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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피터 잭슨의 시도, <킹콩>
박은영 2005-12-13

영화 한편으로 인생이 달라졌다는 이들은 허다하지만, 그 영화를 기어코 자기 식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감독은 흔치 않다. 아홉살 나이에 <킹콩>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피터 잭슨이 바로 그 희귀 케이스다. 철사 뼈대 위에 어머니의 모피 조각을 입혀 만든 킹콩 인형, 판지로 지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조악하게’ 시도했던 리허설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2억700만달러 규모의 3시간짜리 영화로 다소 ‘거하게’ 실현됐다.

피터 잭슨은 1933년작 <킹콩>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왔다. 무모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영화감독 칼 덴햄(잭 블랙)은 우연히 발굴한 여배우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를 내세워 신작을 찍기로 하고 미지의 섬으로 향하는데, 이 여정에 동행한 작가 잭 드리스콜(에이드리언 브로디)은 앤과 로맨틱한 사이로 발전한다. ‘해골섬’으로 불리는 촬영지에선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앤은 섬을 지배하는 괴물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킹콩은 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공룡들과 사투를 벌인다. 칼은 앤에 대한 킹콩의 연정을 이용, 킹콩을 생포해 뉴욕으로 데려오고, 탈출한 킹콩은 앤을 찾아 도시를 헤맨다는 이야기. 원작 영화와 비슷한 스토리라면, 어째서 러닝타임은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일까? 미리 <킹콩>을 본 현지 언론은 늘어난 분량의 상당 부분이 킹콩의 다종다양한 액션과 애틋한 감정의 드라마에 할애됐다고 전한다. 골룸의 앤디 서키스가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를 불어넣은 킹콩이 해골섬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등과 대적하는 격투신은 이미 예고편을 통해 화제가 됐고, 이와 더불어 회자되는 명장면은 뉴욕으로 끌려온 킹콩이 센트럴파크를 헤매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기어올라가는 엔딩이다. 고대 정글의 신비를 간직한 해골섬과 공황기의 눅눅한 잿빛이 지배하는 뉴욕 도심의 풍광에 대한 상찬도 눈에 띈다.

<킹콩>의 기술적 성취는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피터 잭슨에게 그보다 더 절실했던 과제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킹콩이 거대하고 잔인한 야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종족 최후의 존재로서 감당해야 했던 고독, 그래서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감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뉴스위크>가 <킹콩>의 독점 시사기에서 “놀랍도록 부드럽고 섬세하며, 가슴 아프기까지 한 이야기”라고 전한 것을 보면, 피터 잭슨의 시도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모양이다(기사를 마감하는 시점까지 <킹콩>의 시사는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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