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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에든버러영화제
2002-09-02

에든버러영화제 8월25일 폐막, <화산고> 등 인기8월의 에든버러는 영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스코틀랜드의 맑은 기품이 느껴지는 이 작은 도시는, 매년 8월이면 세계 각지에서 온 크고 작은 규모의 연극, 코미디, 무용, 음악 공연들로 넘쳐난다. 그 풍요로운 축제 와중에 열리는 에든버러영화제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만의 단독 행사라기보다는 에든버러 축제라는 전체 오케스트라 속에서 화음을 이루면서도 자신의 청아한 소리를 내는 악기 같은 존재다.올해로 56회째를 맞는 이 영화제에서 소개된 장편영화 수는 대략 100여편. 규모만 놓고보면 국제영화제로서는 그다지 큰 덩치의 영화제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에든버러영화제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등에 관한 관심과 애정은 역사도 길고 유별난 편이어서 무려 40여개의 섹션으로 묶여져 상영되었다.지난 8월14일부터 시작된 이 영화제의 개막작은 1999년 <쥐잡이>로 신인 감독상을 받은 바 있는, 린 램지의 신작 <모번 칼라>. 전작 <쥐잡이>와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번 영화는,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21살의 여주인공 모번 칼라는 크리스마스 이브, 갑작스럽게 자살한 남자 친구의 유고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출판하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아나선다는 내용. 모번 칼라를 연기한 사만사 모튼의 생생하고 몰입적인 연기와 더불어 린 램지의 힘있고 강렬한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지난 25일 상영된 폐막작은 1999년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폴로잉>으로 에든버러를 찾은 바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 <인썸니아>. 이 영화의 영국 개봉을 앞두고 에든버러를 찾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감독이라면 관객을 소외시키거나 전혀 이해불가능한 내러티브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내러티브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면에서 자신은 자기 자신을 메인스트림에 속한 감독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부문일 수밖에 없는 ‘브리티시 갈라’에 소개된 영국영화는 모두 7편. 칸영화제에도 초대된 바 있는 마이크 리의 <전부 아니면 전무>을 비롯, <이스트 이즈 이스트>로 감독 데뷔한 대니얼 오도넬의 <하트랜즈>, 로버트 칼라일, 리키 톰린슨 등 영국의 가장 대중적인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미들랜즈>,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풍경이 펼쳐지는 영화 <거대한 마지막 황무지>와 <디스 이즈 낫 어 러브 송> 등이 상영됐다.올해 이 부문에 선정된 영국영화들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들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어필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영화들이라는 점. 특히 영국 내 개봉을 앞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미들랜즈>는 몇년간 성공적이었던 영국영화들(<풀 몬티> <빌리 엘리어트>)의 계보를 이어 워킹 클래스 주인공들을 내세우면서 영국적인 유머감각에 웨스턴영화 같은 느낌을 더해, 상영 내내 극장 안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영화였다.이번 에든버러영화제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 것은, 막 영국 내에서 고조되기 시작한 발리우드영화의 왕자- 발리우드의 톰 크루즈라 불리는- 샤 루크 칸의 에든버러 방문. 그의 최근 대표작인 <아소카> <카비 쿠쉬 카비 감> 등의 상영과 함께 그의 관객과의 대화 이벤트는 뜨거운 관심을 모은 행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색다른 것을 찾는 관객이 모인 곳은 일본 감독인 이치카와 곤의 회고전.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등과 함께 일본영화의 첫 세기를 주름잡았으나 상대적으로 서구에는 덜 알려져 있던 그의 영화들 12편이 소개됐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올해 에든버러에 초대된 한국영화가 <고양이를 부탁해>와 <화산고>, 두편에 그쳤다는 점이다. <화산고>는 <링>의 감독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 <조용한 가족>의 리메이크판인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가타쿠리가의 행복>과 함께 주로 컬트영화를 소개하는 심야상영 부문에서 상영돼 인기를 모았다. 다른 아시아권영화로는, 재일동포 소년의 성장기를 경쾌하게 그려낸 가 2회 상영 모두 매진, 인기를 모으면서 1회 더 연장 상영됐고, 런던 개봉을 한주 앞에 두고 에든버러를 방문한 이와이 순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역시 관심을 끌었다.에든버러영화제의 영화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역할이라면 영국 내에서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들의 프로모션 무대이면서, 영국 내 배급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을 위한 견본시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또 영국의 신인 감독들이 만든 단편영화와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영화제작사와 연결되는 통로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올해는 에든버러영화제 기간 내내 드물게 햇빛이 빛나는 밝은 날씨가 계속돼 컴컴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내년에도 에든버러영화제 때 더 많은 햇빛이 쏟아지기를, 그리고 그 햇빛 아래서 더 많은 한국영화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에든버러 = 글, 사진 이지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