 출연시켰기 때문입니다.”
앤 크로넨버그는 밝힌다. “전 제가 과연 촬영장에 갈 수 있을지,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을지 두려웠어요. 하지만 예상과는 정반대였죠. 삼십 년 동안 전 친구이자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사람을 잃었다는 이유로 벽을 쌓아왔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 시간들을 다시 음미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숀 펜은 제 숨을 멎게 할 정도였습니다. 촬영장에서 그는 하비처럼 보였고, 그의 버릇들을 똑같이 재현해냈어요. 선거에서 승리하던 날 밤 장면을 촬영할 때 구스 반 산트가 말하더군요. ‘어서요, 앤. 당신이 이 장면에 나와야 해요!’ 그래서 전 그 속에 들어가 1977년의 선거를 두 번째로 축하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30년 후에 다시 살아 볼 수 있겠어요?”
댄 징크스는 말한다. “하비의 친구들 모두가 찾아와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그 일들이 일어났는지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의상팀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그날 전 이런 옷을 입었어요.’라고 도와주거나 촬영 장면에 대해 ‘그 때 전 카스트로 카메라 저기 저쪽에 서있었죠’라고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실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죠.”
코헨은 덧붙인다. “우린 이미 최대한 실제와 똑같도록 세트, 의상, 연기, 그리고 대사까지 모든 면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실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아주 자세한 기억들을 가진 이 사람들이 우리가 더욱 사실적으로 당시를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밀크>를 만드는 과정에는 보통 영화제작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의미와 진실,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죠.”
클리브 존스는 말한다. “저는 촬영 첫 주 매일같이 울었어요. 조쉬 브롤린이 댄 화이트를 연기하며 제 옆을 지나갔을 때 전 공포에 질렸죠. 그가 제게 ‘당신 표정이 제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주네요.’라고 하더군요.

샌프란시스코
<밀크>는 영화 전체를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촬영했다. 더스틴 랜스 블랙은 말한다. “샌프란시스코가 바로 이 영화의 정신과 열정입니다. 영화 <밀크>는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완성되었어요.”
샌프란시스코 영화위원회와 시장 개빈 뉴썸은 촬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많은 것들을 조율하면서 제작진을 도왔다. 시청 내에서의 촬영 역시 적극 협조해 주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실제 자신의 사무실에서 촬영하라는 시장의 제안만큼은 정중히 거절하였다. 시민들을 위한 시장의 바쁜 업무를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밀크>는 이에 더해 뉴썸 시장이 2006년 5월에 통과시킨 영화제작지원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았다. 시장은 하비 밀크의 이야기가 반드시 알려져야 하며, 그의 정신과 유산이 지금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
브루스 코헨은 덧붙인다.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가 이 이야기의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밀크의 이야기는 이 도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 이야기가 이 도시의 역사와 구조에 깊게 파고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카스트로 카메라를 재구성할 수 있을만한 곳을 물색해 보았지만 결국, 그 가게가 있었던 카스트로가 575번지 바로 그 자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말했죠. ‘우리가 여러분을 9주 동안 내쫓고 여기를 70년대 하비의 카메라 가게로 되돌려 촬영할 수 있을까요?’ 그건 역사 속 이야기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다시 만들어보는 것 같았죠.” 지금은 ‘기븐’이라는 이름의 선물가게가 된 카스트로가 575번지의 주인은 흔쾌히 요구에 응했다. 미술감독 빌 그룸과 그의 미술, 무대팀은 조심스럽게 3인치 정도 안쪽으로 가짜 벽을 세웠다. 댄 징크스는 밝힌다. “그런데 그곳은 정말 그 당시 카스트로 카메라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어요!”
완벽히 재탄생된 가게를 보고 밀크의 친구들 중 몇몇은 감격에 겨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블랙은 기억한다. “제가 마이클에게 전화해서 카메라 가게를 보러 오라고 했죠. 그는 빌 그룸이 하비가 선거를 위해 빌렸던 것과 똑같은 모델로 구해 온 인쇄기를 보고서는 밖으로 나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딱히 감정적인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그는 돌아서 저를 안아주더니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게 제 눈물샘까지 자극했죠. <밀크>를 하면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밀크의 측근들은 또다시 카스트로 카메라에서 어울리게 되었다. 제임스 프랑코는 기억한다. “그들이 걸어 들어와서 서로의 눈을 응시합니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한 모습이었어요. 이 작은 가게가 전세계적인 게이 인권운동에 있어 그토록 굉장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코헨은 말한다. “카스트로 거리 상인회와 그 회원들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도 하비의 골목은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그룸은 덧붙인다. “우리는 카스트로가의 두 블록, 즉 17번가부터 19번가까지 약 50개의 가게 외관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를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블록 안의 각 구획들은 서로 다르게 꾸며졌죠. 특정 블록의 어느 부분은 1972년과 1973년을 나타내기 위해 꾸며진 반면, 또 다른 부분은 1976년이나 1977년을 염두에 두고 장식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주민들은 그들의 도시 일부가 몇 주 내내 시간을 거슬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덧 70년대로 돌아간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하비 밀크가 사람들을 한 데 모은 것이다.
2008년 2월 8일, 가장 중요한 장면이 촬영되었다. 하비 밀크와 조지 모스코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분노로 나이와 인종, 성적 취향을 불문하고 수만 명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모였던 철야 촛불 평화 행진을 재현하는 장면이었다. 제작진은 수천 명의 엑스트라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 행진 장면에는 실제로 1978년 11월 27일 밤 행진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클리브 존스, 길버트 베이커 등은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제작자 마이클 런던은 말한다. “30년 전으로 돌아가 도시가 다시 멈춘 것만 같았어요.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죠. 단지 영화에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걷기 시작하고 카메라가 도는 순간, 왜 그들이 나왔는지 알 수 있었죠. 그들은 진정한 상실감을 느꼈고, 그건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존스는 1978년 11월 밤을 기억한다. “우리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마켓 거리를 걸었어요. 성적 취향이나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이 도시를 사랑했던 훌륭한 사람 둘을 잃었다는데 망연자실했죠. 매년 11월 27일이면 우리는 촛불 행진을 계속해왔습니다. 우리는 그 거리에서 역사를 만들었고, 그 역사를 다시 이뤄낸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 30년 전에 보았던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었어요. 즐겁고도 괴로운 일이었죠. 왜냐하면 이 동네 인구가 에이즈의 확산으로 급감했고, 그날 우리와 함께 행진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전 살아남아서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구스 반 산트는 말한다. “수많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죠. 그들은 정말 열정적이었고,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샌프란시스코!”
more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수상내역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편집상 후보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후보
  • [제8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
  • [제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드라마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분장상 후보
  • [제43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Best 10 Movies 후보
  • [제43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
  • [제34회 LA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