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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의 계관시인
2001-10-24

데뷔 10여년 만에 주목받기 시작한, 프랑스영화의 숨은 재능 클레어 드니 (2)

<아름다운 직업>, 아름다운 작업의 결과물

국외적인 것에 대한 매혹, 관능성에의 탐구, 생략적인 스토리텔링이 대략 드니의 영화세계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라면, 최근 들어 드니를 비평적 스포트라이트 안에 끌어들인 걸작 <아름다운 직업>은 지금까지 나온 드니의 영화들 가운데 이들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아름다운 작업’의 결과물이다(이 영화는 지난 99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월드 시네마’ 부문에서 선보인 바 있다). 우선 국외적인 것에의 매혹에 관해 말하자면, 드니에게 ‘국외적인 것’에 대한 시리즈에 들어갈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아르테 방송사의 주문은 정말이지 유효 적절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직업>은 <초콜렛> 이후 10여년 만에 아프리카로 다시 달려가 지부티만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를 카메라에 담아온 드니의 대단한 탐험정신의 결과물이다. 두 번째로, <아름다운 직업>은 살아 있는 관능성이 마구 꿈틀대는 그런 영화다. 단지 사막의 땡볕 아래 웃옷을 벗은 외인부대원들의 근육이 적당하게 붙은 잘 빠진 몸매와 베르나르도 모네가 안무한 그들의 유연한 움직임 같은 시각적 요소들만 관능적인 게 아니라 그들의 모습이 담긴 숏들을 이어붙이고 그 위에 또 여러 종류의 음악들을 덧붙여낸 영화의 구조 자체가 회피할 수 없는 관능미를 풍겨낸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툭툭 끊기는 생략적인 스토리텔링은 꼭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이제는 외인부대에서 쫓겨난 갈루라는 인물이 부대에서 있었던 지난일들을 떠올리는 형식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단속적이고 생략적인 이야기 방법은 마치 맞게도 영화를 몽상적이게 만들어준다. 요컨대 <아름다운 직업>은 이른바 ‘드니적인 것들’의 최대한의 협화음 아래서 만들어진 걸작인 것이다. 의식과 육체를 한껏 미학화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혹 <아름다운 직업>이 <의지의 승리>나 <올림피아> 같은 레니 리펜슈탈 영화의 내러티브 버전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둘 사이의 차이를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이야기하자면 리펜슈탈의 영화가 힘의 승리와 부활을 외친다면 드니의 영화는 오히려 소속에의 강박과 아름다운 것의 억압에 대해 교묘하고 은밀히 이야기한다.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를 느슨하게 각색한 <아름다운 직업>은 외인부대에서 쫓겨나 지금은 마르세유에 사는 갈루라는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멜빌의 소설 외에 드니가 영화에 끌고 들어온 레퍼런스로 중요한 것으로는 고다르의 초기 영화 <작은 병정>을 빼놓으면 안 된다. 드니의 영화에서 외인부대의 사령관 브루노 프레스티에 역을 맡고 있는 이는 미셸 쉬보르인데 그는 고다르의 영화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40여년 전 알제리 해방전선의 요원을 암살했던 탈영자 포레스티에/쉬보르가 외인부대의 사령관 포레스티에/쉬보르로 돌아온 것이다!). 사령관 포레스티에를 존경하는 갈루는 아주 잘생기고 책임감도 넘치며 여러모로 뛰어난 신참병인 상탱이 사령관의 신임을 얻자 상탱을 ‘질투’하게 된다. 결국 갈루는 상탱을 제거할 계략을 짜내지만 사령관에게 그것이 발각되자 부대로부터 추방당한다. 그렇게 프랑스로 쫓겨난 몸이지만 갈루의 여전히 마음은 지부티만에, 그곳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속해 있다. 자신이 속할 곳은 그곳뿐이라 생각하는 갈루는 두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의 아름다움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고 그럴수록 지부티만의 외인부대는 너무나 완벽해 오히려 억압적인 것이 되고 만다. 장 비고의 뒤를 잇는 프랑스영화의 시인

영화가 끝날 무렵 과거의 좋았던 추억에 젖은 갈루는 상체를 벗은 채 침대에 누워 권총을 만지작거린다. 그가 말한다. “대의를 다하고 죽어라.” 이제 그의 운명은 정해진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디스코 음악이 들리고 클로즈업된 그의 팔뚝은 미세하게 떨린다. 이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벽면이 거울로 된 디스코텍에 홀로 서 있는 갈루이다. 한 손에 담배를 물고 있던 그는 비로소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더니 춤을 추기 시작한다. <리듬 오브 더 나이트>에 맞춰 추는 그의 춤이 점차 격렬해질수록 우리에게 전해지는 형언 못할 정서적 진동은 더해간다(갈루 역은 한때 레오스 카락스의 페르소나로 통했던 드니 라방이 맡았는데, 그의 최고 연기는 카락스의 영화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연 갈루는 그동안 자신을 사로잡았던 미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시작한 것일까? 그건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정체가 불분명하면서도 여운이 긴 감동을 남긴 멋진 장면이 끝나면 이런 걸 만들어낸 클레르 드니라는 인물이 장 비고의 뒤를 잇는 프랑스영화의 시인들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잡을 건 분명해 보인다. 홍성남/ antihong@hitel.net

필모그래피

1988년 <초콜렛>(Chocolat)

1990년 <죽음은 두렵지 않다>(S’en Fout la Mort)

1993년 <잠이 오질 않아>(J’ai Pas Sommeil)

1996년 <네네트와 보니>(Nenette et Boni>

1999년 <아름다운 직업>(Beau Travail)

2000년 <트러블 에브리 데이>(Trouble Every Day)

▶ 프랑스영화의 숨은 재능 클레어 드니 (1)

▶ 프랑스영화의 숨은 재능 클레어 드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