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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터] 좋은 사람의 앙상블 - <킹덤> 시즌2 전석호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0-04-02

* <킹덤>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즌3? 죽어도 상관없다. 물론 살고 싶다… 아니, 제발 살려달라!” 배우 전석호는 될 수 있다면 <킹덤>의 세계 안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촬영장에 도착해 분장차에 들어가는 순간을 말할 땐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석호가 연기한 범팔은 무능한 탐관오리에서 외척 가문 중 의외의 생존자로 등극했고, 어쩌다 보니 환란을 직접 통과한 증인의 임무까지 지게 됐다. 범팔의 작은 담력만큼 소소한 성장은 이제 시즌3의 기대 요소 중 하나다. 데뷔 7년차, <킹덤> 시즌2와 방영 중인 드라마 <하이에나>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으로 부지런히 달리기 중인 배우 전석호를 만났다. 드라마 <미생>의 꼰대 상사로 눈도장을 찍은 뒤, 맡는 역할마다 사람 사는 냄새를 진하게 풍겨낸 성실하고 흔들림 없는 배우. 그의 말에 따르면 <미생>과 <킹덤>처럼 반짝이며 각인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출중한 재능들 속에 섞여서 연기하는 매 작품, 매 순간이 터닝포인트”다.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는 배우 전석호에게 앙상블의 기쁨을 들었다.

-겁 많고 허술한 탐관오리였던 범팔이 시즌2에선 끝까지 살아남아 나름의 성장을 보여준다. 범팔의 어떤 매력에 동의했나.

=사건의 전말, 캐릭터의 기본적인 성격 등 모든 것은 대본에 쓰여 있었고 나는 그걸 온전히 믿었을 뿐이다. 범팔은 조금 비겁하고, 약하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살면서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고, 영웅처럼 강해지고 싶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범팔을 연기하면서 이렇게 ‘하찮은 매력’도 나름의 지지를 받을 수 있구나, 확인하고 조금 기뻤다.

-범팔은 가장 현대적인 제스처를 구사하는 캐릭터다. 분위기를 코믹하게 환기하는 역할 덕분인지 관객도 캐릭터의 톤 앤드 매너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분위기다.

-현장에선 논란이 많았다. (웃음) 잔망스럽게 “서비야~” 하며 쫓아다니고, 생사역 떼를 향해 “오지마~ 오지 마~” 하며 호들갑 떠는 모습에 다들 우스갯소리로 “이거 괜찮은 거 맞아?” 했다. 다행히 범팔이 다른 인물들과 관계맺는 방식과 결이 맞다고 봐준 것 같다. 범팔의 현대적인 말투가 수월하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구심점엔 감독님, 작가님, 배우들의 관용이 있었다. 연기는 항상 상대적이다. 다른 배우들이 묵직하게 버텨주니 내가 더 뛰어놀 수 있었던 그 밸런스, 즉 앙상블의 효과였다.

-궁궐 내 전투 신 중에는 범팔이 달려드는 생사역 밑에 깔려서 얼굴 가득 흥건하게 피를 맞는 고어한 장면이 있다. 그 인물이 범팔이기 때문에 B급 뉘앙스가 살아나는 경우라, 범팔은 액션의 변주에도 꼭 필요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난 아무리 해도 (주)지훈 형이나 (김)성규처럼 액션의 태가 안 나오니까. (웃음) ‘오케이, 범팔 느낌으로 가자’ 싶었다. 액션 위에 코믹한 레이어를 인위적으로 한겹 더하려는 의도보다는 그 상황 자체가 중요했다. 생사역과 전투할 때 엄청난 공포를 꾹 참고 견뎌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으아~ 아아~” 하며 본능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범팔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고 나는 그걸 연기하면 됐다.

-범팔은 얄미운 인물이지만 어느새 위험 상황에서 당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라게 된다.

=생각해봤는데,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기록으로 남겨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싸움도 잘 못하고, 강한 사람도 아니고, 부족한 점도 많지만 다양한 구성원 중 한명으로서 누군가는 존재해야 한다는 감각을 범팔 캐릭터가 주는 것 같다. 나 스스로는 범팔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만약 네가 살아남으려면 마땅히 성장도 해야 하고, 세상을 다르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김은희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생>의 꼰대 상사 하 대리 역시 정윤정 작가가 고집한 캐스팅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 전석호에게 맡기면 조금 못나고 불완전한 캐릭터도 마냥 미움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걸까.

=완성된 캐릭터는 여러 가지 선택이 총합된 결과물이다. 글을 쓴 작가님의 선택. 캐릭터를 해석하고 방향성을 잡은 배우의 선택.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준 감독님과 작가님의 선택 같은 것들의 반복과 총합. 나는 그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가능한 한 많이 겪으려는 편이다. 이건 아니라는 말도 듣고, 이러저러하면 어떻겠냐 조언도 듣는 편이다. 좀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어도 창피한 걸 잘 모른다.“어? 이거 아니에요? 그럼 다른 거 해볼게요” 하는 식으로 가지치기하면서 건강한 열매를 기다린다. 아마도 그래서 부족한 처음 단계를 보듬어주는 동료들에게 더 고마운 건지도 모르겠다.

-현장 자체를 무척 즐기는 것 같다.

=엄청 좋아한다! 현장에 있으면 집에 가기 싫다. 누군가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또 나만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도 신경 쓴다. 카메라 안팎으로 끊임없이 관계성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내게는 중요하다. 신기한 게, 우리 현실도 마치 작품 속처럼 사람마다 각자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여유를 불어넣는 사람…. 이를테면 (배)두나 누나가 오면 현장이 바로 밝아진다. 그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미덕은, 최선을 다해 그들과 ‘함께’ 가려는 노력이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을 것 같다. 주지훈, 김성규 배우와 함께 산책 멤버로도 알려져 있다.

=하하. 나는 그냥 노는 걸 좋아할 뿐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따라다니니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셈이고. 시즌1에선 세자 주변의 인물들끼리 ‘독수리 오형제’라고 하면서 놀았는데, 시즌2에서는 나와 두나 누나 둘이 따로 떨어져야 해서 섭섭하기도 했다. 내 경우는 김성규 배우에게도 챙김을 받은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데. (웃음) 산책은 지훈이 형이 워낙 걷는 걸 좋아해서 코스를 주도하고 나와 성규가 따라 걷는다. 걸으면서 작품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리고 서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참 많다.

-영화 <봄이가도>의 경우, 아직 세월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던 시기가 아니었는데, 그것도 신인감독의 영화를 선택했다.

=필요한 작품이었다. 나야 뭐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거대한 포부라기보다는 누군가 하면 좋을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캐스팅이 잘 안돼 고민하고 있다는 감독의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함께했다.

-성폭력 트라우마가 있는 여성의 결혼 생활을 그린 박선주 감독의 단편영화 <미열>에 출연했다가 이를 장편화한 <비밀의 정원>에도 함께했다.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누군가한테 들려줬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여성감독 혹은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막연한 욕구가 있었고 <미쓰백> <비밀의 정원>에 참여했다. <걸캅스> <굿바이 싱글>도 그래서 좋았다. <비밀의 정원>의 단편 버전인 <미열>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는데 개막식 뒤풀이에 갔더니 남자가 나 하나뿐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좋은 사람, 좋은 작품이라는 매개만 있으면 일단 ‘고!’ 한다.

-10대 시절에 <하면 된다>와 <싱글즈>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어떤 기회로 현장에 갔나.

=1999년에 연기학원을 다니다가 신문에서 단역 구인 광고를 보고 <하면 된다> 현장에 직접 찾아갔다. <쇼생크 탈출> <아메리칸 히스토리X> 같은 영화를 보면서 한창 영화감독이 정말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돈이 없어서 학원은 금세 그만뒀지만, 그때 노은주 배우와 인연을 맺으면서 자연스레 연극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재미를 익혔다.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영화를 무척 좋아하셔서 매주 한두편씩 봤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하는 어머니 친구 덕분에 공연도 자연스레 접한 편이다. 집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일단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말을 따랐더니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웃음)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감초 조연이든, 배우 전석호가 연기하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두발을 딛고 선사람 냄새를 풍긴다. 장르적으로 완전히 다른 페르소나를 발현해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을 텐데.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봐주는 분들의 선택에 맡기려 한다. 한때는 내가 그리 대단한 배우가 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렸을 때야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은 꿈을 꾸지만, 현실을 살아보니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기억된다면 그렇게 사라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중요한 건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 테다. 뻔한 말이지만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그 속에서 나도 더 열심히 하고, 조금 더 잘하면 범팔이처럼 계속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씨네21>이 25년을 버티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신기한 날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버틸 수 있을거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세상의 편견을 흔들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배우로서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공식도 받아들이겠지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새로운 공식의 필요성도 느낀다.

<킹덤> 시즌2의 범팔

조씨 가문의 권세에 기대어 얕고 긴 부귀를 누려보려는 탐관오리 캐릭터 범팔이 등장했을 때, 그의 수명을 길게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겁 많고 자주 버벅대는 동래부사 나리가 달려드는 생사역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다만 배우 전석호가 연기했으니 그 매력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의심은 시즌2에 이르러 확신과 놀라움으로 번졌다. 창(주지훈)과 영신(김성규)이 흐트러짐 없이 칼을 빼어들고, 조 대감(류승룡)과 중전(김혜준)은 최후의 독기를 뿜고, 서비(배두나)가 제자리를 홀연히 지키고 있을 무렵에 범팔은 여기저기서 우당탕탕 ‘삑사리’를 냈다. 저 혼자 현대적인 제스처를 구사하는 범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배우도 걱정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결과적으로 범팔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모두 안정적으로 옮기는 <킹덤> 시리즈의 효자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살아남으려면 너도 성장해야지”라고 자기 캐릭터에 주문을 걸었던 배우의 마음가짐은 가끔은 지독히 얄밉고 불완전한 캐릭터에게 보통 사람을 향한 연민을 불어넣었다.

영화

2019 <비밀의 정원> 2019 <영화로운 나날> 2019 <걸캅스> 2018 <미쓰백> 2018 <봄이가도> 2017 <7호실> 2017 <루시드 드림> 2016 <작은 형> 2016 <봉이 김선달> 2016 <굿바이 싱글> 2014 <조난자들>

TV

2020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2020 <킹덤> 시즌2 2020 <하이에나> 2019 <미스터 기간제> 2019 <국민 여러분!> 2019 <킹덤> 시즌1 2018 <라이프 온 마스> 2018 <우리가 만난 기적> 2017 <힘쎈여자 도봉순> 2017 <굿와이프> 2014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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