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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와 로드 무비의 장중한 결합,<로드 투 퍼디션>(2)
2002-10-04

대부의 아들,에덴의 동쪽으로 가다

그러므로 살인은 살인일 뿐이다. <대부>가 맥없이 고개를 떨구며 세상을 하직하는 불행한 마초의 초상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반면, <로드 투 퍼디션>의 설리반은 아들의 새 삶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 바치려는 아버지로 죽어간다. 냉정한 시선으로 공황기의 갱들을 재단하는 영화는 복수와 질투, 미움과 용서 같은 펄펄 끓는 감정들을 식혀서 역사상 가장 차가운 갱스터의 공식을 만들어내었다. 그렇다면 영화 <대부>의 아들 알 파치노와 <로드 투 퍼디션>의 아들 이름이 모두 마이클인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기관총을 든 카인과 아벨

샘 멘데스는 <로드 투 퍼디션>의 연출의 변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과연 선한 사람도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의문부호를 그려넣고 싶었다고 한다. 소년 마이클에게 죽음의 목격이 정신적인 성장의 첫 단추를 푸는 것이었다면, 아버지 마이클에게 그것은 생존의 기로에서 지옥으로의 먼 여행을 뜻하는 것이리라. 설리번에게 퍼디션, 즉 지옥은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갱단에서 마이클이 정신적으로 동사해버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의 입장에서 성당을 다니면서도 누군가에게 기관총을 쏴대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세상이란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등한 일일 것이다. 설리반 역시 고아 출신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지 않았는가” 물어보고 아버지는 자신처럼 수학을 못하는 아들에게 “네가 나를 닮았기 때문에 다르게 대했다. 그러나 미워한 것은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바로 자신의 거울이었던 셈.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적으로,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설리반은 아들에게 투영되었던 자신의 그림자, 살인의 죄의식에서 끊임없이 도망가려 든다.

아마도 <아메리칸 뷰티>와 <로드 투 퍼디션> 모두에 공통으로 찍힌 샘 멘데스의 인장이 있다면 바로 영적인 로드무비에 대한 멘데스의 선호와 이를 통한 마지막 한방의 감동에 대한 멘데스의 야심일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퇴역 장교인 리키의 아버지는 동성애에 관한 자신의 금지된 욕망을 아들이라는 거울에 비춤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숙한 두려움을 보았다. 또한 케빈 스페이시가 분한 레스터 역시 영화의 마지막 흰 벽에 흘린 한줌의 피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잔인함은 바로 스스로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점에 관한 한 톰 행크스와 케빈 스페이시는 마치 도플갱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죽이기만 했던 마이클은 아들을 살리는 일을 행함으로써 비로소 지옥 같은 영혼의 북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때마다 카메라는 마이클과 설리반 부자의 뒷모습을 서서히 줌 인하고 줌 아웃하는데 이로써 마치 감독은 주인공들의 내면에 투명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다. 샘 멘데스는 기관총을 들고다니는 카인과 아벨의 로드무비에서 다시 한번 영혼의 회복을 꿈꾼다. 제임스 아이보리와는 정반대로 미국에 관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인 영화를 만드는 영국인 감독은 희생과 속죄라는 보편적 진리의 획득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혼란스런 속물주의에서 한사코 벗어나려 드는 것이다.

<로드 투 퍼디션>, 로드 투 오스카?

결국 <로드 투 퍼디션>은 가장 비통한 방식으로 아들의 입장이었을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마이클이 루니에게 기관총을 들이밀었을 때, 루니는 “자네 손에 죽게 되어 기쁘다”고 담담히 말한다. 루니는 마이클에게 “아들은 아버지를 궁지에 몰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말했었다. 이 말은 바꿔보면 결국 ‘아버지는 아들에게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살부계를 조직했던 성급한 아들들 역시 언젠가는 깨달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품앗이의 살인이 아닌 아들의 손에 죽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마도 <로드 투 퍼디션>이 200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다면, 심사위원들 전원이 이 점에 대해 모두 동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로드 투 퍼디션>은 <대부>나 <시민 케인>처럼 할리우드가 생산한 최고의 걸작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할리우드의 장르적 자장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선의 의도, '로드 투 오스카'임은 분명해 보인다.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