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1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2]
2001-12-27

2위. <친구> 흥행 신기록 전국 818만명 동원

“한국영화 모든 기록에 도전한다.” 개봉 첫 주말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말 이틀간 흥행기록을 뛰어넘자 <친구>의 신문광고 전면에 내걸린 카피였다. 당시엔 누구나 ‘과장이 아닐까’ 여겼지만 <친구>의 도전은 성공했다. 3월31일 개봉해 장장 9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134일간 상영된 <친구>가 불러모은 관객 수는 서울 266만6414, 전국 818만1377명. 종전 기록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전국 579만5820명이었다. 코리아픽처스가 전국 직배로 배급한 <친구>는 특히 지방관객의 호응이 대단했다. 이는 서울관객 수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250만9320명으로 <친구>와 15만명쯤 벌어지는 반면 전국관객에서 240만명가량 차이나는 데서 입증된다.

<친구>는 극장에서 배급사로 보낸 부금만 212억원. 일본판권이 210만달러에 팔렸고 여기에 TV, 비디오 등 기타 판권을 합치면 최소 250억원을 벌었다. 이중 10억원은 배우, 감독, 스탭들의 보너스로 지급됐다.

3위. 헌재, ‘헌법대로 해라’ 등급분류 보류 위헌 결정

‘검열은 위헌’이라고 몇번 말해야 알아들을까. 8월30일, 헌법재판소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상영등급분류 보류가 사전 검열조치에 해당하며, 이는 명백히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등급위는 그동안 성과 폭력이 지나치게 과도한 영화에 한해 등급분류를 3개월까지 보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준이 명확지 않은데다 횟수제한 없이 무제한 보류조치를 내릴 수 있어, 상영금지 조치와 다름없다는 영화인들의 비판에 직면했었다. 헌재의 결정 이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11월29일, 등급보류 폐지, 제한상영관 설치를 주내용으로 하는 영진법 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문광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것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 형법 등 다른 법률에 저촉될 경우,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 등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으나, 법사위 심의에서 등급위가 여타 법률에 저촉될 위험이 있을 경우, 관계기관에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4위. 무조건 많이 잡고보자! 와이드 릴리스 강박증

무조건 많은 개봉관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올해 영화시장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주 메가박스의 프로그램을 보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5개관, <화산고> 4개관, <두사부일체> 4개관 등 3편의 영화가 나눠가진 스크린 수는 모두 13개. <아메리칸 파이2> <물랑루즈> <달마야 놀자> 등이 나머지 3개 스크린을 하나씩 차지했지만 16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6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멀티플렉스에 대한 환상을 불식시켜준다. 확실히 멀티플렉스가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를 준다는 홍보문구는 사실이 아니다. 멀티플렉스가 늘면서 영화의 소비속도는 2배 이상 빨라졌고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에 대한 믿음은 부풀어올랐다. 메이저 배급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개봉관 확보 경쟁은 내년에도 크게 나아질 전망이 없다. 개봉관 확보 전쟁이 격화되면서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꽃섬> 등 작은 영화들의 성적표는 더 초라해졌다. 영상원 김소영 교수는 보다 못해 “최소 의무상영일수 보장하라”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5위. 조폭들의 전성시대 조폭영화 흥행 연타홈런

“그래, 나 또 조폭이다. 왜.” <두사부일체>가 내건 이 카피는 올해 흥행경향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친구>로 시작된 조폭 소재 영화들의 흥행가도는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로 이어졌다. 이중 <친구>를 제외한 4편은 어깨에 힘을 뺀 조폭들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이런 조폭 코미디의 흥행에 대해 “현대 한국사회의 속성이 근본에서 조폭과 마찬가지이며 특히 신뢰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공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쨋든 이들 영화가 전부 흥행에 성공한 까닭은 같은 소재를 택하면서도 각 영화마다 신선한 접근법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신사 같은 조폭, 남편감을 구하는 여자조폭, 절로 피신해 스님과 대결하는 조폭, 부패한 학교를 고발하는 조폭 등 연출력보다 기획 아이디어가 돋보인 영화들인 것이다.

조폭영화의 흥행가도는 어디에서 끝날까? 장르라는 것도 대체로 생장사멸의 진화를 거친다는 걸 고려하면 똑같은 흥행공식이 매번 먹힐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기획은 그래서 어렵다.

6위. 최강의 제작사와 배급사 한배 로커스홀딩스, 시네마서비스 인수

지난 2월 전격 발표된 로커스홀딩스의 시네마서비스 인수는 한국영화산업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국내 최대 제작사 싸이더스와 역시 국내 최강의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의 유기적 결합. 단순히 배급라인의 안정화나 강력한 배급력 획득이라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한국영화를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금융자본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의 일부로 기능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같은 ‘금융자본의 영화자본화’는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제작사와 배급사가 공개시장을 통한 풍부한 자금원을 확보했다는 의미도 갖는다. 가장 득을 본 쪽은 풍부한 자금과 다채로운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네마서비스라 할 수 있다. 자매회사 시네마서비스에 배급을 맡길 수 있게 된 싸이더스도 밑질 것은 없었다. 한편 이들의 지주회사인 로커스홀딩스는 희비를 동시에 맛보고 있다. <무사> <화산고> 등 화제작이 개봉할 때마다 이 회사의 주가는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7위. 스탭, 목소리를 높여라! 처우개선운동 활발

“우리가 제작자 시다바리냐,생존권을 보장하라!” 4월 대종상 시상식장의 피켓시위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각된 스탭들의 처우개선 요구는 한국영화가 오랫동안 뒷전에 밀어놓았던 문제를 전면에 올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화, 대형화 등에만 몰두해오던 제작자들에게 자성을 촉구했던 이 허기진 목소리는 비단 잉여의 분배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영화 전체의 발전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충무로는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아직 전반적인 스탭들의 임금이 현실화됐거나 제작환경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제작사가 단계적이나마 개선책을 내놓고 있고, 영화인회의도 제작환경개선 및 근로조건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제야 너무 앞서나갔던 ‘개발논리’를 ‘복지논리’가 뒤쫓기 시작한 셈이다.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던 ‘비둘기 둥지’를 비롯한 촬영감독, 조감독, 미술, 조명 등 조수급 스탭의 모임은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분야별의 요구를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정비기간을 갖는 듯하다. 그렇다고 충무로가 이들의 구호를 망각해버린다면, 들불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8위. 튜브 한쪽 날개 접어 배급 포기

자금줄을 찾기 위한 튜브엔터테인먼트의 ‘방황’은 고되고 험난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시티> <튜브> 등 제작비 5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했던 튜브는 배급업 또한 의욕적으로 펼쳤으나, 지속적으로 ‘실탄’의 부족을 느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뱀파이어 헌터 D> 등 다량으로 구입했던 일본영화도 시장의 외면으로 내놓지 못해 자금사정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양, 유니코리아 등과 접촉을 가지며 길을 찾던 튜브는 결국 CJ엔터테인먼트에 주요 작품의 배급권을 넘기고, 한국영화 소싱을 전담하는 제작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한때 ‘배급 1위’까지 노리던 튜브는 날개를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대마불사’ 전략은 튜브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 말이다. ‘대형 영화를 제작하면, 돈을 잃는다 해도 크게 잃지 않는다’며 블록버스터 대작을 준비해온 튜브는 결국 자본을 대지 못해 배급 포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CJ가 튜브에 손짓한 것도 따지고보면 ‘대마’ 때문이었으니, 이 노선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9위. 부산, 이제는 ‘영도(映都)’ 영화산업의 메카로 도약

갈매기, 바다, 항구, 신발공장의 도시 부산은 올 한해 동안 영화제, 영화 로케이션, 영화산업의 메카로 거듭났다. 올 한해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는 모두 20편. 그중에는 모든 촬영을 부산에서 진행한 <친구>를 비롯,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김해) 같은 흥행작도 포함된다. 지금도 <내츄럴시티> 등 6편이 촬영중이며, 촬영을 협의중인 작품도 30여편에 이른다. 이렇듯 영화제작진이 짐을 싸들고 부산으로 향하는 것은 영상산업을 대표적인 산업으로 꾸리려는 부산시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산하인 부산영상위원회는 장소섭외, 촬영정보 제공 등 각종 지원을 통해 쾌적한 영화 제작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머지않아 ‘영도(映都) 부산’이란 말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부산을 찾았던 제작진이 느낀 가장 큰 문제는 스튜디오 촬영이나 후반작업을 하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11월 문을 연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와 내년 5월 개관하는 부산영상벤처센터는 이같은 갈증을 해소하고, 부산을 명실공히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할 전망이다.

10위. 바람잘 날 없는 영진위, 내분으로 아직도 소송중

정초부터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끄러웠다. 극영화제작지원작 발표와 동시에 선정작에서 탈락한 정진우 감독이 편파심사라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 이에 심사를 맡았던 영진위 위원들은 공연한 딴죽 걸기라고 맞섰고, 도중 유길촌 위원장이 사표를 내는 등 내홍을 겪었다. 한편, 7월27일에는 영진위가 직무불성실을 이유로 조희문 전 부위원장직을 불신임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이용관 당시 부위원장은 이로써 확정판결 때까지 업무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고, 자신을 영진위 부위원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해달라며 조희문 위원이 낸 가처분 신청 역시 기각됨으로써 부위원장석은 공석이 됐다. 8월20일에는 영진위 위원 4인은 위원장이 제작지원 사업 심사위원 선정에 있어 유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등의 이유로 위원장 불신임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영화인회의 등 11개 외곽단체들도 이례적으로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결국 위원회가 연말까지 불신임안 상정을 연기하면서 봉합된 상태. 영진위는 불신임 무효 판결에 대해 항소중이다. 올해 발의된 영화진흥법 개정안은 다음 위원회부터 영진위 부위원장을 비상임직으로 만들었다. 새 위원회는 2002년 5월 구성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