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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지옥이야, 스티븐 홉킨스의 <킬러 나이트>
홍성남(평론가) 2000-02-22

회색의 아스팔트 정글에 갇힌 도시인들을 꿈을 꾼다. 이 지긋지긋한 ‘비명도시’를 빠져나갈 꿈을.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 꿈은 광활한 판타지의 세계로 팽창하는 ‘백일몽’일 경우도 있지만 미로와 같은 도시 속을 헤집고 돌고도는 ‘악몽’도 있다. 악몽을 꾸는 도시인들은 갖은 고생을 겪다가 결국 필사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큰맘 먹고 발을 내딛은 결과가, 온갖 고초를 겪은 보상이, 겨우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니 참 허망하기도 하다. ‘홈 스위트 홈,’ 또는 ‘노 웨이 아웃’(No Way Out).

부랑자들이 기거하는 버려진 화물 열차로, 그러곤 게토의 아파트로, 음습한 하수구로 죽음의 마수를 피해 달아나다 거의 죽기 일보 전까지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그린 <킬러 나이트>는 그런 도시 정글에서의 악몽을 재연하는 흔해빠진 액션 스릴러 영화다. 프랭크와 존 형제, 흑인 마초 마이크, 수완가인 레이, 이 네 젊은이는 권투 경기를 구경하러 모처럼 외출길에 나선다. 값비싼 레저용 승합차까지 빌려 한껏 분위기를 띄운 그들. 하지만 극심한 교통 체증은 그들의 달뜬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에 맞출 양으로 생소한 뒷골목에 접어든 이 네 젊은이들. 그러나 이 순간의 판단 착오가 엄청난 화를 불러올 줄이야.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을 목격한 대가로 이들은 살인범 일당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다. 이제 지옥에 떨어진 가련한 네 젊은이들의 처절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희생자들이 빠져드는 패닉 상태가 끝간 데 없는 것일수록, 그들이 잘못 들어선 미로가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그들이 말려든 사태가 풀기 어렵게 얼기설기 꼬여 있는 것일수록,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미친 듯 광포하고 잔인할수록 포만감을 주게 마련이다. 그건 이런 영화를 보는 관객이란 기본적으로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킬러 나이트>는 앞서 지적한 어떤 것에서도 고강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악당들은 입으로 “여기가 지옥이야”라고 지껄이지만 사실 예측가능한 스토리의 경로는 그곳을 단지 놀이공원 안의 유령의 집 정도로 보이게 만든다. 다만 “증인은 남기지 않는다”는 규칙을 끝까지 ‘준수’하는 악당들의 리더 데니스 리어리 정도가 사악하고 호전적인 성격을 잘 살려낼 뿐이다. 어쨌든 어떤 평자는 이 영화를 “액션에 굶주린 관객의 마음속에 어떤 서스펜스도 자아내지 못하는 그해의 가장 참기 어렵게 지루한 스릴러 가운데 하나”라고 악평도 서슴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스티븐 홉킨스(<고스트 앤 다크니스>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가 만든 <킬러 나이트>가 과시하는 최고의 ‘스펙터클’은 아마도 우리의 귀를 꽤 만족시켜주는 사운드트랙일지도 모른다. 페이스 노모어, 바이오해저드, 슬레이어, 아이스 T, 펄 잼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참여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얼터너티브 록과 힙합의 접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았다. 이건 얼터너티브 록과 테크노를 결합한 <스폰> 사운드트랙의 원조격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로는 그리 대단치 않은 <킬러 나이트>라는 ‘영화’는 혹 더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

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한 시대는 가고

<킬러 나이트>에서 네명의 악당들에 맞서는 네 젊은이들의 보스로 불리는 주인공 프랭크를 연기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1962∼)가 배우인 마틴 신의 아들이자 찰리 신의 형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외모만 봐도 찰리 신보다는 그가 아버지에 더 흡사하기에 ‘소년 마틴 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틴과 찰리가 쓰는 ‘신’이라는 성(姓)은 미국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를 의식한 마틴이 바꾼 예명. 하지만 에밀리오는 연기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스페인풍이 나는 가족 본래의 성을 쓰기로 작정했다.

소외된 10대를 그린 영화 <텍스>(1982)로 스크린에 첫선을 보인 에스테베즈는 곧이어 당대 청춘 스타의 산실인 <아웃사이더>(1983)와 알렉스 콕스의 컬트 영화 <리포 맨>(1984)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브랙퍼스트 클럽>(1985)과 <세인트 엘모의 열정>(1985)에 출연한 그는 톰 크루즈, 몰리 링월드, 로브 로, 데미 무어 등과 함께 ‘브랫 팩’(brat-pack) 일원에 끼면서 80년대의 대표적 청춘 스타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에스테베즈의 이후 경력은 거기서 더이상 상승 기류를 타지 못했다.

에스테베즈는 할리우드의 야심적인 ‘르네상스 맨’을 꿈꾼 젊은 인재이기도 했다. 1985년에 이미 <마지막 데이트>(That Was Then… This Is Now)로 시나리오 작가로도 데뷔한 그는 다음해엔 자신이 직접 감독, 각본, 주연까지 겸한 <위즈덤>을 발표한다. 90년에도 두 번째 감독작 <궁둥이에 총을 쏜 남자>(Men at Work)를 만들었지만 두 작품 모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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