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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60개국 203편 화제작 큰잔치
2001-10-26

오는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6년째를 맞아 이제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는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8일 동안 부산의 5개 극장, 15개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향연을 펼친다. 예년보다 3주 정도 늦게 시작하는 탓에 가을이 제철인 전어의 싱싱한 맛을 즐기기는 힘들어졌지만, 60개국 203편의 상영작은 여전히 이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선도 높은 것들이다.

올해는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 많아졌고, 영화 초청 국가수가 늘면서 영화들이 더 다양해졌다. <칸다하르> <델바란>에서는 최근 관심이 집중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간접적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고, 한국과 함께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폭증하고 있는 타이와 프랑스의 흥행작들을 만날 수 있다. 코언 형제, 고다르, 허우샤오시엔 등 대가들의 신작을 예년보다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한 특징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신진 감독들의 영화들을 상대로 한 경쟁부문 `새로운 물결' 등 6개 상영 부문 외에 타이영화 11편을 특별초청해 `타이 영화 붐'의 실체를 조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또 <탈출기> <이조여인 잔혹사> 등 신상옥 감독의 영화 7편을 모은 특별전도 마련했다.

개막작은 배창호 감독의 신작 <흑수선>으로, 제작비 40여억원에 이정재 안성기 이미연씨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형 영화다. 폐막작은 제작비 150억원이 들어가 타이의 국민영화로 불리는 <수리요타이>로 16세기 초 아유타 왕국 수리요타이 왕비의 슬픈 일대기를 그렸다.

다큐멘타리 가운데도 화제작이 많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아프리카 오지 어린이들을 찍은 <에이비씨 아프리카>, 에밀 쿠스투리차가 이끄는 밴드를 다룬 뮤직 다큐멘다리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스모킹밴드>, 영국 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장선우 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명한 <장선우 변주곡> 등이 상영된다. 또 한국영화 중에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 민병훈 감독의 <괜찮아, 울지마> 세편이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다.

●부산의 자랑 ‘아시아 영화’ 10편

부산영화제가 가장 자랑하는 건 아무래도 아시아 영화다. 아시아 영화에 관한 한 다른 어떤 국제영화제보다도 신작들이 풍성하다. 그중 10편을 추렸다.

허쉬 낙태를 두번한 아사코는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 어느날 게이 커플 가츠히로, 나오야와 마주치고 가츠히로에게 “당신은 아버지의 눈을 지녔다”며 그의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제안한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가츠히로는 아사코의 제안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가츠히로와 아사코의 연정을 기대함직 하지만, <허쉬>가 주목하는 건 가족이다. 가족의 부재로 상실감을 느끼고 새로운 방식의 가족을 꾸려보려 하는 이 `신인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가족 문제에 대한 동시대적 공감대를 구축한다. 퀴어영화 전문감독 하시구치 료스케의 신작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화제작이 될 듯하다.

개의 날 인도 옛 지배층의 오만과 이기심에 대한 무랄리 나이르 감독의 풍자는 직설적이면서도 함의가 단순하지 않다. 한 시골마을의 영주가 주민이 뽑은 지도자에게 행정권을 넘긴다. 아울러 자신의 하인을 독립시키면서 아끼던 개를 선물로 준다. 이 개가 마을 사람을 물어 광견병을 옮기면서 개의 처리를 두고 주민과 영주가 대립한다.

할리우드, 홍콩 <메이드 인 홍콩> <리틀 청>의 프루트 챈 감독이 새로 시작한 `매춘부 3부작'의 두번째 영화. 철거를 앞두고 있는 홍콩 빈민가에 미모의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남자들은 이 여자를 두고 저마다의 팬터지에 빠지지만 본토에서 온 이 여자는 `꽃뱀'이었다. 유머와 팬터지, 엽기까지 곁들여 불확실성 속에 급변해가는 홍콩의 모습을 비춘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러브 레터>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신작으로, 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그늘진 성장기이다. 이지메와 집단폭행, 성폭행까지 등장하는 고등학교 사회의 분위기가 이와이 슈운지의 전작들과 대조적이다. 여자를 역광으로 비추는 이미지 컷과 거친 느낌의 들고찍기 등 화면도 새롭다.

칸다하르 저멀리 둥실둥실 떨어지는 무수한 낙하산에 매달린 건 군인이나 식량구호품이 아니라 의족이다. 뜻밖의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무차별 공격이 어떤 짓인지 보다 명확해진다.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자신과 스태프의 목숨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구성에 힘입어 생생한 `드라마 르포' 구실을 하면서 로드무비의 재미로 넘친다.

델바란 <칸다하르>에 더해, 이란의 `숨은 거장' 아볼파즐 잘릴리 감독의 <델바란>을 곁들여 보면 아프가니스탄의 현재를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카메라는 아버지가 탈레반 진영에 가담한 뒤 난민이 된 소년 카임을 잔잔히 좇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아이처럼 줄곧 뛰어다니는 카임이 사랑스럽고 애처롭다.

밀레니엄 맘보 대만의 허우샤오시엔이 갑자기 왕가위의 스타일 넘치는 영화가 좋아졌을까? 경쟁작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부산을 찾을 그가 이 영화로 받게 될 예상 질문이다. 주제나 형식이 이전 작품과 큰 차이를 보여 아주 흥미롭다.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비키(서기)가 질투심 넘치는 남자친구와 너그러운 중년의 갱 사이에서 겪는 혼돈을 통해 대만 젊은이의 불안을 그려낸다.

거기는 지금 몇 시니? 사람 사이의 단절감을 끊임없이 다뤄온 대만 차이밍량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타이페이와 파리라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인생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에 나오는 소년의 모습과 나이든 현재의 그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붉은 다리 밑의 미지근한 물M <간장선생>에서 이미 보여줬지만,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가 부쩍 욕망을 밝게 풀어헤치면서 자유로운 삶을 찬양하고 있다. 77년을 살아온 노감독의 이 무시못할 충고가 이 작품에 그대로 이어지는데, 맘껏 펼친 성적 상상력이 아주 재밌다. 직장을 잃고 부인과 결별한 뒤 한 노숙자의 `조언'을 따르는 요스케(야쿠쇼 코지) 이야기다.

천년여우 <퍼펙트 블루>로 국내에 알려진 사토시 콘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전작의 명성을 한 단계 높여 이어갈 걸작이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한때 유명했으나 지금은 은둔생활을 하는 노년의 여배우를 찾아가 그가 지닌 과거 사랑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과거의 수많은 사실들의 조각과, 그가 출연한 영화 속의 허구를 기막히게 교차해가며 놀라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임범 이성욱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