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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빈곤한 영화과, 궁핍한 시네마테크

1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기자회견

얼마 전 대학 영화과 입시가이드를 별책부록으로 만든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영화과가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과가 많아진 것은 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가 배고픈 예술이나 조악한 기술의 이미지를 벗고 학문의 하나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영화감독이 CF에 나올 정도로 각광받는 직업이 된 만큼 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들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과가 늘어난 만큼 영화교육의 질이 높아졌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상당수 영화과가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급조됐기에 교수진이나 시설면에서 충분치 않다. 카메라, 조명, 편집 등 관련 기자재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 도서관이 보유한 자료의 양과 질이다. 대학이 직업훈련소로 변한 게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도서관의 빈곤함은 참담하다. 봐야 할 고전들이 없는 황량한 대학이 촬영기술을 익히고 편집기를 만지는 기능적인 교육에 치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햄릿>과 <백경>이 없는 도서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을 상상해보라. <정신현상학>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없는 도서관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은 어떤가.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고전이 필요하듯 영화에도 고전이 필수적이지만 문학 대신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교정에서 이런 당위는 사치스럽다. 책보다 영화에 드는 비용이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더. 각 대학의 도서관 대신 한국영상자료원이 있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상자료원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한국영화에 한정돼 있다. 고전 걸작을 소개하는 시네마테크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좋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영화교육은 없다고 믿는다.

지난해 옛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로 옮긴 서울아트시네마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시네마테크다. 그런데 이곳이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을 하고 있지만 관객 감소로 인한 적자를 메울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아끼는 감독, 평론가가 나서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을 걸고 후원의 밤을 개최한 것도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씨네21>도 친구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월부터 지면을 통해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화인 캠페인 행복한 만원 릴레이’처럼 매주 싣게 될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영화광들이 시네마테크 살리기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대학 영화과나 정부 기관들이 맡아야 할 몫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은 그들 대신 공공도서관의 기능을 하는 곳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 예를 들어 어떤 감독의 회고전을 수업에 활용하는 식으로. 일부 학교에서 이런 시도를 했지만 좀더 많은 학교가 동참할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나 문화콘텐츠진흥원 같은 기관이 시네마테크를 돕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면 시네마테크는 예술교육이나 문화콘텐츠 진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누군가 해주겠지 하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독자 여러분도 시네마테크를 살리는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이것은 좋은 영화로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일인 동시에 우리 세대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P.S. 가로로 펼쳐진 표지가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으리라. 인쇄사고는 아니니 안심하시길. 한번쯤 발상의 전환을 해보고 싶었다. 손홍주 사진팀장이 찍은 사진을 보자마자 때가 됐다는 느낌이 왔다. <씨네21>이 11년 만에 행한 일탈이니 널리 양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