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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그녀의 노래
강화길(소설가) 2021-03-29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그건 바로 ‘도로시’를 연기한 배우 ‘주디 갈런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 사실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어떻게 어른들은 어린 소녀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다니.

물론, 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아름다움이란 그저 상품을 말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어떻게든 많이 팔리는 예쁘장한 이야기. 그래서 어떻게든 예쁘장하게 포장해야만 하는 이야기. 그걸 위해서라면 어린 소녀의 인생 따위는 뭐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겠지.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그 예쁜 장면들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도로시가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 또 역시 도로시와 세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며 노란 길을 걸어가는 장면, 오즈의 마법사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 같은 것.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앞서 말했듯 <오즈의 마법사>는 정말 유명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나는 살면서 그 장면들을 어딘가에서 한번쯤은 반드시 마주쳤고, 그때마다 속절없이 시선을 빼앗겼다.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촬영 내내 학대당하고, 따돌림당한 여자아이가 고군분투하며 연기한 결과물이 지독하게 아름답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간극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언젠가는 <오즈의 마법사>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기억하고 싶었다. 주디 갈런드가 노래하는 모습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근, 나는 결국 이 영화를 봤다. 부끄럽지만, 그 다부진 결심 때문은 아니었다. 아주 개인적인 이유였다. 최근 나는 ‘악의’와 ‘원한’이라는 주제에 꽤 골몰해 있는데, 그게 나를 은근히 괴롭게 했던 것이다. 기운이 처지는 건 물론이고, 종종 악몽을 꾸고, 쓸데없이 짜증이 많이 났다. 핑계일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내 기분 상태를 그런 식으로 핑계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 같았다.

나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음흉한 것들에 대한 생각은 좀 그만두고 싶었다. 빛이 잘 드는 카페에 가서 산미가 풍부한 아이스커피를 꼴깍꼴깍 들이켜며 시간을 보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단, 마스크 없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어떻게든 빛을 쬐려 노력했다. 밝아지자. 좀 밝아지자. 기분아 좀 나아져라. 그러다가 떠올렸던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컬러풀한 이야기. <오즈의 마법사>.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될 정도로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등장하는 캔자스의 흑백 장면이 끝나고, 허리케인이 일어난 뒤 도로시의 집은 어딘가에 꽝 떨어진다. 그리고 도로시가 문을 열고 나오자 온갖 색감으로 가득한 오즈가 펼쳐진다. 마법이 시작된다. 나는 빨려 들어가듯 그녀와 함께 오즈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를 찍었지? 그것도 1930년대 후반에? 전쟁이 시작될 무렵 아니야? 세상에, 제정신이었던 거야?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서쪽 마녀처럼 도로시의 구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그 구두를 꽤나 탐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서쪽 마녀가 그 구두를 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빨간 구두는 아무리 오래 신어도 발이 아프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데려가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구두를 탐낸 이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이건 꽤 이상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오즈의 세계는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행복만 있는 것 같다. 색색으로 빛나는 세상이다. 어떻게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심지어 도로시가 돌아가려는 곳은 흑백의 세상이다. 캔자스의 외딴 시골집!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면 오즈에 더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로시의 뚝심은 아주 대단하다. 빨간 구두를 신고 오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보다는 오로지 집으로 갈 생각만 하니까.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는 정말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명쾌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건 허수아비의 영리한 머리와, 양철인간의 따뜻한 마음, 사자의 용기라는 것. 그들을 친구 삼으라는 것.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그걸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그걸 찾을 수 있다. 도로시의 간절한 진심이 구두의 마법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건 꽤 놀라운 선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화는 당시 주디 갈런드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꽤 피폐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영화의 아름다움은 상당히 인공적이고, 그래서 무척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전쟁에 나간 사람들에게 고향은 그런 느낌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대단한 곳. 어떻게든 돌아가야만 하는 곳.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주디 갈런드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았고, 많이 슬펐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동안 찾아다녔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을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다줄 마법의 구두를 말이다. 오즈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이건 오만한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누군가의 삶을 그렇게 함부로 확언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는 건 그저 어쨌든 이 비현실적인 영화가 무척 아름답다는 것이고, 영화 속의 주디 갈런드는 사랑스러운 소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둘 다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한다. 도로시와 주디 갈런드. 그들이 딛고 섰던 오즈의 세상을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또다시 악몽을 꿀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노래가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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