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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숨은 일꾼들 [1]
2003-01-04

우리,영화판 밖에서 대박을 꿈꾼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시선이나 조명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촬영현장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남들이 알아주던 말던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다수 스탭들과 달리, <씨네21>이 만난 사람들은 뿌듯한 성과를 발견하기 힘든 직업을 가졌다. 남들 일할 때 혼자 놀고 남들 쉴 때 혼자 일하는 현장버스기사, 주연배우를 뒷받침하는 로드 매니저, 수십명의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는 밥차 아주머니와 아저씨,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는 보험설계사…. 이들은 카메라를 잡거나 세트를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없으면 단 하루도 촬영을 진행할 수 없다. 일반 관객에게는 그 존재가 낯설고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존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 ‘주변부’의 인력들. 그들은 왜 현장을 찾았고 어떻게 하루를 꾸려가며 어떤 내일을 꿈꾸는가. 촬영현장 버스기사 서원상씨는 마치 자신은 스탭이 아니라는 듯,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있는 스탭들이 모여 있어서 도저히 영화현장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서씨를 포함해 <씨네21>이 만난 이들은 그 다양하고 개성있는 스탭들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 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스탭과는 한가족처럼”

서원상씨는 “스탭들과는 한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처음엔 어느 팀에 끼어서 밥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던 그가 촬영이 끝나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스탭들과 친해진 것은 그런 소신을 적극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라고 부르면 대답도 하지 않고, 꼭 오빠나 형이라고 부르게 시킨다는 서원상씨는 그날도 <밀애> 스탭이 찍는 단편영화 현장에 통닭을 사들고 가야겠다며 촬영장소를 묻고 있었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정진환 ungjh@hani.co.kr

서원상(36)씨는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불만이다. 여러 영화현장을 한꺼번에 뛰면 수입도 올라가겠지만, 그는 “현장 하나에만 붙어서 가족처럼 아기자기하게 지내던” 2년 전 풍경이 아쉽기만 하다. 스탭과 촬영장비를 전문적으로 운송하는 회사 시네마시티에서 일하는 그는 4년차 기사, 다른 버스기사들에 비하면 거의 막내뻘되는 처지인데도, “웬만한 현장에 가면 한두팀은 꼭 같이 일해본 사람들”일 정도로 여러 현장을 두루 돌았다. 7년 동안 앰뷸런스를 운전했던 그가 촬영현장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는 동생 소개로 아르바이트 삼아 조명탑차 운전을 거들다가 버스운전에까지 이르게 된 것. 그때만 해도 할인마트 셔틀버스로 주로 쓰이는 조그마한 ‘코스모스 버스’가 주종이었지만, 이젠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하는 오지 촬영만 아니라면 안락한 대형버스가 주로 쓰이게 됐다. 그가 인터뷰 장소에 몰고 나온 버스도 원래 35인승이었던 것을 의자간격을 넓혀 31인승으로 개조한 것이다. “좀더 편안하고 깔끔한 버스”를 장만해 ‘우리 식구’ 다시 말해 스탭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꿈이라는 서원상씨는 모처럼 현장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밀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해시에 함께 머물면서 틈틈이 엑스트라도 하고 현장 일도 거들었다고. 대사까지 맡아 칭찬을 받았지만, 서원상씨는 촬영이 너무 많아 아직 <밀애>를 보지 못했다.

7년 전 단돈 36만원으로 식당을 시작한 정동찬, 김미라씨 부부는 지금은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어엿한 한 식구가 되었다. 6년 전 <닥터K>의 촬영장이 바로 옆이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음식을 조달하게 된 이들 부부는 현재 총 다섯대의 식당차를 운영(나머지 4대는 하청)하며 전국 곳곳의 영화촬영지를 동행하고 있다. 식당차가 없던 시절, 그러니까 고작해야 6∼7년 전쯤까지(정동찬씨의 말에 의하면 식당차 운영은 자신이 “최초”라고 한다)도 촬영 스탭들은 도시락이나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거나, 근처 식당에 가기 위해 무거운 기자재들을 같이 옮겨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촬영 스탭들은 현장에서 정성스런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고, 그 고마움으로 정동찬, 김미라씨 부부를 “삼촌, 이모”, 더러는 “아빠, 엄마”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오히려 “따뜻한 밥 먹게 해주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겸손해한다. 한끼에 70, 80명분의 식사량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님에도, 때로는 계획에 없던 인원이 늘어나 식사준비에 차질을 빚을 때가 가장 난처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살인의 추억>과 <나비> 등 여러 편의 영화촬영지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정동찬씨 내외는 이동 장소가 많았던 탓에 말 그대로 “고생 무지하게 많이 했다”면서 <봄날은 간다>를 기억에 남는 영화로 손꼽았다.

갈비탕이냐제육볶음이냐,그것이 문제로다

정동찬, 김미라 부부는 마흔두살 동갑내기에 둘이서만 다니는 탓에 곧잘 부부싸움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부부싸움의 이유가 바로 현재의 이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대부분 싸움의 원인은 스탭들을 위해 “갈비탕을 할 것이냐 제육볶음을 할 것이냐”를 놓고 벌이는 정성스런 ‘식단 메뉴 선택’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싸움 덕분에 스탭들은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는 것이다.글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정진환 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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