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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투 퍼디션>의 액션과 에너지
2002-10-04

그리스 비극을 동경하는 통속소설

맥스 앨런 콜린스의 생동감 넘치는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샘 멘데스가 연출한 <로드 투 퍼디션>은 그리스 비극을 동경하는 싸구려 통속소설 같은 것이다. 대공황시대를 배경으로 음침한 시카고와 삭막한 중서부를 오가며 서로에게(그리고 서로의 아들들에게) 접근하는 갱스터들의 음울한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비를 만들어 뿌리느라 살수차는 쉴새없이 가동된다.

가공할 킬러 마이클 설리번 역에 톰 행크스를 기용했는데 그 갱 타입에 딱 걸맞은 것 같지는 않다. 행크스가 연기하는 설리번은 “죽음의 천사장”이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콜린스가 묘사한 대로의 킬링머신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기품있고 위엄있어 보이긴 하다. 어쨌거나 이 음울한 가장은 갈수록 적들이 많아져 끝으로 가면 거의 오우삼 영화의 주인공만큼이나 많은 적들을 한꺼번에 맞이해야 하는데, 멘데스 대신 오우삼이 이 야단법석 영화를 맡아 연출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로드 투 퍼디션>은 어린 아들을 따듯이 지켜내고자 수많은 적들에 맞서 피흘려 싸우는 아버지를 그린 일본 인기만화 <외로운 늑대와 그 아들>의 미국판이기도 하다). 멘데스의 과대평가된 <아메리칸 뷰티>는 온화하면서도 고약한 데 비해, <로드 투 퍼디션>은 냉혹하면서도 감상적이다.

콜린스는 여러 해 동안 만화 <딕 트레이시>의 글(각본)을 맡았다. 그의 신화는 대도시의 아일랜드계 갱스터들과 시골의 은행털이 무법자들을 뒤섞는 것이다. 데이비드 셀프의 각본은 여기에 <대부> 분위기를 더해 넣는다. 설리번의 아일랜드식 운명은 영화 초입부터 자명해 보인다. 보스 존 루니(폴 뉴먼, 사랑스런 괴짜 영감의 모습을, 죽음의 차가운 섬광과 함께, 기억에 남도록 훌륭히 끌어냈다)의 저택에서 열린 회합에 참석하는 마이크는 루니의 정신적 아들이다. 마이크가 모임에 함께 데려온 아들들 피터와 마이클 주니어(타일러 회클린)는 가족처럼 환대받으며 루니와 함께 게임을 하고 논다.

호기심 많은 큰아들이 아버지가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 하나를 훔쳐보면서, 그리하여, 총질이 그저 장난 같은 코너(루니의 망나니 아들, 대니얼 크레이그)가 저지른 살인현장의 위험한 목격자가 되면서,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엄청난 사태를 전해들은 루니는 “아들이란 아버지를 괴롭히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들”이라며 탄식한다. 시카고의 음침하고 거대한 갱스터 소굴에서 알 카포네의 2인자 프랭크 니티(스탠리 투치)를 만나 시도한 거래가 실패로 끝나자, 마이크 부자는 도주 길에 오른다. 침울한 소년은 자신이 아버지의 유일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때까지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하며 외로운 방랑자를 그린 <빅 리틀> 책만 후벼판다.

이름과 배역 몇 가지를 새로 만들어낸 것 외에, 콜린스의 캐릭터 캐스팅에 셀프가 주요하게 기여한 것은, 불길한 인물 맥과이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타블로이드 신문에 사진들을 기고하는 한편 부업으로 청부살인을 하는 인물이다(부실한 이빨을 끼워넣어 분장한 주드 로, 그의 안면경련은 <스카페이스>의 조지 래프트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다).

집요한 언론의 사냥개 맥과이어는 설리번에게 접근하는데, 영화는 그 둘이 고속도로의 심야영업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데서 일찌감치 정점을 맞는다. 거기부터는, 마이크 부자의 즐거운 모험놀이로 이어진다. 아들과 아버지의 가슴을 털어놓은 정겨운 대화를 위해 잠깐씩 틈을 낼 따름이다.

멘데스는 코언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이 보여준 ‘민족’이라는 영역을 조금 손대긴 하지만, 무자비하고 냉혹한 허세는 결여돼 있다. <로드 투 퍼디션>은 시각적으로는 <아메리칸 뷰티>보다 더 일관적이지만 콘래드 홀의 촬영이 보여주는 세련되고 매끄러운 영상에도 불구하고, 멘데스는 어떻게 프레임을 채워야 하는 것인지를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행크스가 맡은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멘데스는 아주 천천히 배우는 타입인가보다. 액션은 과장됐고 선정적 에너지는 고이 보존돼 있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2.7.16.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