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고생물학자이자 공룡연구가인 그랜트 박사(샘 닐)는 벨로시랩터의 지적 능력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려 하지만 연구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랜트는 공룡들의 서식처인 죽음의 섬 이슬로 소르나로 결혼 기념 여행을 떠난다는 재벌 사업가 커비(윌리엄 H. 메이시)와 그 아내(테아 레오니)로부터 그들의 여행 가이드가 돼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연구비가 궁한 나머지, 이들의 여행에 동행한 그랜트는 이들 부부가 이슬로 소르나 해안가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랜트 일행은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섬에 갇혀버리고, 전에 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공룡들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게 되면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 Review
그랜트 박사의 벨로시랩터 연구 프로젝트 발표회장. 발표가 끝나자 청중은 서로 질문을 하겠다고 난리다. “쥬라기 공원이나 샌디에이고 사건과 무관한 질문만 받습니다.” 우수수 손을 떨어뜨리는 청중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서 ‘쥬라기 공원’은 1편을, ‘샌디에이고 사건’은 2편을 뜻한다. 전편을 언급하지 않으면, 속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 <쥬라기 공원3>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전편을 넘어서는 역작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비워내고, 대신 속편의 숙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는 것이다. ‘공룡이 득실대는 섬에 갇힌 과학자 무리의 위험천만한 탈출기’라는 이야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크고 강하고 빠르게 보여준다’는 속편 서바이벌의 법칙에 충실해야 할 터. 3편은 공룡의 종류를 늘리고, 전투력을 강화하고, 무대를 넓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농담이 늘었다는 사실.
“이번엔 ‘그’ 공원에 걸어들어가지 않는다”는 표어, 거대한 익룡의 그림자뿐인 포스터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엔 육지뿐 아니라 하늘과 물 속에서도 공룡들과 대적해야 한다. 93년 경이로운 첫선을 보인 이래 4년 간격으로 계속 찾아오고 있는 티라노사우루스는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 이번에는 그랜트 박사의 연구 대상인 벨로시랩터가 영화의 중심에 서서, 사람을 잡아 미끼로 쓰고 서로 신호를 보내 협공을 펼치는 등 지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크고 강하고 잔인한 공룡 스피노사우루스도 처음 등장해, 수륙양용의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한다. 2편 에필로그에 잠깐 나온 익룡 테라노돈도 활개를 친다. 한 종류의 공룡을 따돌리면 또다른 공룡이 기다리고 있다. 숨 쉴 틈 없는 추격과 탈주의 리플레이가 영화 속 캐릭터에겐 고역이지만, 관객에겐 다음엔 얼마나 더 ‘센 놈’이 나타날까, 은근한 기대를 품게 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적의 힘이 업그레이드되는 전자오락을 즐기는 것처럼.
<쥬라기 공원3>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숫자나 외양으로 미뤄보면, 1편이나 2편보다 훨씬 더 비릿한 피냄새를 풍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공룡의 살상장면이 많지도 않고 노골적이지도 않다. 공룡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인간이 신을 조롱했기” 때문이다. 벨로시랩터가 그랜트 박사 일행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공격하는 것도, 커비 부부가 사이비 재벌 행세를 하고 사지로 걸어들어간 것처럼, ‘어미’의 본성을 따른 행동일 뿐이다. 방해받거나 유린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적이 될 이유는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공룡의 등장이나 급습의 순간도 공포스럽지 않다. 깜짝 놀라기보다는 키득거리게 될 때가 많은데, 특히 시계를 삼켰던 <피터팬>의 악어처럼, 휴대폰을 삼킨 스피노사우루스의 익살이 압권이다. 3편의 또다른 매력은 전편에 대한 농담과 비틀기. 1편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랜트는 2편의 무대인 이슬라 소르나로 날아가는데, 허탈하게도 커비가 그랜트를 2편의 주인공 말콤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랜트는 2편의 주인공이었던 말콤 박사와 앙숙인지라, 커비의 아들이 말콤의 저서를 비판하자 흐뭇해하기도 한다. 1편에서 그랜트의 연인으로 나왔던 앨리와의 재회도 반전을 심어둔 깜짝 선물.
경이로운 1편과 섬뜩한 2편과는 또다른 개성으로 승부한 3편은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한 가족영화에 가깝다. 조 존스턴은 스티븐 스필버그 없는 ‘쥬라기 공원’이 가당키나 하냐는 의구심을 날려버렸지만, 이상하게도 스토리 마디마디에 스필버그의 흔적을 심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와해됐던 커비의 가정이 재결합의 해피엔딩을 예고하고, 연구가의 기질을 가진 스승 그랜트와 탐험가의 기질을 가진 제자 빌리가 한때 갈등하다가 서로를 이해한다. 이는 스필버그가 80년대 내내 되새김한 낡은 주제, 즉 불안한 가정과 부자(세대)의 갈등 해소에 관한 이야기다. 스필버그의 입김일까, 존스턴의 자발적인 오마주일까.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날아가는 익룡의 뒷모습이 4편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어떤 스토리일지, 누가 연출할지, 스필버그만이 아는 일이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감독 조 존스턴
폭력 NO! 동심 YES!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미더운 작가의 뒷받침도 더는 없고, 창조주이자 흥행사인 스필버그마저 손을 뗀 마당에, ‘쥬라기 공원’을 누가 지킬 것인가. 제작자로 물러앉은 스필버그는 <애들이 줄었어요> <쥬만지> 등 가족용 액션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조 존스턴 감독을 후임으로 낙점했다. 3편의 재미와 완성도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니, 결과적으로 스필버그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다. 조 존스턴은 4편은 만들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아놓은 상태. “이제 다른 누군가가 공룡과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편에 또 속편이 더해지면서, 표현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과정의 고충은 컸겠지만, 조 존스턴은 1편과 2편을 거치며 그 이상이 있을까 싶었던 공룡의 비주얼을 더욱 다양화하고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쥬라기 공원>에서 팀워크를 다진 바 있는 ILM의 시각효과감독 짐 미첼과 공룡 제작자 스탠 윈스턴이 조 존스턴과 호흡을 맞췄는데, 공룡의 근육과 살이 따로 움직이는 듯 보이는 효과는 처음 시도한 것이고, 모형과 원격 조정 로봇에 컴퓨터로 만든 형상을 합성하는 기술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작품 전체의 비주얼 얼개를 제대로 짜고, 시각효과부문의 일급 스탭들을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존스턴 자신이 디자인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존스턴은 <스타워즈>의 스토리보드를 그린 것을 계기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한동안 조지 루카스의 ILM에서 일했다. 81년 스필버그의 <레이더스>로 아카데미 최우수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뒤로도, <하워드 덕> <윌로우> 등의 시각효과를 맡아 호평을 받기도 했다. USC에서 뒤늦게 영화제작 공부를 하는 등 80년대 들어 감독으로의 전업을 모색하던 중, 89년 <애들이 줄었어요>로 연출 데뷔했다. 이후 연출작인 <인간 로켓티어> <페이지 마스터> <쥬만지>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조 존스턴은 폭력이나 섹스에는 취미가 없는 대신 여리고 순수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고, 황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환상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기술을 꿰고 있다. <쥬라기 공원3>가 ‘가족영화 버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취향과 세계관, 그리고 그것들을 보필해주는 그의 재능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