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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챗지피티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기대 편
문원립 2023-03-02

우리의 질문에 따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필자 소개

문원립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다큐멘터리 <비>(2008) 등 연출. 영화제의 자체 자막 기술인 ‘큐 타이틀’을 개발했다.

챗지피티 같은 언어처리 프로그램은 현존하는 텍스트에서 패턴, 즉 규칙성을 찾아 활용한다. 예를 들어 AI가 접한 거의 모든 문서에 You 다음에 (is가 아니라) are이 나오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쓴다. 여기서 주어로 You를 쓰는 것 또한 다른 텍스트를 봤을 때 그 단어가 나올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동사가 아닌 be동사를 쓴 것도 마찬가지다. 문맥상 확률이 높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AI가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인간과 매우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챗지피티, 스토리텔링도 가능할까?

챗지피티의 주 기능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에 대입해보자면 대본 작성과 가장 밀접하다. 그러나 챗지피티가 일반 영화의 대본을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분량의 문제가 있다. 현재 챗지피티에 에세이를 써보라고 하면 총 분량이 몇백 단어에 그치고 만다. 최근 챗지피티가 썼다는 책이 나왔는데 그것도 수십개의, 비교적 독립적인 챕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텍스트가 길어지면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잡담의 연속이라면 얼마든지 길어질 수 있겠지만 영화 대본은 그런 게 아니다.

대본 전체를 쓰는 건 어려워도 줄거리는 쓸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어렵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챗지피티는 어떤 사실을 진술하거나, 특정 주장을 전하는 건 잘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문제가 다르다. 이 차이에 대해 챗지피티에 직접 물어보았다. “AI가 논쟁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관련된 규칙들이나 논리적 추론 모델을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스토리는 언어와 맥락과 인간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중략) 근래에 자연어 처리 기술의 발달로 AI가 그럴듯한 스토리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종종 감정의 깊이가 없으며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챗지피티만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도 충분히 있다. 챗지피티가 말했듯 AI가 쓴 플롯은 대개 정형화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극장 개봉하는 영화의 대다수가 그렇지 않나? 실제로 영어권에서 인터 넷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챗지피티 같은 AI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필자도 한번 챗지피티에 플롯을 요청해보았다. 조건은 ‘나이 많은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였다. 반 페이지 정도 길이의 줄거리를 받았는데, 노인의 직업이 은퇴한 형사라는 게 좀 맥 빠지고 결말도 허술한 구석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꽤 그럴듯했다. 온라인의 다른 사용 후기를 보니 가끔은 감탄할 만한 문구도 나오는 모양이다. 아래는 미국의 한 교수가 챗지피티에 받은 미스터리 플롯의 도입부이다.

“사라는 늘 달렸다. 그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육상팀이었고 20대 후반인 지금도 동네 한 바퀴 달리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오늘, 사라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달린다.”

농담도 할 수 있는 챗지피티

챗지피티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전체 플롯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범위를 좁혀 말하도록 하는 게 나아 보인다. 챗지피티가 잘하는 게 잡담(chat)인 만큼 그것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화 장면을 쓰던 중 다음 대사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챗지피티에 물어보면 어떨까. 실제로 간단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필자 아래는 한 대화 장면이다. 이어지는 여자의 대사를 써라. 짧고 웃기면 좋겠다.

필자 남자: 어젯밤에 자기가 잘 때 영화 보고 왔어.

필자 여자: 왜 그랬어?

필자 남자: 잠이 안 와서….

챗지피티 여자: 그래서, 불면증의 해결책이 최신의 슈퍼히어로영화야?

필자 빈정대는 것으로 들리긴 하지만 특별히 웃기지는 않다.

챗지피티 나의 답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미안해. 다시 시도해볼게.

챗지피티 여자: 아, 그래서, 잠이 잘 안 와서 대신 공포영화를 보러 갔단 말이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준수하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잠을 못 잔다고들 하므로 두 번째 것이 조금 더 코믹한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챗지피티가 농담도 던질 줄 안다고 하여 그것도 시도해보았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수영장에서 마주친 상황 아래, 조크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둘이 수영을 하던 중 트럼프가 시합을 제안했다. 바이든이 응하자 트럼프가 바로 출발했고 바이든이 뒤를 쫓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수영장 끝에 거의 다다라 승리를 주장하려는 찰나에 바이든이 그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뭐 하는 거야?’ 트럼프가 외쳤다. 그러자 바이든이 말했다. ‘미안해 도널드, 난 정치가야. 이기려면 무슨 짓이든 해.’”

두 사람의 캐릭터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것, 즉 정치가이기만 하면 해당되는 조크라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꽤 재미있다.

챗지피티의 작문 실력에 많은 사람이 놀라워한다. 내용 자체가 생각만큼 참신하지 않더라도 문장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러한 변화에 염려하는 이들도 많다. 많은 교사들이 이제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지 못할 거라고 걱정한다. 어떤 교사는 아예 작문 수업이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게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 챗지피티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유머나 농담같이 고차원적인 문장 기술은 아직 발전 여지가 있더라도, 기본 능력은 상당하다. 실제로 어느 장르 소설 작가는 원고를 다듬을 때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는다. 연출자는 극중 인물이 작성한 자기소개서나 일기처럼,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화면에 몇초 나오는 소품을 챗지피티에 부탁할 수 있다. 시나리오에 전문적인 변호사의 변론을 쓸 때에도 유용할 것이다. 챗지피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문서를 읽고 접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자산으로부터 아주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