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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곁에 없는 거인을 위하여
2001-07-16

그들은 어떻게 호금전을 발견하고 그의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나? 15일 열린 메가토크는 올해 부천이 명예의 전당에 모신 호금전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김홍준 집행위원장과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는 프랑스의 피에르 리시앙, 영국의 토니 레인즈, 캐나다의 피터 리스트, 홍콩의 스티븐 테오 등 호금전을 직접 만났던 4개국 평론가가 참석했다.

이들이 호금전을 만난 계기는 각기 다르다. 80년대부터 홍콩영화제에서 일한 스티븐 테오는 영화제 준비차 호금전을 인터뷰하면서 그를 알게됐다고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콩코디아 대학 영화과 교수인 피터 리스트는 1979년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공산영우>를 본 뒤 호금전 영화를 찾아다녔다. 아시아 영화 전문가로 알려진 토니 레인즈는 70년대 초 런던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극장에서 <영춘각의 풍파>를 본 게 계기였다. 칸영화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걸로 알려진 피에르 리시앙은 1975년 <협녀>를 칸에 소개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72년 대만과 홍콩에서 개봉한 <협녀>는 프로듀서와 감독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극장과 배급업자가 마음대로 자른 작품이었다. 호금전은 감독판을 위해 자기 영화 판권을 다시 사들이고 1975년 드디어 3시간짜리 복원판을 만들었다.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될 <협녀>는 이렇게 나온 복원판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체로 <협녀>가 호금전 영화 가운데 최고라는데 동의한다. 특히 피터 리스트는 “굳이 세계영화사에서 최고의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협녀>를 꼽겠다. 완벽한 영화라고 할 수 없을 지는 모르겠지만 <협녀>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액션의 우아함에서 으뜸가는 영화”라며 호금전의 열렬한 팬임을 과시했다. 논의가 깊어지면서 격렬한 공방도 오갔다. 스티븐 테오가 호금전 영화의 특징으로써 ‘중국적인 것’에 대해 언급하자 토니 레인즈는 “호금전의 매력을 중국적인 것에서 찾는 건 문화적 나르시즘”이라고 공박했다. 이같은 두 사람의 논쟁은 “<협녀>의 원작소설을 읽어봤느냐”는 암기를 날리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사회자의 재치있는 개입으로 칼을 거뒀다. 화제가 바뀌자 홍콩의 영화산업에 밝은 토니 레인즈는 호금전의 우울한 말년에 대해 70년대 홍콩영화의 흐름과 연관지워 설명했다. “70년대초 홍콩영화의 변화는 이소룡으로 대변된다. 이소룡의 쿵푸영화가 성공하자 검술이 위주인 기존 무협영화가 빠른 속도로 쇠퇴했다. 호금전은 홍콩 바깥에서 자본을 구하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은 데는 경제적인 요인도 있었다. 한국정부가 합작영화를 2편 이상 찍을 경우 투자지원을 한다고 발표하자 호금전은 <공산영우>를 찍으면서 패키지로 <산중전기>까지 찍었다. 물론 한국에 그가 원하는 자연환경과 건축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사실 <산중전기>부터 이어지는 호금전의 후기 영화는 실망스럽다. 독립 영화사를 차려 영화를 만들던 그는 제작비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1979년 홍콩에 서극, 허안화, 방육평 등 새로운 젊은 감독들이 나타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호금전의 영화는 더 이상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건강도 차츰 나빠졌다.”

호금전이 세상을 떠난 지금, 2시간쯤 진행된 이들의 증언은 호금전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부채질하는 기능만 하는 것 같다. 하긴 그들이 호금전을 발견한 것도 그런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남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