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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SF영화 <놉>을 보았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라, 중반까지도 도대체 어떻게 풀려나갈 이야기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랬기에 점점 정체를 드러내듯 펼쳐지는 내용을 따라 가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특히 초반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장면이 나중에 감동을 폭발시키는 소재로 활용된다는 것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예를 들면 <놉>에서는 영화라는 소재와 매체에 대한 애정이 후반에 중요하게 활용된다. 그런데 영화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도입부에 끼워넣은 장면에서 그 내용을 보여주는 연출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 가족이 영화의 역사와 관련 있는 집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자기 사업을 홍보하면서 꺼내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우리 집안은 이러한 집안입니다”라고 배우 한명이 줄줄 말로 소개하는 장면이다. 인상적이거나 특이할 것도 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재미없게 듣자면 친척 아저
[곽재식의 오늘은 SF] 현란한 미지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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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큰 완연한 가을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는 정설은 올해도 변함없이 증명되었다. 지난주에 이어 1378호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과 ‘뉴 커런츠’ 부문 영화들을 중심으로 신진 한국영화 감독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수시로 기자들에게 물었다. 어떤 한국영화가 가장 좋았느냐고. 그때마다 거듭 호명된 화제작은 이정홍 감독의 <괴인>, 김태훈 감독의 <빅슬립>,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였다. <괴인>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기이한 기운을 품고 있다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부산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괴이한 호소력을 증명했다. 기자들이 미처 수상을 예상하지 못한 작품으로는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그래서 도리어 영화가 궁금해 이솔희 감독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꼼꼼히
[이주현 편집장] 미래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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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화 <히든 피겨스>는 저임금 여성 전문직, 특히 흑인 전문직의 애환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배경이다.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20세기 초반에 별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여성 천문학자들이 주로 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나사에서도 그렇게 했던 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계산 전문요원인 흑인 여성이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사 프로젝트 수장인 알(케빈 코스트너)은 장도리를 들고 “유색인용”이라고 적힌 화장실 간판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나사에서는 우린 다 같은 색깔의 소변을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내가 케빈 코스트너를 가장 멋지게 본 장면이다.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스페이스 포스>에서 사령관으로 나오는 스티브 커렐이 “나사에는 네오나치도 많다”는 얘기를 한다. 20세기에 혐오는 인종 문제에 대한 함의를 주로 다룬다.
2022년이 이제 두달 조금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혐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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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있는 서울시극단 연습실에 도착했다. 10월 중에 있을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이하 <일기슬>) 연습을 위해서다. 연극이라면 어릴 적 학예회에서 해본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첫 시도 치고는 너무 큰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연극 경험이 없는데 괜찮을까 걱정을 했지만 맡게 될 역할이 인디 뮤지션인 만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제안하신 것 같다(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겠다 싶었지만 준비를 많이 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수락했다. 그리고 역시나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함께하면 할수록 점점 작아지고 있는 중이다. 연습을 최대한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며 시작하긴 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해본다.
연습은 낮에도 있지만 주로 저녁 시간에 많이 한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할 때쯤 대체로 퇴근시간과 겹친다. 광화문이 사무실 밀집지역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퇴근시간의 모습을 몇주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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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이번주 원고를 써야겠다’ 다짐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자마자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대체 왜 지난번 칼럼을 이어서 연재하겠다는 약속을 한 거지? 그때 화가 좀 많이 쌓였었나? 두렵다. <씨네21>을 애독하는 일백만 스필버그 기 살리기 협회원들이 이 글을 읽고 분노해 내 얼굴 사진을 붙인 허수아비를 ‘용아맥’(CGV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앞 광장에서 불사르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안 그래도 요즘 그 동네 분위기 많이 어수선한데. 살짝 변명을 깔고 들어가자면, 스필버그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다. 내 인생 첫 극장 관람 영화는 <쥬라기 공원>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명절마다 두근거리며 즐겼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결말이 좀 그랬지만 앞 부분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와 <E.T.>는 영 재미가 없어 매번 포기하는데,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케이블TV 채널에서 마주칠 때마다 즐겁게 시청하는 편이다. &
[이경희의 오늘은 SF] 아니 근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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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눈 아래 맥립종이 보이네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일정 막바지쯤, 며칠간 지속된 여흥의 훈장으로 눈 다래끼를 얻었다. ‘다래끼가 난 눈 부위의 속눈썹을 뽑아서 돌멩이 위에 올려두면 그 돌멩이를 발로 찬 사람이 다래끼를 가져간다’는 다래끼 민간요법(?)이 어느 식사 자리에서 화두에 올랐는데, 이 이야기를 아는 건 나를 포함해 부산 출신 2명뿐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며 코웃음 치는 사람들을 향해 모 영상위원회 본부장은 새로운 IP의 경향을 얘기할 때만큼이나 진지한 얼굴로 (아마도 부산 지역에서만 구전되어온 듯한) 민간요법을 설명했다. 다래끼 얘기가 좀 뜬금없을 테지만, 요는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반가운 이들과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원 없이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단절감을 해소하고도 남을 만큼 무수한 ‘00의 밤’들이 이어졌다.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들이 파티를 열었고 기관과 단체에서도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으며 영화
[이주현 편집장] 영화제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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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강습을 받은 지 한달이 됐다. 동네 체육센터의 치열한 신청 경쟁을 뚫고 등록에 성공한 덕이다.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면 그 반은 마지막까지 정원이 다 차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텃세가 심한 곳도 있다는데 한두번 나가고 포기하게 되면 비싼 나의 배드민턴 라켓은 어쩌나(20여년 전에 배드민턴을 배웠다는 이유로 선수용 라켓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깐깐한 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한달 수강료는? 나의 설렘은? 이런 노심초사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구나, 생각하며 첫 수업에 참석했다.
첫날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발을 어디서 갈아신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코트에 쭈뼛쭈뼛 들어가 한쪽에 가방을 두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그래도 우리 반은 텃세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야 그지” 하고 이야기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가와서 처음이냐고 물었고, 저기 가서 칠판에 이름을 쓰고 오라고 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서 썼다. 본인과 잠시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초보자 되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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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을 다룬 영화의 걸작을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로 <토탈 리콜>(1990)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기억 조작 기술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그 기술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판매하는 미래 사회다. 주인공은 그 와중에 이상한 음모에 휘말려서 지구와 화성에 걸쳐 모험을 벌이게 되며 동시에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토탈 리콜>은 21세기에 나온 리메이크작보다 원작이 훨씬 더 좋은 평을 받으며 흥행했는데, 그 때문에 <로보캅>과 <스타쉽 트루퍼스>로 명성을 떨친 폴 버호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함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전성기 때 주연을 맡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들은 어디까지가 가상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혼동되는 이야기를 다룰 때가 많다. 이런 이야기는
[곽재식의 오늘은 SF] 깊고 깊은 토탈 리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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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갓 입사했을 무렵 회사엔 부산 출신 선배들이 꽤 있었다. 과연 영화의 도시답게 부산이 키운 영화기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기간이 되면 숨겨왔던 사투리와 함께 자기만의 맛집 리스트를 당당히 꺼내놓곤 했다. 이를테면 돼지국밥은 어디가 맛있고 복국은 어디가 잘하고 밀면은 어디가 최고라는 식으로. 부산에서 나고 자라 객원기자 시절부터 부산영화제 공식 데일리팀에 꼬박꼬박 합류했던 나는 사투리 통역이나 해운대 지역의 길안내 역할엔 자신 있었지만 부산의 맛집 소개 앞에선 매번 고난도의 숙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복국이나 돼지국밥을 부산영화제에 출장 와서 처음 먹어봤을 정도니 “네가 그러고도 부산 사람이냐”는 소리를 돌림노래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듣고 또 들었다. 그럼에도 부산영화제 기간만 되면 괜히 부산 사람이라는 뿌듯함에 혼자 조용히 젖어들곤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소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탈피해 ‘완전한 정상 개최’를
[이주현 편집장] 부산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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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 적이 있을까?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유튜브 클립에서 한 선수의 응원가를 들었다. “가~가~가~가~ 가~르시아”로 시작하는 연호는 빨라지는 박수와 함께 지축을 흔들었다. 10년도 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카림 가르시아 선수는 헨델의 <메시아> 멜로디에 그의 이름을 넣은 응원가가 트레이드마크였다. 이역만리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인 이방인은, 어쩌면 두려움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불안한 기대로 이 땅을 밟았을지 모른다. 적응을 위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응원가가 만들어졌을 때 느낀 전율은 익숙한 곳에서의 환대보다 몇배나 컸을 것이다. 이후 한화 이글스로 팀을 이적했을 때 그 응원가를 써도 좋은지 롯데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는 후일담을 통해 그의 감동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모두가 꿈꾸는 축구의 종주국에서 자랑스러운 손흥민 선수는 지금도 역사를 새로이 만들어가고 있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응원하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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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도 어느새 절반 가까이 지나고 가을이 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늦더위가 꽤나 강렬했다. 하루이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을이구나 하면 다시 덥기 시작하고 이제는 정말 가을이 왔겠지 하면 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올해는 다시 켤 일이 없겠지 생각했던 에어컨을 다시 켜면서 이번 주말 공연을 대비해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철 지난 건 아닐까 싶은 반바지에다 땀 흘릴 때를 대비해서 티셔츠도 몇벌 더 챙겼다. 하지만 예상을 했음에도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에서 더위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잔디밭 위에 쳐진 대기실 천막은 열기를 막아낼 수 없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어놓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공회전하면서 배기가스를 계속 내뿜기도 영 내키지 않아 풍경을 보면서 그늘에 앉아 있기로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 땀으로 젖는 것은 왠지 일에 최선을 다한 것 같고 뿌듯한 기분도 들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눅눅한 상태가 되는 것은 썩 개운치가 않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땀을 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땀이 가득한 손에 입바람 불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