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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모델로 떠오르다
하나의 하위 장르를 창조하며 워킹 타이틀을 할리우드 파워 서열 안쪽까지 밀어올린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코미디는 머천트 아이보리의 유산영화와 사회드라마, 데이비드 퍼트냄과 리처드 아텐보로의 휴머니즘으로 대표되는 대처 시대 영국영화의 흥미로운 대립항을 형성한다. 영국 평단이 분석하듯 워킹 타이틀의 로맨스에서 과거는 아주 사적인 노스탤지어의 앨범 속에만 존재하며 미래는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수표다. 그래서 이들 영화 속의 30대들은 믿을 수 없는 과거나 미래와 연결된 이상주의적 인생관, 야심, 정치학을 창고에 처박고, 언제든 신뢰할 수 있는 패션, 축구팀, 팝음악, 취향, 우정을 숭배한다.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 규모가 불어나면서 지난 2000년 워킹 타이틀은 <빌리 엘리어트>를 기점으로 <네번의 결혼식…> 규모인 450만달러급의 ‘저예산’영화를 생산하는 라인으로 WT2를 설립, 특화했다. 로맨틱코미디는 <바로워즈>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타이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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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찬반 논쟁은 아니더라도, 관점을 달리하는 여러 시선에 의해 호오의 미세한 차이가 드러날 것 같았다. 몇곳에 청탁한 결과, 유보 내지 비판적 시선을 가진 극소수는 나름의 몇몇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다음에 지면에 불러오자고 미루고보니, <오아시스> 예찬론 모음이 됐다.전과자와 장애인이, 사회의 편견과 냉대를 딛고 사랑에 다가가는 <오아시스>의 이야기는 자칫 설교가 되거나, 아니면 신파적으로 사람을 울려 두 주인공과 사회 사이의 긴장을 해소시켜버릴 위험이 다분했다. 그걸 어떻게 극복했기에, 까다로운 비평가들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는 걸까.김소희씨는 이창동 감독이 외부적 요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동력으로 진화해왔다는 점에서, 김봉석씨는 사회의 시선 밖에 존재하는 타자들을 대하는 이 감독의 태도에서 답을 찾아본다. 유운성씨는 리얼리즘을 미학이 아니라, 도덕으로 인정해버린 이 감독의 솔직함을, 심영섭씨는 판타지를 끌어와서
4인의 평론가들이 <오아시스>를 지지하는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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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두의 형은 일장연설을 한다. 너도 이제 어른이 돼야지. 자기 행동에 책임도 지고, 남들이 널 어떻게 보는지도 좀 생각해 보고. 맞다. 어른은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간다.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따져본다. 체면이나 과시욕 같은 것들도,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생겨난다. 종두는 그런 ‘시선’ 같은 것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질주한다. 원인도, 결과도 없다. 무작정 가고, 사고를 치고, 모른 척한다. 종두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그런데 <오아시스>를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도 든다. 혹시 종두는 인간이 아닌 게 아닐까? 저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종두의 가족은 과연 그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공주는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로 말을 하기도 힘들다. 공주의 가족은 그녀를 동정하고 보살핀다. 직접 하지는 않고 옆집에 20만원을 주고 맡긴다. 그래도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들고 오고
<오아시스> 4인4색-김봉석이 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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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때문에 불면이다. 졸음이 쏟아져야 마땅한 형편 속에서 시사회에 갔는데 감정을 온통 집중한 나머지 돌아오는 밤길에 무척 힘들었다. 하루를 지내고 난 지금, 또 고스란히 날이 밝았다. 소란스러운 능변 대신 이 영화에 대해서 차근차근 잘 말하고 싶다는 갈망이 무거운 걸음걸이로 덤벼드는 졸음보다 힘이 센 모양이다.난 <박하사탕>이 싫었다. 내 가슴 한복판을 뜨거운 것이 꿰뚫고 지나가긴 했지만, 유능하게 조합된 관념적인 역사의식의 차가움이 함께 흘렀기 때문이다. 불타올랐지만 얼어붙게 만들었고 유능하고 싶었지만 무능했던 것은 386세대인 내가 80년대에 대해 느끼는 통한이다. 하물며 <초록물고기>는 평범했다.이제 세편의 영화를 죽 돌이켜보니 이창동이 진화하고 있음을 알겠다. 지금 나는 진화라는 용어를 특별한 마음으로 쓴다. 진화는 전적으로 자신의 현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오아시스>는 이창동이 사회적으로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관해 진지
<오아시스> 4인4색-김소희가 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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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가 우리 영화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으며, ‘이창동 감독은 한국의 에밀 쿠스투리차’라고 주장한 고종석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아시스>에서 현실과 판타지는 변증법적 통합을 위한 대립물로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도 다치게 함이 없이 온전히 자신들의 특성을 유지하며 서로를 강화한다. 영화 속에 마르케스를 불러들이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 테지만, 빈곤하고 누추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빈곤하고 누추한 상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마르케스의 단편 <사랑 저편의 변함없는 죽음>의 한 부분, “상원의원은 지껄이면서 석판화 캘린더를 한장 비틀어 뜯어서는 나비를 접었다. 슬쩍 선풍기 바람에 태우자 나비는 방 안을 훨훨 날아다니다가 절반쯤 열린 문으로 슬쩍 빠져나갔다.… 석판화의 거대한 나비는 두세번 방 안을 날아다닌 뒤, 벽에 부딪히더니 원래대로 한장의 종이로 돌아가서 그대로 붙어버
<오아시스> 4인4색-유운성이 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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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모두가 겨울옷을 입고 있는 엄동설한에도 반팔 차림으로 콧물을 흘리고, 여자는 휠체어에 의지해 손바닥만한 하늘을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바라본다. 오아시스의 홍종두와 한공주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었다. 감독은 수선스런 시장통에, 나사가 널브러진 카센터에, 김칫국물이 누렇게 밴 아파트 벽에 주인공들을 숨겨놓고 ‘젊은이의 양지’로 박제돼버린 대한민국의 멜로에 일침을 가한다. 홍종두와 한공주, 그렇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게 사랑의 문제라면, 사랑이 ‘함께’ 자장면을 좋아하게 되고 콩밥을 싫어하게 되는 단순하고 연약한 것이라면, 그런데도 당신, 왜 아직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는가.<오아시스>는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처럼 <오아시스>의 사랑은 대한민국에서는 부재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사랑이다. 거시적 이야기의 구조를 지녔던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이 산산이 부서진 가족과 근대화
<오아시스> 4인4색-심영섭이 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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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1905∼69), 일본영화 수입개방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는 한국에서 아직도 미지의 작가다. 그러나 그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일본영화 1세대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아니, 일본영화사에서조차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 건 1980년대부터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1920년, 열다섯 나이에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하고 그 10년 뒤인 1930년에 <찬바라 부부>로 감독 데뷔를 한 나루세 미키오는, 1930년대와 1950년대에 <아내여 장미처럼>(1935), <츠루하치 츠루지로>(1938), <밥>(1951),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보잘것없는 이들의 삶에 똬리튼 그의 영화세계는 오즈 야스지로와 종종 비교되지만, 오즈와는 또 다른 매력과 세계관으로 규정될 수 있다.8월24일부터 30일까지 7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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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나루세 미키오의 초창기 걸작 <아내여 장미처럼>(1935)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토키영화로는 뉴욕에서 최초로 상영된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버라이어티>에 실린 이 영화의 리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예술을 애호한다고 떠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나 적당히 인기를 끌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실패할 것이고.” 일본에서는 대단한 인기를 끈 나루세의 영화에 대한 이런 식의 인색한 반응은, 황금기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감독들 가운데 하나인 나루세가 이후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게 될 것임에 대한 예견이었던 것일까?나루세는 <아내여 장미처럼>이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지도 거의 반세기가 지난 다음 유럽과 미국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 비로소 국제적인 재평가의 대상이 된 영화감독이다. 죽은 지 1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뒤늦게 그의 영화들을 보고 놀란 서구의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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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의 인물들 - ˝살겠다!˝우리가 만약 나루세적인 세계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 세계의 거주자로서 우선 편입될 만한 인물들은 가족과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나루세의 영화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림으로써 해결하려 한다(아니, 그들의 처지상 그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오빠로부터 소아마비로 고생하는 아들을 수술시켜야 하니 수술비를 마련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의 게이코가 그런 인물이다. 어떤 인물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나루세의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돈을 빌리는 나루세의 주인공들을 종종 무능력한 기식자와 거만한 빚쟁이 사이에 끼여 어쩔 줄 모르는 인물로 만들곤 한다. “영화역사상 가장 (섬세하게) 물질주의적인(materialist) 영화감독”- 저명한 영화평론가 필립 로페이트의 말을 빌리면- 인 나루세는 이런 식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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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치 쓰루지로 鶴八鶴次郞, 1938년, 흑백, 89분메이지 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여성 사미센 연주자 쓰루하치와 남자 가수 쓰루지로의 사랑과 갈등을 담은 ‘예도물’(藝道物) 장르의 영화. 젊은 나이의 두 사람은 인기가 높아서 극장 흥행주들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 그러나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싸우기 일쑤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둘 사이의 다툼이 계속 과열되면서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다. 조지 래프트, 캐롤 롬바드 주연의 미국영화 <볼레로>(웨슬리 러글스 감독, 1934)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훨씬 ‘모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밥 めし, 1951년, 흑백, 96분나루세 미키오는 일본의 근대 여류 작가 하야시 후미코(1904∼51)의 소설을 좋아해 그녀의 소설 여섯편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밥>은 그 여섯편 가운데 첫 번째 영화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플롯은 최소화하고 인
<쓰루하치 쓰루지로>등 상영작 10편 미리보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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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 晩菊, 1954년, 흑백, 101분하야시 후미코가 쓴 세편의 단편소설을 한편의 영화로 옮겼다. 과거에 게이샤였던 세명의 중년 여성들을 담담하게 관찰하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사랑, 고독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쿄의 한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는 긴은 인근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그녀의 채무자들 가운데에는 과거 그녀와 함께 게이샤 생활을 했던 토미와 타마에가 있다. 이 두 여인은 돈이 없는 것도 걱정이지만 자신들을 떠나려 하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영화평론가 데이브 커는 <만국>을 두고 “나루세의 특징적인 무드가 여기서 그 형식적 정점에 올랐다”고 평했다. ----부운 浮雲, 1955년, 흑백, 123분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각색한 <부운>은 나루세 미키오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영화다. 영화는 전쟁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함께 근무했다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전쟁 뒤 일
<쓰루하치 쓰루지로>등 상영작 10편 미리보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