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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마루치 아라치>
2003-01-03

폼생폼사,고수들의 25시

“현대사회에 도인들이 살고 있다.” <마루치 아라치>는 이 하나의 전제에서 시작한다.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청소부가 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경공을 쓰고 있고 길에 앉아 운세상담을 하는 할아버지가 실은 내공의 고수라는 ‘황당한’ 상상이 <마루치 아라치>라는 현대판 무협영화를 가능케 한다. 이야기는 어리버리한 경찰 상환이 우연히 도인들의 세계에 눈뜨면서 시작된다. 늘 남에게 당하며 사는 데 익숙한 청년 상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는 여자 의진, 내공의 고수인 7명의 신선 등이 등장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펼친다. 그러니까 류승완 감독의 <마루치 아라치>는 애니메이션 <마루치 아라치>와 내용상 별 관계가 없는 영화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마루치 아라치의 어원에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산마루, 할 때 쓰는 것처럼 ‘마루’는 가장 높은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마루치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자, 득도한 자인 셈이다. 반면 ‘아라’는 아름답다, 신성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마루치, 아라치는 득도한 남자와 여자를 뜻한다.

“별볼일 없어 보인다고 무시하지 말자.” 류 감독은 이것이 <마루치 아라치>의 전언이라고 말한다. 매일 복덕방에서 장기두는 할아버지, 청소부, 식당 아줌마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세상사의 변방에 밀려난 사람들이 알고 보면 도인이며 내공의 고수라는 설정은 세상을 보는 획일적인 시각을 교정하자는 류 감독다운 제안이다. 그는 <마루치 아라치>가 서양의 슈퍼히어로영화와는 다른 맥락이라고 덧붙인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은 혈통으로 구분되는 것이지만 동양사상에서 신선은 인간이 수련을 거쳐 이르는 어떤 경지다.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도인이 된다. 이런 사고는 선악이분법에도 반영된다. <마루치 아라치> 역시 선악구도가 있고 그에 따른 싸움이 벌어지지만 여기서 악은 씨를 말려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다스려야 하는 것으로 그려질 것이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출중한 무공도 그냥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저 멀리에서 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천리득음술을 쓰면 온갖 휴대폰 소음에 귀청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게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내공 고수들의 피치 못할 괴로움이다. 그들이 비천한 삶을 견디며 사회의 주변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열혈 액션영화광 류 감독은 <마루치 아라치>의 액션을 현란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액션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액션연출이 심리상태 안으로 들어간 전작들과 달리 카메라가 여유를 갖고 빠져나와서 신나고 경쾌한 움직임을, 리듬을 쫓아가도록 하겠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특히 강조하는 세 가지는 ‘리듬’, ‘열린 사고’, ‘폼’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경우 매 장면 힘을 줘서 전체 영화의 리듬 조절에 실패했다고 판단, 전체의 완급 조절에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고, 배우나 스탭에게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다그치기보다 풀어놓고 나란히 횡대로 함께 걸어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입버릇처럼 ‘자세’를 말하는 류 감독이 새삼스레 강조하는 ‘폼’은 무엇일까 “스티븐 소더버그나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처럼 미끈하게 잘 빠진 영화였으면 좋겠다. 장르의 완성도를 갖추면서 장르의 한계를 돌파하는, 그러면서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영화 말이다.” <마루치 아라치>는 2003년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남동철 namdong@hani.co.kr 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류승범, 장풍을 배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찍으면서 감독이 된 것보다 류승범을 배우로 쓴 거라고 생각한다.” 류 감독이 주인공 상환 역에 류승범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품행제로>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류승범의 다른 매력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상환 역의 류승범 외에 캐스팅이 확정된 인물은 아직 없다. 상환의 짝을 이룰 의진에 대해서는 감독 자신도 “누가 될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하는 형편. 여기서 의진은 보통의 젊은 여자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도인의 길을 걸어야 하는 여자이다. 7명의 도인인 칠선 가운데는 5명이 필요하다. 2명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설정했기 때문. 류 감독은 “소화자 없는 <취권>은 없다”는 말로 칠선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보여준 대로 의외의 캐스팅에서 영화적 매력을 만드는 류 감독의 재능을 다시 기대할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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