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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오스카의 계절, 영화, 봄
송경원 2024-03-08

오스카의 계절이 왔다. 봉준호 감독이 ‘로컬 어워즈’라고 언급하기 전까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냥 남의 나라 시상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어떤 시상보다 가장 주목도가 높고 영향력이 큰 행사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적지 않는 개봉 영화가 아카데미의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볼 때 이상할 게 없지만 한 꺼풀 열고 들여다보면 속내는 좀더 복잡하다.

분명 아카데미에서 주목받는, 이른바 ‘아카데미 영화’가 따로 존재한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요란한 여름 블록버스터보다는 감독의 작가적 야심과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오스카의 사랑을 받아왔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나누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동시에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와닿는 구분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유효하고 냉혹한 현실. 그렇기에 할리우드엔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아카데미는 흥행, 상업성 일색의 할리우드가 꾸는 시네마를 향한 마지막 낭만이자 꿈이다.

같은 이유로 ‘아카데미 영화’들에 오스카 트로피가 필요하다. 오스카 수상작이 가지는 권위는 물론이고 이후 동반되는 막대한 마케팅 효과가 향후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아카데미는 예술성을 담보로 한 거대한 광고판에 가깝다. 대규모 마케팅을 동원하기 힘든 예술 지향의 영화들이 좀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소개의 장. 문제는 2000년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라는 사실이다.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사건, 사고가 스포트라이트를 앗아가 영화가 잊히기도 했다. 미디어가 한정되어 있을 땐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볼거리였지만 대량의 정보에 포위당한 요즘은 어느새 딱딱하고 지루한 행사라는 딱지가 붙은 상태다.

아카데미도 이를 잘 알기에 여러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보수적이던 심사위원단도 대폭 늘렸다. 외국어영화상의 명칭을 2020년부터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변경한 건 ‘(로컬을 뛰어넘어) 우리가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물론 그렇다고 더 재밌고 좋아졌다 평하긴 아직 난감하다. 의도와 과정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담보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바비>와 <오펜하이머>, <추락의 해부>와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패스트 라이브즈>와 <바튼 아카데미>, <가여운 것들>과 <플라워 킬링 문>이 나란히 후보에 올라 경합을 벌이는 올해의 광경을 보니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한마디로 ‘이게 되네’ 싶다.

늘 그렇듯 수상 결과가 작품성을 담보하진 않는다. 매년 좋은 영화가 상을 탄다기보다는 필요한 영화에 상이 돌아갔던 게 아닌가 싶다. 필요성의 주체가 시대와 메시지일 때도 있고, 흥행과 산업일 때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솔직히 수상 결과는 딱히 궁금하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색채의 검증된 영화들을 다시 복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내가 지지하는 영화와 결과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재미는 덤이다. 이제 남은 건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을 다시 챙겨보는 시간이다. 극장 갈 핑계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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