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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국익이를 내버려두자

황우석 교수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신도시 개발 때문에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내쫓기는 상계동 철거민들을 그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상계동에서 내몰린 그들이 부천시의 고속도로 근처에 자리를 잡은 다음 벌어진다. 당시 정부가 철거민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그들을 서울 외곽으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부천의 고속도로 옆이 그곳. 그들은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 판잣집을 지어놓고 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천시 공무원들이 불법건축물이라며 판잣집을 헐러 온 것이다. 철거민들은 정부에서 시킨 대로 이주한 것이라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상계동에서 철거 깡패들과 힘든 싸움을 벌였던 그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약자였다. 기가 막힌 것은 철거의 이유다. 관계자는 고속도로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데 서울의 낙후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국익을 위해 도시 빈민쯤은 짓밟아도 좋다는 끔찍한 논리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논란에서 국익이 관심의 초점이 됐다. 경우가 같지는 않지만 <상계동 올림픽>이 떠올랐다. 다수 네티즌의 반응이 철거와 같은 폭력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으나 사태의 본질에 비슷한 논리가 자리잡고 있어서다. 국익을 위해 우리의 흠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과거 영화를 검열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도 비슷하다. 70∼80년대 많은 영화들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가위질을 당했다. 한강의 기적을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너희 예술가라는 작자들은 왜 부정적인 것만 부각시키냐는 것이었다. 노골적인 검열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이런 논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사람들에게 제작자들이 내놓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좋은 점만 써달라는 것이다. 정말 사람들은 잘한다는 칭찬만으로 좋은 세상이 이뤄진다고 믿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고속도로 옆 판잣집을 뜯어낸다고 빈민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달동네를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고 가난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칭찬만 쓴다고 후진 영화가 좋아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PD수첩>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후속편을 방영하겠다고 나온 만큼 이후 사태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PD수첩>의 문제제기 자체가 특별히 경솔했다거나 선정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황으로 보건대 다른 어떤 식으로 보도를 했어도 황 교수의 연구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면 경솔하고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사태를 보면서 수상쩍은 것은 신문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의 태도다. 교묘하게 <PD수첩>과 MBC를 비판하면서 네티즌의 등 뒤에 숨고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의 연구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은밀히 깔면서 <PD수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양비론을 전개한다. 남이 굿을 하면 떡이나 먹겠다는 이런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노라면 지금은 <PD수첩>을 격려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황 교수님은 어떻게? 그런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간단하다. <PD수첩>에 박수를 보내는 것과 황 교수의 연구에 박수를 치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있고 당연히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다. <PD수첩>이 취재한다고 황 교수에게 누가 된다는, 그런 편견만 버리면 된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검증과정을 밟는다고 연구성과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국익이는 내버려두자. 기자, PD, 과학자가 각자의 윤리를 지키며 자기 몫을 하면 국익이는 말 안 해도 따라온다

사진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