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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회하지 않는 사랑스러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이자연 2024-03-01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을 귀여워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사회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아동문학가 이오덕)

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 창의과학과 태권도, 미술, 코딩 그리고 이젠 페르시아어까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동춘(박나은)은 승진이 버겁다는 아빠보다 더 바쁜 일상을 지낸다.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A to Z를 습득하는 동안에도 동춘이는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 하나를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지금 이거 왜 하는 거예요?” 육하원칙 중에서 동춘이는 ‘왜’를 묻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학원가에서 이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질문하지만 어른들은 대답하길 주저하거나 미룰 뿐이다. 질문을 멈춘 동춘이가 수련회에서 우연히 만난 건 다름 아닌 막걸리다. 톡… 토독…. 발효된 거품을 터뜨려 모스부호를 보내는 막걸리는 동춘에게 무려 로또 번호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동그랗고 조그만 11살짜리 어린이 주인공의 모험기를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귀여워하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뒤편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그 방식이 사교육을 다뤄온 기존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SKY 캐슬> <그린마더스클럽> <펜트하우스> 등 교육열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상류층의 노골적인 욕망을 그린 작품들과 달리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그 선택권을 기꺼이 넘긴다. 사랑을 표현하고 안아주고 일찍 자라며 두터운 지지를 전하는 부모 덕에 자기 욕망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어머니로 문제 인식이 헛돌지 않고, 아무리 너그러운 선택권이 주어져도 학원가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통해 문제의 근원을 응시하게 한다. 영화는 따뜻하지만 명확하고, 사랑스럽지만 우회하지 않는다.

영화가 드러내는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어린이에게 선택권을 주긴 주는데 좁고 얕다. 막걸리가 행운의 당첨 번호를 알려줘도 동춘이는 로또를 손에 쥐지 못한다. 미성년자는 로또를 살 수 없다는 편의점 직원의 말만 되풀이될 뿐이다.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 나갈지 자유롭게 결정하라는 엄마의 제안은 모의고사 1등의 기쁨을 자축한 직후이고, 스마트폰은 공부만을 위해 돌아가는 벽돌폰에 불과하다. 어른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과 어른의 통제가 익숙한 평온함 속에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어린이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기회가 거의 없던 아이들이 일탈이나 모험을 모색하기보다 본능적으로 안락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아무도 쉽게 저항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계관을 보며 관객은 시나브로 현실을 바꾸고 싶은 내적인 충동을 느낀다. 영화는 그렇게 변화를 도모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동춘이는 무척 귀하다. 동춘이는 좁고 얕은 선택권 안에서 성실히 골몰하면서도 그 선택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스스로 또 다른 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수련회에서 만난 막걸리를 선생님에게 들킬까 걱정된다? 음료수병 ‘아침햇살’에 깨끗이 옮겨 담는다.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 무대공포증이 있다? 이걸 해야 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면 무조건 참고 견딘다. 막걸리가 모스부호로 얘기한다? 모스부호를 공부한다. 간단하고 깔끔하게. 초등학교 4학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현실적으로 나누어 구분하면서 어린이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그리고 막바지에 이르러 영화는 동춘이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오롯이 자신의 기호와 판단만이 작용할 새로운 질문을 건넨다. 누구에게 물을 수도 물어서도 안되는 절체절명의 질문을. 이번에도 막걸리가 대신 알려줄까?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나선 동춘은 (타인의 이해와 동의를 받을 필요 없이) 제 안의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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