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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엘프> 포스터 속 윌 페렐의 모습은 사실 재난에 가깝다. 까무잡잡한 피부, 무섭게 부릅뜬 눈,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듯한 부담스러운 미소에 노란 타이츠까지. 시대의 꽃미남이 맡아줘도 모자랄 것 같은 ‘요정’ 역을 아니, 어쩌다가 나팔바지가 어울릴 법한 삭은 아저씨가 맡은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이 70년대풍 외모에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엘프>가 끝난 뒤 윌 페렐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흠칫 놀라게 될 것이 틀림없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다 해도, 이미 그렇게 우리는 <엘프>의 윌 페렐에게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윌 페렐을 스크린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허치에게 “뒤돌아서서 날 야수처럼 쳐다봐줘”라고 말하던 변태 죄수를 기억하는지. 여기에 <올드 스쿨>의 철없는 천방지축 유부남 ‘프
우스꽝스런 도발, 얼꽝 배우의 매력, <엘프>의 윌 페렐 Will Fer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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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이 말하는 2004년의 문근영
● 2004년 활동 명암
올 한해 인기도 얻었지만, 무엇보다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얻었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장화, 홍련> 때는 그저 감독님의 말씀대로 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어린 신부>를 하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것을 보여주고 어떤 연기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고나니까 연기라는 게 머리 아프고 어려운 거라는 걸 알게 됐죠.
잃은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시간일 거예요.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어졌어요. 아, 이럴 때일수록 더 오래 생각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지난해만 해도 학교에도 자주 가고 하늘도 자주 쳐다보고 했는데,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리고 친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없으니까 너무 아쉬워요.
● 나이, 지금보다 적거나 많거나
열일곱, 열여덟, 제가 지금 모호한 선에 서 있잖아요. 근데 요즘 들어 성
[송년특집] 2004년의 얼굴 -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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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식이 말하는 2004년의 백윤식
● 2004년 활동 명암
의미는 매년 다 있지. 내가 올해에 연기를 새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 스텝 바이 스텝, 밟아 올라온 것뿐인데, 그렇게 축적된 것이 올해 포괄적 인증을 받은 거죠. 올해는 날 ‘재료’로 사용해줄 수 있는 여건이 영화나 TV쪽에 많이 형성된 것 같아요. 내가 달라진 건 없지만, 외부적인 변화는 많았죠. <9시 뉴스>에서 날 소재로 다루고, 인터넷 검색순위 1위가 되고, 그런 일들은 생각도 못했고, 지나서야 알았어요. 오너 아니면 퇴역 장성이 돼 있을 나이이고, 조용한 데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쉬고 있을 나이에, (웃음)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게 기쁘고 고맙죠. 안타까운 일이라면, 날 필요로 하는 분들을 다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다는 건데, 떡이라고 다 먹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내 생각해서 제안해준 분들과 일일이 같은 배를 못 타서, 그게 안타깝고 미안하죠.
● 나이, 지금보다 많거나 적거나
나이는 별로
[송년특집] 2004년의 얼굴 - 백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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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을 대표하는 두 배우- <범죄의 재구성>의 백윤식과 <어린 신부>의 문근영
<범죄의 재구성>의 김선생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올해 두번이나 수술을 당했다. 그것도 심각한, 뇌수술 수준이었다. ‘어린 신부’ 문근영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에, ‘김선생’ 백윤식의 서늘한 카리스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동년배도 라이벌도 아닌 이들을 묶어 말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만, 2004년의 사건사고를 꼽아볼 때, 이들이 나란히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따져보면, 두 사람은 영화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하고, 올 하반기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던 포털 사이트의 얼굴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대에게 사랑받는 ‘진짜’ 십대 배우, 아버지상이 아닌 중년 배우라는 식으로, 이전 충무로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했던 영역을 개척하고 입지를 다진 스타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알다시피, 이들은 20대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팬들도
[송년특집] 2004년의 얼굴 - 백윤식 &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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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감독의 새 영화 <녹색의자>가 조용히 완성됐다. 영화는 성인 여성과 미성년 고등학생의 역원조교제에 관한 기사에서 소재를 얻어 만들게 된 것이다. “예산? 7억원 정도 들어갔죠. 거품 많이 들어간 요즘 영화에 비교하면 적지만, 내 영화치곤 많이 들어간 거예요.” “저예산 영화제작 방식보다는 합리적인 영화제작 방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강조하는 박철수 감독답게 내실있는 영화 한편을 또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녹색의자>는 2000년에 만든 디지털영화 <봉자>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그동안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박철수필름의 이름으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을 제작했고, 박철수 아카데미에서는 졸업생도 배출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발이 묶인 형국이 됐지만 감독 위주의 창작 프로젝트를 위해 발족했던 뉴 시네마 네트워크(NCN: New Cinema Network)는 이제 곧 다시 운신의 폭을 넓힐 것이라고 한다. 박철수 아카데미의 경우
신작 <녹색의자> 완성하고 선댄스영화제에 출품한 박철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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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니 미키의 연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투수의 변화구다. 아웃코스인 듯하면 가슴 서늘하게 안쪽을 파고들고, 오픈스탠스로 안쪽을 노리면 보란 듯이 밖으로 휘어져 나간다. 따라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도 종횡무진. 일단 나카타 히데오의 <링1, 2>, 이다 조지의 <라센>으로 호러퀸의 아성을 쌓았다. 이후 <카오스>의 사오리, <게이조쿠>의 시바타로 대담하게 변신하며 스릴러물에서도 괴력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프로듀스한 정규 앨범만 9장이 넘고, <한여름밤의 크리스마스> <게이조쿠> <여의사>로 이어지는 드라마들도 전방위적 엔터테이너로서의 그녀를 입증한다. 유례없는 <역도산>의 대규모 시사로 인해 하루종일 강행군으로 진행된 무대인사와 인터뷰로 녹초가 된 그녀를 극장에서 만났다. 하얀색 샌들과 하늘거리는 파란 원피스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죽겠다”라는 한국말을 내뱉을 정도의 상황. 그러나
싱싱한 여인의 종횡무진, <역도산>의 아야 역 나카타니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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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달린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있는 모습은 발랄해 보였다. 미소니풍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로 바꿔 입고 어깨를 살짝 드러내고 다리를 벌린 자태는 전성기의 제시카 랭을 보는 듯 아찔했다. 이 여자가 과연 〈토지〉의 서희 맞나. 드라마 <상도>의 다녕 맞나. 가르마를 곱게 갈라 비녀를 한 단아한 아씨라기보다는 금방 롤리타의 껍질을 깨고 나온 도발적인 소녀 같다. 조금이라도 안에서 뭐가 끓어올라 넘칠 듯한데 그건 또 아니다. 도톰하니 아랫입술을 살짝 덮어누르는 윗입술이며, 화장을 지워도 그대로라는 짙은 눈썹에서 고집이 읽혔다. 가벼워 날아갈 것 같은 인상을 선 굵은 눈썹이 잡아 내리고 있달까.
“다중인격자죠. (웃음) 사람들은 속아요. 좋고 맑은 면만 봐요.” 고전적인가 하면 현대적이고 단정한 듯하지만 튀어오르는 공처럼 탄력이 넘치는 변신의 재능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윗잇몸이 다 보이게 까르르 웃으며 이성재에게 ‘죽었어 죽었어’를 연발할 때는 아무 근심없는
블루스가 어울리는 한쌍, <신석기 블루스> -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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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조화롭지 못하다. 드라마보다 영화에 죽 몸을 파묻어온 이성재와 영화보다 드라마와 CF에서 윤곽이 뚜렷했던 김현주. 매체가 사람을 결정짓는 건 아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노련하게 다져진 두 기운이 섞인 느낌을 촬영장 한켠에 서서 느낀다. 김현주는 “이래야 다리가 길어 보여요, 오빠” 하거나 “난 왼쪽 얼굴이 더 예쁘게 나오니까 자리 바꿀래”라는 식으로 의사 표현이 매우 분명한데, 군말없이 김현주의 코치를 따르거나 순순히 자리를 바꿔주는 이성재도 상대방의 페이스만을 쉽게 따를 사람 같지는 않다. 방식이 조금 다를 뿐 어느 한쪽도 연약해 보이지 않은 두 사람은 그러나 프로페셔널하게 마블링 무늬처럼 뒤섞인다. 농담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울린다. 자기만의 페이스로 각각 카메라렌즈에 집중해도 만들어지는 근사한 조화 그리고 호흡. 동등한 프로의식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결과다.
“망가진 외모,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탈바꿈을 목말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라는 인간을 버리고 환골탈태해
블루스가 어울리는 한쌍, <신석기 블루스> -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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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준비차 방한한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장 미쉘 프로동
<르몽드>의 영화부문 책임을 맡고 있던 장 미셸 프로동은 2003년 7월 역사 깊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새 편집장으로 부임했다(첫 번째 편집장의 글을 쓴 건 9월이다).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2005년 1월호 특집기사로 한국영화를 싣기 위해 그가 한국에 왔다. 1980년대부터 폭넓게 아시아영화를 주목해온 <카이에 뒤 시네마>의 일관된 편집방향과 한국영화에 많은 애정을 지닌 장 미셸 프로동 개인의 관심이 동석한 결과이다. 4박5일 중 4일째 되는 날 그를 만났고, 개인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현재, 그리고 한국영화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는 자리로 진행되었다. 세계 영화역사의 커다란 사건이자 동력이 되어온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만나 밖으로부터 다시 안을 되돌아본다.
<씨네21>에 몇 차례
한국 온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장 미쉘 프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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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의 아버지,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음악가, 가장 많은 음악상을 휩쓴 타이틀 홀더, 클래식 음악을 상업적으로 도용하는 장사꾼, 가장 많은 혹평을 감수해야 했던 비평가들의 ‘공공의 적’. 뮤지컬의 제왕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얼굴과 행적은 스포트라이트와 어둠 속을 넘나든다.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연극배우였던 숙모의 영향으로 뮤지컬의 길로 들어선 그는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선셋 대로> 등을 쏟아내며 1980년대부터 브로드웨이를 지배한 인물. 그리고 웨버의 뮤지컬 가운데도 <오페라의 유령>의 위치는 특별하다. 전세계 입장수익 30억달러, 국내관객 25만명 동원. 전세계 음악시장에서 비틀스 이후 가장 강력한 제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기억되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뮤지컬의 결정판. 그 <오페라의 유령>이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
영화 <오페라의 유령> 만든 뮤지컬 마스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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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는 환갑이 되어도, 파격을 추구할 사람이다. 그는 풍파에 닳지 않는 강하고 예리한 각을 지닌 바위처럼 그렇게 늙어갈 것 같다. 모나게 모나게. <트레인스포팅>에서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각을 체험하던 마약중독자가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의 스승이 되고, <물랑루즈>에서 로맨틱한 순정남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러려니 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인디에서 블록버스터로 흘러들어가는 게 ‘수순’이니까. 그런데 이완 맥그리거는 기어코 그 원심력에 저항했다. 섹스에 중독된 한 청년의 유랑기 <영 아담>(2003)은 난해하고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법한 소재 때문에 투자자들이 손을 떼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이완 맥그리거는 신인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에 반해서, 직접 로비를 하며 투자를 받아내는 등 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이렇게 훌륭한 영국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그들은 긍지와 기쁨을 느껴야 한다. 영국 사람들이 영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파격을 즐기는 아웃사이더, <영 아담>의 이완 맥그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