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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에게 소통이 필요한 순간,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김다민 감독, 배우 박나은 인터뷰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4-03-01

동그란 머리에 동그란 눈. 붉은 두뺨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웃음소리.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박나은 어린이 배우가 스튜디오에 입장하는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무표정하고 뚱한 표정으로 자기만의 모험을 펼쳐나가던 화면 속 동춘이가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에도 어린이는 곧잘 웃고 곧잘 대답하며 사진 촬영에 임했다. 보호자를 대동하지 않고 “저는 원래 혼자 다녀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영화의 힘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엉뚱하고 개성 넘치는 상상은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막걸리 제조법을 배운 김다민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저녁마다 학원 차량이 늘어선 학교 앞 풍경과 발효된 막걸리가 말을 걸듯 톡톡톡 소리를 낸다는 두 가지 사항을 합쳐 지금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완성됐다. 인터뷰를 위해 김다민 감독과 박나은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고, 김다민 감독은 동춘이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나은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인터뷰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답하는 모습. 이토록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장면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펼쳐졌다.

- (인터뷰 진행 일정을 기준으로) 바로 어제 언론배급 시사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진행했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박나은 기자회견 자리에 앉기 전부터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만 바라보는데 너무 떨리는 거예요.

김다민 그래서 나은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손을 올려 확인할 정도였어요. 콩콩콩.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그래도 긴장하지 않고 질문에 대답도 너무 잘해줬어요.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주인공을 발굴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으로 오디션을 거쳤고, 또 동춘이 역으로 나은이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다민 동춘이다운 것을 생각했을 때 너무 인형처럼 예쁘거나 매체 연기에 능숙한 친구들은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들을 찾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동춘이가 멍 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린이 연기자를 물색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오디션 막바지에 이르러 정말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그때 나은이를 만난 거예요. 제가 실제로 콘티에 그려두었던 동춘이랑 너무 똑같아서 일단 놀랐고요. (웃음) 그리고 독보적으로 사랑스러운 표정이 제 마음에 들었어요. 멍하고 뚱한 표정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며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냥 동춘이 그 자체였어요.

박나은 오디션에서는 세 장면을 연기했어요. 들판에서 털복숭이랑 얘기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랑 모스부호 공부하다가 엄마가 뭐 하냐고 묻자 “문제 풀기!”라고 얼버무리는 장면. 그리고 막걸리 마시는 장면 이렇게 세 장면이었어요. 이중에서 털복숭이랑 얘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페르시아어’라는 단어를 계속 말해야 하는데 그 발음이 저한테는 너무 어려웠어요.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할 거라고 처음 알려준 어른은 누구인가요.

박나은 저희 소속사 대표님이요. 이 작품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보셔서 “당연히 해야죠!” 하고 대답했어요. 영화를 너무 찍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8살 때 드라마 <위대한 쇼>에 출연하고 오랫동안 쉬었거든요. 이제는 작품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 폭소)

경청하고 이해하는 어린이가 되기까지

- 김다민 감독님은 나은이를 처음 본 순간 동춘이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은이는 어때요? 김다민 감독님을 처음 만난 순간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박나은 20대인 줄 알았어요.

김다민 (나은이의 어깨를 흔들며) 나은아, 너 통찰력 좋다!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어린이 주인공을 그려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동춘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자기 납득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지금 이걸 왜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고요. ‘왜’가 중요한 인물 설정,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다민 동춘이는 합리적인 답을 듣고 싶어 하는 친구예요. 그런데 주변 어른은 에둘러 얘기할 뿐 정작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죠.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상태 그대로 시간이 흐른 거예요. 나중에 동춘이가 11살이 되고 고학년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그 답을 궁금해하죠. 사실 동춘이가 하는 질문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그런데 어른들에겐 이 질문이 너무 고단하고 어려우니까 남들에게 계속 미루는 거죠. 영어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다시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박나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에는 동춘이가 소심하기만 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멍 때리는 거 좋아하고 말도 많이 안 하니까요. 그런데 대본을 여러 번 읽어보니 소심하다기보다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실천력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 이 작품은 페르시아어와 모스부호가 중요한 언어로 작용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위해 어린이가 다른 언어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서 언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김다민 동춘이가 막걸리와 소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소통 과정에 필요한 언어들을 보면 들으려고 노력해야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사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은 집단적 독백처럼 자기 이야기만 하거든요. 화장실 앞에서 엄마와 동춘이가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내용을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동춘이가 정말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현실에서도 각자 다른 사정이 있고 다양한 뉘앙스가 있는데 그걸 모두 건너뛰고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귀 기울이면 정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말을 쓰는 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다르게, 다른 언어에도 주의 깊게 경청하면 들리고 보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지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 많은 외국어 중에 페르시아어인 이유가 있나요.

김다민 동네 주민들에게 무료로 특수 외국어 강좌를 열어준 곳이 있었어요. 힌디어, 페르시아어, 태국어 등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있었죠. 직접 페르시아어를 배워봤는데 어렵기도 어려웠고 쓰는 방향이 정반대다 보니 완전히 뒤집힌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이렇게 낯선 언어를 사교육으로 접하려 혈안인 모습을 보여주면 약간의 황당함도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박나은 촬영 현장에서 페르시아어를 직접 글씨로 써야 하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김다민 거의 따라 그렸죠. (웃음)

박나은 저에겐 딱 3번의 기회가 있었어요. 세번의 기회를 다 쓰면 노트를 다시 처음부터 써야 했거든요. 그래서 엄청 조마조마해하면서 썼어요. 모스부호는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어요. (웃음)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니 SOS랑 비슷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모스부호가 누군가를 구해주는 데에만 쓰이는 게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를 위한 세상, 어린이가 선택한 세상

- 사실 동춘이는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에요. 매일같이 이어지는 사교육에 고통스러워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동춘이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줘요. 중간중간 방안에 간식도 집어넣어주고요. 영어 말하기 대회를 앞뒀을 때에는 무대 공포증이 있는 동춘이에게 “네가 선택해” 하면서 선택권까지 줍니다. 사교육 문제를 견지한 작품에 온건하고 다정한 부모님을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다민 지금까지 사교육을 다룬 작품들이 정말 많았죠. 대부분 부모가, 정확히는 엄마가 악역을 자처하고 있어요. 사교육을 미션처럼 헤쳐나가는 게 모두 엄마의 뒤틀린 욕망 때문이라고 보여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현실에서 이런 모습은 응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잖아요. 이 안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한번 짚어보고 싶었어요. 사교육을 단순히 엄마의 욕망이라 일컬어버리고 그걸 악역화하는 건 진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니까요. 그래서 엄마 혜진이 동춘에게 중간중간 물어보잖아요. 하고 싶은 거 맞냐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말하고요. 그런 게 현실의 언어라 생각했어요. 사교육을 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의견도 살피고 싶은 게 요즘 엄마들의 말이니까요. 아이들을 무작정 가둬놓고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모습보다는 모순적으로 보일지언정 이런 질문을 건네는 게 더 현실과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이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이겠죠.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응원인가 싶을 테고, 부모의 선의와 사랑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입장 차이도 필요해요.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일에 많은 감정을 쏟아내는데 그 이유가 대학 진학이라는 게 너무 작은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뭔가 더 크고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고. 동춘이는 그 정답을 직접 찾아가기로 한 거죠.

- 나은이도 학원을 다니나요? 공부하기 싫을 땐 어떻게 해요.

박나은 학원 한개만 다니고 있어요. 수학이랑 영어 배우고 있고요. 그전까지는 미술 학원이랑 피아노 학원도 다녔는데 영화 촬영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저희 반에서 동춘이처럼 학원을 많이 다니는 애들은 3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공부하기 싫을 때도 정말 많지만 그럴 땐 좀 쉬었다가 다시 해요. 안 그러면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렵거든요. 수학은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국어는 읽는 재미가 있어요. 과학이랑 사회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 동춘이가 막걸리를 만나기 위해 밤 거리를 나섰을 때 유흥가에서 비틀거리는 어른들을 목격해요. 어른들에게는 무척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어린이인 동춘에게는 어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김다민 보통 동네에 학원가랑 유흥가랑 붙어 있잖아요. 길거리에 나온 동춘이가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죠. 늦게까지 공부한 중고등학생들을 보고 그다음에 술에 취한 어른들을 차례대로 보죠. 동춘이가 살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미래인 거예요. 그때 동춘이가 학생들을 뚫고 어른들과는 다른 길을 향해 나서죠. 동춘이만의 선택과 결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나은 이때 비가 와서 진짜 힘들었어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뛰었어요.

김다민 맞아요. 헤쳐 모여 헤쳐 모여 계속 반복했었지? (웃음)

- 동춘이 주변엔 많은 어른들이 있어요. 영화에서 동춘이는 어떤 어른에게 의지했다고 생각해요.

박나은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털복숭이들. 항상 옆에 있어주고 동춘이의 속마음도 질문도 들어주니까요. 그런데 털복숭이가 탈인형이잖아요. 털복이한 배우는 털복이랑 똑같이 생겼고, 숭이 연기한 분은 또 숭이랑 너무 닮은 거예요. (김다민 감독을 보며) 그것도 일부러 얼굴에 맞춰 캐스팅한 건가요?

김다민 (크게 웃으며) 어? 아니에요. 그런데 말 듣고 나니까 닮았단 생각이 드네요!

- 동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숙한 편이에요. 노키즈 존, 민폐 논란 등 어린이를 잘못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는 어린이들이 빨리 자라주길 바라거든요. 그런 바람에서 시작된 눈총도 있고요. 이런 현실에서 조숙한 동춘이가 어떻게 비쳐지길 바랐나요.

김다민 동춘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해요. 자기만의 공상 세계가 있고 친구들이나 주변 어른에게 톡톡 쏘는 말도 곧잘 해요. 그게 조숙함으로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동춘이는 어른들이 바라는 말을 해주는 부류의 조숙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친구들이 그러잖아요. “동춘이 요즘 이상하지 않아?” “얘 원래 이상했어.” 그런 독특함이 있을 뿐이죠. 오히려 동춘이는 자기 주관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에게 질문하지 않아요. 질문하는 순간 학원 수만 늘어나니까요.

- 그러고 보니 동춘이가 영어 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도 “대머리는 영어로 뭐예요?”라고 질문하면서였죠.

박나은 그럼 대머리가 영어로 뭔지 알면 학원 그만두는 거예요?

김다민 아니지. 대머리가 영어로 뭔지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다니는 거지. (웃음)

- 귀엽고 명랑하던 앞의 이야기와 달리 극이 진행될수록 서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전환을 준 이유가 있나요.

김다민 영화에서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를 기점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어요. 모스부호와 페르시아어에 과몰입한 동춘이의 모습을 보고 대회장에 있던 어른들처럼 관객도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뒤편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천천히 가라앉는 건 동춘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에요. 혜진과 화장실 앞에서 나눈 대화도 그렇고요. 저는 이 작품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그걸 슬프게 혹은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그건 동춘이가 이겨내야 했던 것들을 이해했기 때문일 거예요. 비현실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비추려 했거든요.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에 쿠키영상을 넣었답니다.

- 영화 마지막엔 동춘이가 자기만의 결단을 내리고 맙니다. 영화 전체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시퀀스이자 강렬한 메시지도 담겨 있어요.

김다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어요. 이 결말을 이뤄나가기 위해 좀 뻔뻔하게 밀고 나가려 했고요.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 말을 아끼게 되지만 동춘이가 난생처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답변을 들은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박나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동춘이는 행복하기만 할 거예요. 그러려고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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