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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평 아파트에 드리워진 그림자
2001-04-11

<베사메무쵸> 촬영현장

소란은 금물이다. <베사메무쵸>의 촬영장인 양수리 종합촬영소. 본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렸는지 검은 패딩 점퍼를 두른

이미숙의 코 훌쩍이는 소리만이 스튜디오의 공기를 흔든다. 이미숙은 한 신 촬영이 끝나면 곧바로 감독 옆에 놓여진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서

모니터를 응시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 두번째는 어떻게든 하려고 해. 그런데 더 잘 안 돼. 그래서 세 번째는 하기 싫어져.”

한참을 들여다보다 이미숙이 전윤수 감독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 18평 아파트에 네 아이들과 따뜻한 보금자리를 영위하던

부부가 남편의 실직이라는 사건 앞에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만반의 준비를 한 카메라도 긴장한 것일까. 숨을 죽이고 인물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카메라도, 예기치 않게 끼어든 실수 앞에 잠깐 당황스러워 한다. 영희의 손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다시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스탭이

묻자 박희주 촬영감독은 “그냥 가자”고 한다. 대충 찍자는 말인가. 아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들의 감정’을 다치지 않는

것이다. “한번 더 슛하면 뽀시시하게 찍히겠죠. 그런데 배우들 감정의 농도는 묽어져요.” 전윤수 감독의 말이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조감독을 거쳐 <베사메무쵸>로 데뷔하는 그는 “트렌디한 감성보다는 견고한 드라마에 무게를 두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올해 강제규필름이

제작하는 첫 번째 영화 <베사메무쵸>는 전체 촬영 분량 55회 중 22회를 소화한 상태다.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

◀이건 진짜가 아니다. 전윤수 감독은 스튜디오

내에 아파트뿐만 아니라 유치원, 놀이터, 우체통 등등 카메라가 아파트 안에서 움직이게 될 때를 대비해 배경 세트까지 만들었다.

◀늦은 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영희의 분노에

걷어차이는 건 고장난 세탁기뿐이다. 철수는 그런 아내의 발길질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거 소리 죽인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삑삑거리는 세탁기를 눌러가며 장난치던 이미숙은 발차기 뒤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지 몇번씩 전 감독을 불러댔다.

◀철수가 아이들의 발을 만지는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광렬은 이날 모니터 앞에서 서성거리기보다 혼자서 음악을 듣는 컨트롤 방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