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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겐> 만화원작자 나카자와 게이지 인터뷰
2002-12-05

˝핵전쟁 이후의 세계 나우시카는 없다˝

반핵, 반전만화로 알려진 <맨발의 겐>(전 10권, 김송이·이종욱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의 나카자와 게이지가 지난 11월22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을 다녀갔다. <맨발의 겐>은 원폭투하로 초토화된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소년 겐과 주변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만화. 실제 히로시마 출신으로 6살 때 원폭투하 지점에서 불과 1.3km 떨어진 곳에서 피폭을 당했고, 피폭후유증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던 작가 자신의 체험과 함께, 전쟁과 핵무기의 무시무시한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도 포기한 채 생업에 나서야 했던 나카자와는, 간판 가게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만화의 꿈을 키웠다. 이후 도쿄에서 <울트라맨> <킹콩> 등의 작가 가즈미네 다이지의 사사를 받았으며, 낙진 때문에 시커먼 비가 내렸던 히로시마의 기억을 담은 <검은 비를 맞으며>로 1968년에 데뷔했다. <맨발의 겐>은 1973년 소년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에서 기획한 만화가의 자서전 시리즈 첫 번째로 선보인 작품. 잡지를 바꿔가며 연재된 끝에 1987년에 단행본 10권으로 완간됐고, 세계 각국에 번역·출간됐다. 82년에는 동명 애니메이션이, 96년에는 동명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뉴욕에서도 호평받았다는 이 뮤지컬은 ‘2002년 한·일국민교류의 해 기념 초청공연’으로 11월21일부터 24일까지 문화일보홀 무대에 올려졌다. 때마침 핵문제와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아시아프레스인터내셔널에 의해 초청된 나카자와를,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마련된 조촐한 간담회 자리에서 만났다.

피폭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건강이 안 좋았는데, 요즘은 어떤지. 지난 8월 <맨발의 겐> 번역판 완간 출판기념회에 못 온 것도 건강 때문이라고 들었다.

많은 피폭자들이 당뇨병에 시달린다. 나도 당뇨병을 앓아왔는데, 출판기념회 때는 좀 심각한 상태라 못 왔다. <맨발의 겐> 번역판은 물론, 이번 뮤지컬 공연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돼서 기쁘다. 무리가 되긴 했지만, 정말 오고 싶었다.

만화에서 겐의 아버지는 군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파’로, 경찰에 끌려가고 투옥되기까지 한다. 실제로 당신의 아버지도 그랬나. 그랬다면 그런 집안에서 자라고, 또 그 경험에 바탕한 작품을 그린 당신도 어떤 압력을 받았나.

아버지는 실제로 반전운동을 했고, 히로시마형무소에 1년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당시 극단에서 일하셨는데(제정러시아 말기와 사회주의를 다룬 고리키의 <밑바닥 인생> 등을 상연- 편집자) 단원 전원이 경찰에 끌려가고 그랬다. 아버지의 반전 사상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작품을 쓰기 전부터 탄압은 감수했다. 아내에게도 분명히 이상한 편지나 전화가 올 거다, 비난이 있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했고. 그런데 실제로는 격려의 편지나 전화가 많았다.

우익의 반발은 없었나. 또 일본의 피폭이 한국에서는 식민지배를 끝내게 한 계기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사상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려고 한 작품이라 우익쪽에서도 별말은 없었다. 우익단체들도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게 아닐까. 아니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작품에도 나오지만 난 ‘박씨’라는 한국인 이웃사촌과 아주 친하게 지냈고, 아버지로부터 늘 한국인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에 반대해왔다. 일본의 피폭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본인 사이에는 피폭의 피해자란 인식이 많은데, 그 이전에 우리 자신도 가해자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 나쁜 짓도 많이 했으니까.

원래 자서전을 써 달라고 제안을 받았는데, 만화란 장르를 택한 이유는.

만화는 어린이와 가장 가깝고 친근한 미디어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무시하면 안 된다고, 또 전쟁과 핵에 대한 이야기를 차세대에게 전달하기에 가장 적격인 매체라고 생각했다. 핵전쟁 이후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 좀 화가 났었다. 핵전쟁이 나면 인류가 망하는데, 그 이후라니. 밝은 부분은 밝게 가더라도 좀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화를 지킬 수 없다.

만화책 표지에도 겐이 보리를 쥐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리가 상징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아버지한테 많이 들은 말인데, 보리는 추운 겨울에 싹을 틔워 몇번이고 밟혀도 꿋꿋이 살아남는다. 보리는 겐의 테마이자 내 자신의 테마다.

<맨발의 겐>이 한국에서 출판된 것에 대한 소감과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국 독자들에게도 발견되어 기쁘다. 원폭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핵과의 전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또 핵과 전쟁에 대한 만화일 뿐 아니라 보리의 의미처럼 밟혀도 밟혀도 굴하지 않는 삶에 대한 만화로 읽힐 수 있길 바란다. 읽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꼭꼭 많이 읽어주시길….

창작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은 좀 피곤하고 많이 지쳐 있지만, 평생 만화가로 살아왔듯 회복한 뒤에 또 만화를 그리고 싶다. 글 황혜림 blauex@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도서자료제공 아름드리미디어

<맨발의 겐>역사의 참상, 만화로 드러내기

총 10권으로 발표된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은 픽션의 형식을 빌린 논픽션 만화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소년 겐은 작가 나카자와의 분신이며, 소년 겐이 겪는 참혹한 일상 역시 나카자와 자신이 겪은 일이다. 간판가게에서 일하고, 독학으로 그림에 대한 꿈을 키운 겐의 모습도 그대로 작가의 바이오그라피와 일치한다.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의 진창으로 들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해 르포르타주만화인 <팔레스타인>을 그렸다면, 나카자와 게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단지 픽션이라는 외형을 빌려 서술한다. 그래서 <맨발의 겐>은 매우 주관적이며 정치적 입장이 선명하다. 원폭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그 참상을 경험한 소년 겐은 세계와의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성장해나가 군국주의 일본과 천황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입장을 드러낸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려는 교장에 맞서 “왜 빌어먹을 놈의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느냐”고 항의한다. 겐은 “천황은 전쟁 범죄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원폭 피해나 중국이나 조선의 피해도 모두 천황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어느 만화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도 쉬쉬하는 강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겐, 류타와 함께 사는 가추코의 입을 빌려 살인죄로 형무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들로 ‘천황’과 ‘도오조오 내각의 장관과 공무원’, ‘육해군의 간부들’을 꼽는다. 강한 분노가 칸 위로 넘실거리며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도 우리가 <맨발의 겐>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는 이유는 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