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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회 칸영화제 Canne 2002 - 영화귀족들, `현실정치`를 고민하다
2002-05-21

제55회 칸영화제 5월15일 개막, 린치와 크로넨버그의 반전된 승부 관심 집중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프랑스의 남부 휴양 도시 칸은 이상 저온에 휩싸였다. 유난히 휴일이 많은 5월 초의 프랑스,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은 초겨울을 방불케 하는 쌀쌀한 날씨에 흠칫 놀라 일정을 당겨 귀향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롤러코스터에 다름 아니었던 프랑스 대선의 여파이기도 했다. 극우주의를 내세운 르펜이 1차 투표에서 놀라운 선전을 보인 데 경악한 유권자와 미디어가 합심해 2차 투표에서 시라크의 압도적인 우승을 이끌어냈지만, 니스와 마르세유, 그리고 칸에선 오히려 르펜의 지지율이 30%로 상승하는 이변을 낳았던 것이다. 이에 유대계 미국인들은 칸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였고, 영화제가 시작된 뒤에도 이곳에 모인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칸의 정치색에 대해 잦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올 칸영화제의 화두가 ‘정치와 사회’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9·11 이후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칸의 영화귀족적인 자부심은 여전하다. 프로그램의 면면은 차치하고라도,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이 아니면 공식 시사회에 참석시키지 않는다든가, 일반 관객은 대부분의 이벤트와 시사에서 배제시킨다든가(일반 관객의 매표소는 작은 천막 덜렁 하나다), 프레스도 등급을 나눠 차등을 둔다든가, 하는 식의 운영 방식이 그러하다. 세계 각지에서 무려 4천여명의 취재단이 몰려들었다는 올해는 더 까다로워졌다. 누군가는 이번 영화제가 9·11 이후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취재단은 모든 행사장에 입장할 때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보여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어쨌거나 ‘철통 수비’ 속에 쇼는 시작됐다. 선글라스 없이 견디기 힘들 만큼 햇살이 눈부시던 지난 5월15일, 전세계에서 몰려든 영화팬과 취재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뤼미에르 극장으로 향하는 붉은 주단 위로 올 영화제의 스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우디 앨런을 비롯한 개막작 <할리우드 엔딩> 팀에 이어, 데이비드 린치, 샤론 스톤, 양자경, 크리스틴 하킴 등의 심사위원단이 등장했고, 마틴 스코시즈, 아녜스 바르다, 뤽 베송, 줄리 델피, 레티시아 카스타, 밀라 요보비치에다 장 자크 엘라곤 신임 문화부 장관 등도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입장할 때 흐르던 음악이 심사위원장인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작곡하고 트럼펫으로 연주한 <칸 메모리>라고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막식 사회는 <비치> 의 여배우 버지니 르드와옌이 맡았다. 올해로 55회를 맞는 칸영화제는 ‘자축’의 의미로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제의 프로그램 책임자에서 조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질 자콥이 칸영화제의 전성기를 회고하는 <칸영화제 이야기>라는 이색적인 단편을 손수 만들어 선보인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찰리 채플린, 앨프리드 히치콕, 잔 모로, 구로사와 아키라 등 위대한 영화인들에 대한 경배, 노동자들의 시위로 영화제가 무산됐던 1968년의 기억, 최근 칸을 빛낸 얼굴들을 몽타주해, 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질 자콥에 이어,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이는 ‘역시’ 우디 앨런이다. 순이 프레빈의 손을 (매달리다시피) 잡고 붉은 주단을 오를 때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우디 앨런은 질 자콥에게 감사패를 전달받는 자리에서도 5분여의 기립박수와 열광을 어렵사리 ‘견뎌냈다’. 그는 불편하고 어색하게 굳은 얼굴을 풀지 못한 채 “프랑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한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다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영화로 돈을 못 번다고 예술가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난 둘 다 아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그는 개막작으로 선정된 <할리우드 엔딩>을 “트뤼포, 고다르, 레네…. 프랑스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과 추억을 담은 영화”라고 소개해,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자기 영화를 못 보는 성격 탓에) 상영 직전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크로넨버그, 에고이얀 등의 신작에 관심개막식에 앞서, 같은 날 오후에는 데이비드 린치를 위시한 심사위원단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올 공식 경쟁부문의 심사위원단은 ‘남자 감독’과 ‘여자 배우’로만 구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심사위원장인 데이비드 린치는 심사의 기준이나 방향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대신 심사위원단의 ‘팀워크’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린 어젯밤에 처음 만났는데, 느낌이 아주 좋다. 건설적인 토론을 자주 하게 될 것 같고, 하나의 공통된 결과를 내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과연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의 라이벌격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스파이더>에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반대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1999년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스트레이트 스토리>로 경쟁부문에 왔었고,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호사가들은 이번에는 칼자루를 쥔 데이비드 린치가 크로넨버그에게 비슷한 방법으로 ‘복수’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두고 볼 일이다.개막식 다음날인 16일부터 본격적인 상영이 시작됐지만, 17일 현재까지 이렇다 할 화제작이 나오진 않았다. 행사 중후반에 기대작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 <취화선>의 공식 시사도 폐막 전날인 25일로 잡혀 있다. 칸에 모인 기자와 평론가들의 기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스파이더>, 아톰 에고이얀의 <아라라트>,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 쏠려 있다. <스파이더>는 크로넨버그 자신이 “프로이트식 멜로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는 작품으로, 정신병력이 있는 남자가 과거의 기억을 짜맞추는 과정을 따라잡는다.

<아라라트>는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경쟁이 아닌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다. 민감한 사안을 다룬 만큼, 감독 본인이 경쟁부문에서 평가받는 걸 부담스러워해 비경쟁으로 유치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피아니스트>는 폴란스키의 자전적인 면이 반영됐을, 모국 폴란드의 과거에 관한 영화다. 한편 <리베라시옹>은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 다르덴 형제의 <아들>, 아톰 에고이얀의 <아라라트>, 지아장커의 <미지의 즐거움>, 마이클 윈터바텀의 을 5대 기대작으로 뽑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올 칸영화제는 그 자체로 프랑스 대선의 파장 안에 있다. 올 출품작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도 다수의 작품이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와 에고이얀의 <아라라트>를 비롯,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아모스 기타이와 팔레스타인의 엘리아 술레이만이다. 아모스 기타이는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이야기 <케드마>로, 엘리아 슐레이만은 팔레스타인 남녀의 사랑을 그린 <신성한 중재>로 칸을 찾았고, 이곳 언론이 그 둘을 자주 짝지어 비교하곤 한다. 이 밖에 2000년 황금카메라상 수상자 바흐만 고바디는 쿠르드 난민의 이야기를, 샹탈 애커만은 미국의 멕시칸 이민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 역시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지아장커와 류빙지엔은 중국 정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출품해, 이곳 칸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칸영화제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과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팜므파탈>을 깜짝 상영 리스트에 올려놓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칸=글 박은영 cinepark@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취재지원 성지혜▶ <할리우드 엔딩> 감독 우디 앨런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