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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2차대전 돌입
2001-05-29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시작으로 10편이 넘는 2차대전 소재 영화 봇물

<진주만>의 귀청을 찢는 폭격은 40분으로 끝났지만, 스크린의 포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에 따르면 이미 개봉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주만> 외에도 2001년 들어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산업이 손댄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의 편수는 무려 한 다스에 육박한다.

2001년에 제작되는 신작 2차대전 영화들이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테마는 다른 국민, 다른 민족, 적군과 아군 사이에 발생하는 우정과 사랑, 즉 인간적 교감. 8월에 개봉하는 존 매든 감독의 <코렐리 대령의 만돌린>에서 그리스섬에 주둔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장교(니콜라스 케이지)는 마을의 정취에 동화되고 그리스 아가씨(페넬로페 크루즈)와 사랑에 빠지면서 점령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역시 케이지가 주연하고 MGM이 제작하는 오우삼의 <윈드토커>는 원주민어 암호로 일본군에 대항한 나바호족 요원과 그를 보호하는 백인 남성의 활약을 그린다. 오우삼 영화답게 두 남자의 끈끈한 우정이 영화의 핵심. “오우삼도 나도 처음에는 수없이 다뤄진 2차대전이란 소재에 시큰둥했지만 이야기 속 인종문제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제작자 테렌스 창의 말이다. 영국식 표현으로 ‘팬티’라는 의미의 재미난 제목을 단 <닉커스>는 필름 포가 제작하는 르네 젤위거 주연의 영화. 나치에 뜻하지 않은 훈련을 받고 런던의 상점에 취직해 다우닝가 총리 관저의 전화 메시지를 빼내라는 지령을 받은 르네 젤위거가 점원 이원 맥그리거를 사랑하면서 일이 꼬인다. <빌리 엘리어트>의 주연 제이미 벨을 캐스팅한 <누가 거기에 가는가?>는 웨일스 한 마을에 들어온 독일 U-보트 수병과 마을 소년의 우정과 배신을 뒤쫓는다.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 스티븐 달드리도 전장으로 간다. 그의 스릴러 <하이딩 룸>은 북아프리카에서 피어나는 영국 정보 장교와 피신중인 유대인 여성의 로맨스. 데이비드 린 영화급의 스케일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샐리 포터 감독도 신작 <우는 남자>에서 크리스티나 리치, 조니 뎁을 기용해 집시 청년과 유대계 러시아인 처녀의 사랑을 그린다. <우는 남자>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케이트 블란쳇은 12월 개봉예정인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샬럿 그레이>에서 공군 파일럿 애인을 찾겠다는 희망으로 프랑스 저항군을 돕는 스코틀랜드 여성으로 분한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 <애수>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줄리언 무어 역시 <파리 언더그라운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다. 에타 시버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파리에서 생활하던 미국 여성과 영국 여성이 나치 점령에 저항하는 무용담. 한편 짐 셰리던 감독의 차기작 <독의 부엌>은 히틀러의 권력 장악 과정을 설명하는 드라마로 알려졌다. 미국 TV에서도 ‘2차대전 호황’은 마찬가지. 미니시리즈 <안네 프랑크>까지 세편의 2차대전물이 전파를 탔으며,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편당 제작비 1200만달러를 쏟아부은 10부작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러더스>가 9월에 HBO채널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이같은 2차대전 영화 붐에 대해 피츠버그대학에서 전쟁사를 연구하는 도널드 M. 골드스타인 교수는 “2차대전은 미국인들에게 이제 미국이 ‘악당’에 대항하는 확실히 ‘좋은 편’으로 참전했던 좋은 전쟁으로 비치고 있다”고 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민주주의를 수호한 ‘십자군 전쟁’이라는 2차대전의 이미지를 할리우드가 더욱 로맨틱하게 덧칠하고 있다는 것. 골드스타인은 또한 전쟁의 살상을 최대한 노골적으로 찍고 그것을 관람하는 것이 참전 세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읽히고 있다는 것이 최근 전쟁영화의 특이한 현상이라는 흥미로운 관찰을 덧붙였다.

김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