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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던 김진규가 두 번째 소설을 출간했다. 그런데 심각한 어조의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술술 읽히는 대중성이 두드러진다.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독자에게 마당놀이 한판을 보는 듯한 유쾌함을 선사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배경은 조선 영정조 시대의 한성부 중 ‘명례방’ 즉, ‘남촌’이라 불리는 곳인데, 당시 정치적·사회적인 흐름보다는 현대에도 충분히 적용될 법한 다양한 인간들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것도 양반보다는 중인이나 노비, 귀감이 될 만한 선비보다는 아둔하고 삽질을 일삼는 중년 사내들로 가득하다. 하나같이 한심한 인생들이지만, 왠지 밉지가 않다.
제목에서 말하는 ‘280일’이란 공생원의 아내인 ‘마나님’이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기간이다. 공생원은 올해 마흔다섯살의 한량인데, 마나님이 결혼한
[한국 소설 품는 밤] 마나님의 애인 찾아 28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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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적힌 대로 ‘동서양 기괴 명화’이고, 부제는 ‘눈으로 보는 방랑 여행담’이다. 하지만 이 책을 설명하는 데는 그 둘보다는 책을 구성하는 각 장의 제목들이 더 적당해 보인다. 뒤섞이는 이형, 공간의 유희, 동물들의 여행, 일상의 사건. 유럽 중심의 명화 산책이 아니라 인도, 중국, 일본과 유럽 각국의 이형(異形)과 특색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경이의 서>에 삽입된 삽화에는 거대한 외다리를 올린 괴물 왕발이가 등장하는데, 그 상징적인 번쩍 하늘로 들고 있는 거대한 외다리의 그림은 이후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 새로이 그려졌다(원래 왕발이는 외다리로 이동하다 햇살이 뜨거워지면 다리를 거꾸로 세워 그늘을 만들어 휴식을 취하는 녀석이라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남다르게 소화하는 구석이 있다.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동시에 일으킬 듯 끝없이 넓은 곳에 빈틈없이 인간이 들어찬 그림의 이상한 매력을 말하는 대
[도서] 그 기괴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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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봐, 넌 건강해지고”라고 노래부르는 ‘그분’의 외다리 깡충댄스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잊어버릴 만하면 이슈를 만드는 그의 천재적 재능에 감탄하다가도, 내 나이 64살이 되면 세상이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기억하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 잊혀진 이름이라고 아무도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유머러스하고 기상천외한, 독특한 논픽션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그런 잊혀진 자들, 패배자들에게 주목한 책이다. 부제를 빌려 설명하면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다. 역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누락해버린, 하지만 그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 이를테면 프랑수아 수드르는 보편 언어를 꿈꾸었다.
1787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뒤 음악 강사가 된 그는 음악으로 보편 언어를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글자를 음으로 바꾸는 언어체계, 독립적인 음악 언어가 아니라 현존하는 언어를 옮긴 신호 체계를. 엉뚱한가? 그런데 정말
[도서] 잘나갔노라, 잊혀졌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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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쓴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은 그의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그 자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받은 500여 질문 중 간추린 84개의 질문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성실한 답변을 담은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작가로 살아온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당장 그의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쓸 수 있습니까. 예술을 하는 데 재능과 노력은 어느 정도 비율이어야 합니까.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 공통적으로 전달하고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황홀한 글감옥>은 그에게 묻고 싶은 거의 모든 질문이 총망라된 책이다.
[도서] 조정래에게 묻고 싶은 84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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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매된 도나웨일의 1집은 꽤 깔끔한 사운드와 정서로 주목받은 앨범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이다. 1집에서 로하게 들렸던 감성이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밴드와 팬들 모두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변화일 것이다. 특히 마시멜로처럼 말랑하면서도 탄력있는 멜로디의 <도레미>와 스산한 가을바람에 떨리는 가슴을 대변하는 것 같은 <스노우 드립>의 아득함, <Bye Bye Waltz>의 아기자기함과 불현듯 삽입된 파도소리가 인상 깊을 것이다. 물론 도나웨일이 한국 인디의 바로미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한국 인디, 혹은 한국 록의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듣기 좋다. 믹싱이 어떻네, 사운드가 어떻네, 음질이 어떻네 같은 딴생각을 안 하게 된다. 멜로디에 집중하게 되고 노랫말을 살피게 된다. 감상적인 밴드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성취는 드물 것이다. 곧 겨울이
[음반] 위로가 되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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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18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총 79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기록만으로도 머라이어 캐리의 ‘포스’는 압도적이다. 이번에는 6년 만에 한국에도 온다.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이 한국이라는 건 그만큼 한국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인기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이란 제목대로, 새 앨범은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 천사’란 수식이 허세처럼 보일 수도 있겠고, 나이와 무관하게 줄기차게 헐벗고 있는 커버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머라이어 캐리다. <Hero>의 그녀란 말이다. 빌보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솔로이자, 빌보드 50년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앨범이 팔린(1등은 물론 비틀스다) 가수다. 첫 싱글 <Obsessed>와 두 번째로 싱글 커트된 그룹 포리너의 1985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음반] 빌보드 여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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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은 은밀하고, 아주 거의 외설적이다.” ‘쉬었다’ 가는 커플에게 그 은밀하고 외설적인 모텔의 특성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것이겠지만 맨송맨송하게 ‘자고’ 가야 하는 일행 없는 여행자나 출장을 간 사람이라면 모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은밀함과 외설에 다소간 치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물며, 눈먼 개와 함께 여행하는 남자는 어떻겠는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그런 생활을 3년이나 해왔다. ‘아라비안’, ‘달과 6펜스’, ‘바나나’처럼 제멋대로의 이름을 가졌지만 그 속살은 대동소이한 고만고만한 모텔을, 늙고 눈먼 개와 함께 전전해왔다. 세면대 아래,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2009년 8월3일, 나와 와조가 다녀감”이라고 네임펜으로 적어놓는 작은 비밀을 만들면서.
아, 소개가 늦었다. 와조는 지훈이 데리고 다니는 늙고 눈먼 개의 이름이다. 와조는 그의 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던 맹인안내견이었다. “녀석에게 이리 와조, 도와조란 말을 주로 하다보니”
[한국 소설 품는 밤] 눈먼 개와 나의 모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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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에는 모두가 그림을 그리고 부르고 무언가를 만든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고 배우였고 도예가였고 무용수였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나는 넥타이를 맸다. 이제 전화 통화할 때나 그림을 끼적대는 사람이 되었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놀이터엔 더 이상 갈 일이 없어졌다. 대신 TV로 골프중계를 봤다.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었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어른이 되고 밥벌이를 하느라 “잊고 있던(혹은 잃어버렸던)” 창작열에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드로잉 기법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장르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는 말로 가득하다. 머리로 아는 것을 버리고 다시 보는 법을 익히라는 말은 삶의 태도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잠언이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펜과 종이만으로 드로잉을 하고 싶을 때, 어떤 펜과 어떤 종이면 되는지, 왜 내가 그리는 그림은 발전이 없
[도서] 어른들이여, 예술가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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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직업이 있다면, 그건 바로 기자다. 늘 새로운 흐름을 좇는 기자와 많은 새로움의 원형이 되는 고전물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클래식 중독>의 저자 조선희는 <씨네21>과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깊고 깊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영화 주간지의 업보인 새 영화 중독에서 벗어나 한국 클래식영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료원 생활을 시작하니, 옛 영화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옛것이 새것보다 짜릿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한 전직 기자의 새 업보 이야기다.
이장호,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 신상옥….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의 ‘짜릿한 고전 리스트’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의 거장 감독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대표작에 치중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감독들의 인간적인 면까지 조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장 많은 페이지(38p)를 할애하며 애정을 표현한 장선우 감독을 예로 들어보면, 저자는 <경마장 가는 길>이
[도서] 장선우의 <꽃잎>이 걸작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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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어본 제목이라고? 맞다. 이 책은 히치콕이 연출한 1935년작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1915년에 쓰여진 첩보물의 고전인 <39계단>은 히치콕의 작품 말고도 두번 더 영화화되었고, <BBC>에서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연극으로 각색되어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려졌고, 2011년 개봉예정으로 네 번째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리처드 해니는 3개월 만에 고국 생활에 질려버린다. 어느 날 아파트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낯선 남자와 마주친다.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입을 뗀 남자는, 자신은 국제적 음모를 막아야 하며, 추격자가 있어 몸을 피할 곳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한다. 남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은 해니는 그를 집에 들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해니의 집에서 몸에 칼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다. 해니는 죽은 남자가 나라를 위해 하고자 했던 일을 대신 하고자 마음먹고, 죽은 이의 비밀 수첩을 가
[도서] 쫓기는 자의 심장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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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3부작’(<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로드>로 유명한 매카시의 대표작이다. 사막을 무대로 한 묵시록적 서부 소설 연작이다. 서부물이라고 해서 악과 싸워 이기는 선이 존재한다거나, 스릴 넘치는 총격전이 주를 이룬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을 처음 읽었던 때, 일주일가량 앓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막과 소년들과 언제나 ‘저편’만이 존재하는 국경이 등장하는 악몽에 가까운 꿈이 밤마다 찾아왔다.
‘국경 3부작’은 앞 두권의 이야기가 마지막 <평원의 도시들>에서 대단원을 맞는 구성이다. 그러니 세권을 차례로 읽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세권을 벼르다 한권도 읽지 않을 가능성을 대비해 한권을 추천한다면 두 번째 책인 <국경을 넘어>가 좋을 것 같다. 소년은 부모와 살던 농장에 출몰하던 늑대에 매혹된다. 소년은 어
[도서] 서부에서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