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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통신] <오디션>을 모르면 뉴요커가 아니다?
2001-09-05

뉴욕극장가, 일본호러영화들에 대한 관심고조

올 여름 뉴욕 극장가의 승자를 묻는다면 단연 <오디션>과 <큐어>를 앞세운 일본 호러영화라 답할 만하다. 이른바 영화를 챙겨본다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오디션> 봤니”가 인사말이 될 정도였다면 대충 상황이 짐작되리라.

이미 한국뿐 아니라 각종 세계영화제에서 독특한 개성을 인정받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은 신작 <죽거나 살거나>의 개봉에 이어 8월 초 예술영화전용관 필름 포럼에서 등급없이 개봉했다. 일단 뉴욕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봉 직후 주말 매진사례를 빚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멍든 영화팬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

한편, 전주영화제를 통해 한국에도 알려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작 <큐어> 역시 7월 말의 특별 회고전에 이어 <오디션>과 나란히 개봉함으로써, 일본 호러영화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이들 작품이 외국영화의 마지막 관문이라 할 뉴욕에 가뿐히 안착한 여정에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일단 외국영화에 관한 한 뉴욕은 유행에 느리다. 혹은 조심스럽다.

구로사와 감독은 1999년 <인간 합격>으로 뉴욕영화제에 초청될 때만 해도 특이한 장르 변주 작업을 계속하는 감독으로 이해되었지만, 올해 칸영화제에 <거대한 환영>이 소개된 이후 LA, 보스턴, 뉴욕에서 특별 순회 회고전이 상영되는 등 80년대 뉴재팬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람결에 실려온 이들 영화에 대한 소문에 덧붙여 결정적인 성공의 문을 열어준 것은 콧대 높은 뉴욕 언론들. 아시아영화의 흥행에 영향력 있기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엘비스 미첼은 <오디션>이 “감정의 디테일을 쌓아올리는 것은 오즈 야스지로의 손길을 연상시키며, 예측불허의 반전은 오 헨리의 스토리를 더글러스 셔크가 영화로 만들었음직한 가장 인상적인 공포영화”라는 찬사 일색의 평을 실어 매진사례에 한몫했다. 이와 더불어 구로사와에게는 프리츠 랑,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예프스키까지 동원된 이례적인 호평이 쏟아졌다.

한편, <큐어>를 적극 지지한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이나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의 평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바로 장르의 변주가 쟁점이 된다는 것이다.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구로사와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모방하지 않고도 독특한 방식으로 장르영화의 관습에 기여하는 일본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스스로 ‘장르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것이 영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뉴욕 평단이 구로사와와 미케에게서 발견하는 미덕이 있다면, 할리우드와 소통할 수 있는 장르의 규칙을 활용하면서도, 소진해가는 장르의 관습에 수혈을 해줄 “독창적인(혹은 이국적인) 아우라”를 지녔다는 점이다. 뉴욕 평단에서 외국영화 비평의 제1원칙이 작가주의임을 고려할 때, 적당히 자극적인 장르 비틀기는 외국감독들이 제2, 제3의 히치콕으로 불리더라도 일단 관심권 내에 들게 하는 충분조건이 된다.

그러나 한편, 외국영화들이 얼마나 할리우드 장르를 학습하고, 여기에 약간의 이국적인 터치를 가하느냐로 이어지는 이러한 장르론에서 장르영화의 종주국(?)으로서의 거만함과 함께 외국영화를 수용하는 다양한 시각의(혹은 정보의) 부재를 엿보는 것은 이방인의 지나친 의심일까. <오디션>의 경우처럼,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절묘한 심리극으로서의 복합성, 피와 비명이 튀지는 않지만 극장문을 나서며 섬뜩해지는 <큐어>의 공포의 근원은 다른 곳에 맥락이 가 닿을지 모른다.

물오른 일본호러영화의 틈새에서 9월 초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산 호러영화 <텔미썸딩>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