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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끼인 개인은 희생자일뿐 <케이티>
2002-04-17

이봉우(42) 시네콰논 대표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한국영화 11편을 일본에 배급하고 흥행도 성공시키며 일본내 한국영화의 인식을 180도 바꿔놓은 공로자다. 그가 지난 12일 배급자가 아닌 제작자로 한국을 찾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배경으로 한 정치스릴러영화 <케이티>(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시사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자존심 때문에 시작했다 <케이티>에는 디제이(김대중)의 보디가드로 재일동포 청년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일본 여자와 다니면 `조센징'이라 멸시받고,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해 `그러고도 조선 사람이냐'는 말을 듣는 청년 김갑수는 그 어디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씨는 “그게 내 모습”이라고 말했다. 당초 기획보다 김갑수의 비중이 커지도록 요구한 것도 이씨였다. 총련계 학교를 거쳐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이씨가 89년 시네콰논을 설립할 때만 해도 관심사는 프랑스·폴란드 등의 예술영화 배급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영화에 뛰어든 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중국영화' 코너가 있었지만 한국영화는 오직 에로물 코너에 `한국에로'로만 존재했다. 이왕 영화를 하는 것,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재일동포 영화인으로 산다는 것 94년 <서편제>를 수입할 당시 북한 국적이던 그는, 2주일간 한국영사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겨우 이틀짜리 임시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서울에선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외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안기부원들로부터 파리 유학당시 활동까지 조사받아야 했다. 그에게 남한이냐 북한이냐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지만, 결국 96년 국적을 한국으로 바꿨다. <쉬리>를 배급할 때는 “어떻게 북한을 나쁘게 그린 영화를 하느냐”며 총련계 동포들로부터 항의와 원망도 많이 들었다. “북한영화도 좋은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소개할 거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일본인이냐 조선인이냐, 남한이냐 북한이냐라는 식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대한 조직과 이데올로기 안에서 개인은 희생자일 뿐이다.” <케이티>가 정치드라마이기 이전에, 남한 중앙정보부(KCIA)의 조직원 김차운과 일본 자위대원 토미타 소령의 내면이 도드라진 것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선 “좌파가 보면 우익영화로, 우파가 보면 좌익영화라 평가”한다고 전했다. 한국영화 관객을 키워라 그는 “배급자로서 한국영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나의 구실은 끝났다”며 “이제 한-일은 서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혼합문화'로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 한-일 합작영화인 <케이티>처럼 제작과 투자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해 그는 “지금은 거품이 많다. 무엇보다 영화가 작가 위주가 아니라 배급사 위주다. 말하려는 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관객에 맞출 뿐”이라며 “다양한 영화가 관객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정치 때문에 평생 갈등하던 부모님을 보고 환멸을 느껴 문화로 갔지만 그는 “정치적인 것을 완전히 떠나선 의미있는 사회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재일동포 문제나 한-일간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은, “<쉬리>의 홈페이지에 들어온 270만명 가운데 70%가 남·북이 원래 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답”하는 일본에서 그가 살아가는 방식일 게다. <케이티>는 26일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내달 3일 한·일 동시개봉한다.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