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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형제의 고전적 하드보일드,<밀러스 크로싱>
2003-01-08

TV 영화

Miller’s Crossing, 1990년감독 코언 형제출연 가브리엘 번EBS 1월11일(토) 밤 10시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거야.” 여자는 남자를 향해 애절하게 말한다. 진심어린 눈빛으로.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퉁명스럽다. “그런가” 남자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더 신경쓰는 게 있다. 쓰고 다니는 모자를 부지런히 챙기는 일이다. <밀러스 크로싱>에 나오는 인물들은 황량한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하다. 영화 내내 그들은 서로 쉼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소통한다’는 감은 거의 없다. 견고한 불신과 의혹, 그리고 협잡의 기운이 주변에 만연한다. 영화를 보면서 고전기 할리우드영화, 즉 갱스터와 필름누아르를 연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밀러스 크로싱>은 위대했던 미국영화의 시대를 회고하는 작품이다.

1920년대, 어느 도시에선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대결하고 있다. 리오가 우두머리로 있는 아일랜드계 마피아의 톰은 신임을 얻고 있지만 두목의 여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리오의 약혼자인 베르나의 남동생이 경마에 대한 정보를 빼내서 돈을 벌자 이탈리아계 마피아 보스는 그를 제거할 것을 명한다. 톰은 리오에게 베르나의 남동생을 없애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길이라 설득하지만 리오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밀러스 크로싱>은 갱들 사이에서 ‘처단장소’를 의미하는 속어다. 영화에서 톰을 비롯한 마피아들은 배신자를 없애기 위해 한적한 숲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는 “당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며 절규한다. 한마디로,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톰은 누군가를 살해해야 하는데 우연인 듯 가장한 채 목숨을 살려준다. 실제로는 계획적인 행동이다. <밀러스 크로싱>은 다른 코언 형제의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코언 형제는 작품에서 ‘우연’의 모티브를 즐겨쓰곤 한다.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에서 <파고>(1997), 그리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에 이르기까지 코언 형제의 범죄영화나 스릴러 등에 나오는 살인이나 범죄행위는 모두 우연처럼 등장한다. 우발적이며 무의식에 가까운 행위로서 사건을 이어가는 것이다. <밀러스 크로싱>은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계획적이며 냉철한 드문 사례다. 또한 같은 점에서 정통 하드보일드 계보에 더 근접한다.

<밀러스 크로싱>은 줄거리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 인물관계는 연속해서 얽히고 사건들은 복잡해진다. 코언 형제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비슷한 특징을 지니곤 한다. 그중 하나는 모호성이다. 톰은 마피아 조직들을 오가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고, 여자에게도 절대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코언 형제의 초기작에서 흔히 발견되는 ‘우정과 윤리학 사이의 갈등’의 원칙은 영화에 잘 배어 있는 편이다.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