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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바리에서 만난 로저 에버트
2002-08-02

˝별점주기는 멍청한 짓˝

영화제 취재차 머문 카를로비 바리에서 로저 에버트를 인터뷰한 것은 예정됐던 일은 아니었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할까? “혹시 로저 에버트를 인터뷰할 생각없나요?”라는 이스트필름 대표 명계남씨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져 대뜸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7월13일 폐막한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두 사람은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매번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던

참이었다. 한 차례 약속이 어긋나고 극장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누는 우여곡절 끝에 7월9일 에버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인터뷰가 성사됐다.

당신의 영화평은 한국의 영화저널리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많은 영화담당 기자와 영화평론가들이 새로운 할리우드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당신의 영화평을 들춰본다. 당신의 영화평을 미국식 저널리즘 비평의 표준으로 여기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비평과 프랑스의 비평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자신의 비평이 프랑스의 비평에 비해 엔터테인먼트에 비중을 많이 두며 좀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나.

음, 그건… 나는 일간지에 영화평을 쓰는 사람이다. 그것은 잡지나 학계 논문집에 글을 쓰는 것과 다르다. 글을 쓸 때 이 글을 읽을 독자가 알 수 있는 말로 써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때로 심각하고, 때로 웃기며, 때로 엔터테인먼트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신문장이이며 저널리스트다. 신문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글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소용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일간지와는 다르다. 대부분 미국의 일간지는 독자층이 구분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위한 매체다. 하지만 프랑스는 우익 신문, 좌익 신문, 지식인 신문, 대중 신문이 나눠진다. 영국도 비슷해서 <더 타임스> <인디펜던트> <데일리 텔레그래프> <가디언> 등이 각기 다른 성향이다.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미국의 신문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이 어디에 실리는지, 누가 읽는지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심각한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쓰는 경우도 있다. <뤼마니테> 같은 영화의 평은 그렇게 썼다. 하지만 <맨 인 블랙2> 영화평은, 그렇게 진지하지 않다.

영화평론가가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직업인가.

그렇지 않다. 난 15살 때부터 신문기자로 일했다. 아마추어 신문이 아니라 진짜 일간지였고 스포츠 지면에 기사를 썼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문학 교수를 꿈꾼 적도 있다.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선타임스>에 들어가 일했는데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평을 담당하던 전임자가 은퇴하는 바람에 영화평을 쓰라는 제의를 받게 됐다. 나로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전에 영화평론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하겠다고 했고 그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뒤로 35년간 영화평을 썼다.

1975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로 수상했나.

신문사에서 퓰리처상 후보로 내 영화평 10개를 보냈다. 나로선 놀라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연극이든 문학이든 비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후보로 보낸 영화평에는 잉마르 베리만의 <외침과 속삭임>, 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마코드> 등에 대한 평이 포함돼 있었다.

러스 메이어의 <인형의 계곡 너머>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러스 메이어를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그의 영화를 좋아했다. 그는 위대한 오리지널 미국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섹스영화라기보다 코미디다. <월 스트리트 저널>에 그의 영화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기사를 쓴 사람에게 나도 동감이며 러스 메이어에 대해 더 많이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얼마 뒤 러스 메이어와 친구가 됐고 이십세기 폭스사에서 내게 시나리오를 쓰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인형의 계곡>의 속편 시나리오를. 흔쾌히 승낙했고 <인형의 계곡 너머>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TV프로그램 <시스켈과 에버트>을 시작할 때, 이 프로그램이 영화비평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나.

당시 TV의 영화관련 프로그램은 대부분 단순한 홍보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는 어떤 영화의 나쁜 점에 대해 들을 기회가 없었고 오직 장점만 이야기했다. 감독 인터뷰건 배우 인터뷰건 모두가 프로모션용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영화의 장단점에 대해 터놓게 얘기했다. 내 견해는 이렇다고 솔직히 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홍보의 기회를 잡을 수 없는 영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다큐멘터리, 인디영화, 클래식영화들에 대해서 말이다. 모두가 <스파이더 맨>에 대해 떠들 때, 좀더 작은 영화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영화정보가 온통 하나의 영화에 집중돼 있을 때 대중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유용한 일이라 생각한다.

<시스켈과 에버트>의 영화 선택에 있어서 어떤 압력을 받은 적은 없나.

모든 영화가 이 프로그램에 나오길 희망하지만 선택은 항상 우리 스스로 했다. 일반적으로는 <스파이더 맨>이나 <스타워즈> 같은 메이저영화들이 전파를 타지만 다큐멘터리나 저예산영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진 시스켈과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궁금하다.

나는 <시카고 선타임스>의 영화평론가였고 시스켈은 <시카고 트리뷴>의 영화평론가였다. 말하자면 나의 적이었다. 두 신문은 경쟁지였고 우리 역시 경쟁하는 사이였다. TV에서 우리 둘을 불렀을 때도 역시 상대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수차례 격렬한 공방을 벌였는데 그게 쇼를 돋보이게 하는 데는 좋은 일이었다.

시스켈과 격렬히 논쟁했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든다면.

자주 논쟁을 했고 그중 예를 들자면 <지옥의 묵시록>이다. 시스켈은 <지옥의 묵시록>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내 견해에 동의했다.

남들이 걸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를 홀대한 경우는 없었나.

물론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 등이 그렇다. 하지만 평론가가 할 일은 대중의 견해를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내 견해가 항상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은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써서 평을 본 사람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평론가의 견해가 나와 다르더라도 좋은 평은 그 영화를 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평 자체에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에게, 또는 영화평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평론가는 자기 견해대로 글을 써야 한다. 또한 독자가 글을 읽고 어떤 영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독자가 이 영화를 볼지 말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평론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에 대한 어떤 뚜렷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면 평론가가 별로라고 썼지만 나라면 좋아할 영화 같다는 식의 판단을 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나중에 다시 보고 이전 견해를 수정한 경험이 있는가.

일반적으론 없는 일이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두 번째 봤을 때 훨씬 좋았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대체로 개봉 전에 다시 보고 영화평을 쓴다. 칸이나 토론토영화제에서 하루에 5편씩 보면서 평을 쓸 시간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확실히 영화제에서 보고나서 나중에 다시 보면 훨씬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느긋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처음 봤을 때 견해에 따르는 편이다.

많은 감독들이 영화평론가에게 불만스러워하는 점은 한번 보고 어떻게 단정하느냐는 것이다. 두번, 세번 거듭 보기를 요구하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신문장이다. 그건 내가 매일 기사마감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어떤 영화든 대체로 한번밖에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두번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도 두번 보고 쓰고 싶다. 하지만 대학에서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할 때는 한 영화에 대해 10시간 동안 가르친다. DVD로 장면마다, 프레임마다 정지시켜놓고 설명하고 토론하는 식이다. 그것은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며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일간지의 영화평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3∼4번씩 보는 게 불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회사에 돌아와 기사를 쓰면 끝이다. 가능한 시간은 그게 전부다. 나는 프로페셔널 신문장이이지 아카데믹한 교수가 아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본 적 있나?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는데.

-못 봤다. 올해 4월에 어깨가 부러지는 바람에 칸영화제에 못 갔다. 올해는 25년 만에 처음 칸영화제에 못 간 해다.

김기덕 감독의 <섬>을 보고 영화평을 쓴 적이 있던데.

-와우,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아주 강력한 영화이고 폭력과 아픔이 넘치는 영화다. <섬>은 흥미로운 상황을 제시한다. 상징적인 의미로서 남자는 생존하기 위해 여자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남자는 섬에서 혼자 살고 있고, 여자는 해안에 산다. 매우 강한 영화다. 선댄스영화제 때 보고 호평을 쓴 적 있지만 미국에서 상업적인 배급망을 탄 적이 없어서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미국에서 개봉한다 해도 성인영화로 취급받을 것이다.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다. 감독은 필요한 묘사를 했고 그것은 영화에 적합한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영화에서 뉴-뉴 아메리칸 시네마라고 부를 만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나.

인디영화는 여전히 흥미롭다. 매우 적은 예산으로 찍는 디지털영화들 가운데도 주목할 만한 영화가 나오고 있고. 오늘날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은 대체로 너무나 예측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나는 둘을 인더스트리얼시네마와 아트시네마로 나눠 부르는데 인더스트리얼시네마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것으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 디지털영화가 적은 예산으로 작업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지만 오늘날의 미국영화가 30년 전보다 덜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미래의 작가로 주목하고 있는 미국 감독이 있다면.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스, <쓰리 킹즈>의 데이비드 O. 러셀, <매그놀리아>의 폴 토머스 앤더슨, <한 가지에 대한 13개의 대화>의 질 스프레처, <너스 베티>의 닐 라뷰트, <줄리안 동키보이>의 하모니 코린 등을 들 수 있겠다.

당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를 꼽는다면.

<시민케인>이다. 17살 때 이 영화를 보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감독의 존재를 알았고 영화의 내면에 감독의 비전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 영화를 엔터테인먼트로만 대했는데 <시민케인>은 나를 눈뜨게 했다. 또 다른 영화를 든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다. 대학 1학년 때 외국영화를 보는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베리만이나 펠리니의 영화도 이 시절 처음 접했지만 <이키루>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키루>에 대한 평은 나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쓰는 ‘그레이트무비’라는 코너에 들어 있다.

당신의 영화평에는 별점이 들어 있다. 영화에 별점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별점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신문사에서 시켜서 하는 일일 뿐이다. 미국의 수많은 신문이 별점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최근엔 별점을 좀 보완하려고 별의 개수를 5개로 늘렸다. 3개가 정확히 중간점수가 되게끔…. 어찌됐든 멍청한 짓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읽기를 바라지, 내가 별 몇개를 줬는지만 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결코 없다. 나는 신문장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에 글쓰는 걸 꿈꿨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방송출연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신문장이다.카를로비 바리=글·사진 남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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