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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올해만 같아라`
2001-12-26

한국영화 산업이 올 한해에 두배로 성장했다. 4~5년 전부터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지만, 올해 한국 영화의 성장세를 나타내는 통계수치들은 실로 놀랍다. 경제 전반이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로 대중문화를 주도한다. `조폭' `엽기' 등 대중문화를 특징짓는 대다수 키워드를 영화가 만들어낸다. 일시적 거품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지만, 최근 영화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벤처캐피탈에 더해 은행권의 자금까지 영화계로 유입될 조짐을 보이는 등 계속 뒷심이 따라붙고 있다.

관객 80%, 매출액 102% 증가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7일 올해 초부터 12월15일까지 서울 관객 추이를 기초로 `2001년 영화산업 규모예측'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 영화의 극장상영 매출액은 지난해 1209억원에서 올해 2444억원으로 무려 102.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지역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관객수에, 지난해 지방에서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관객수의 비율을 곱하고 여기에 입장료 상승분을 포함시킨 수치다. 지방에서 한국영화 관객의 증가율이 서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런 예상치가 실제보다 낮으면 낮았지 높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료는 또 한국영화 관객이 지난해 2271만명에서 올해 4073만명으로 79.3%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외국영화 관객은 지난해 4190만명에서 올해 4159만명으로 0.8%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화 외화 합해 전체 관객이 지난해 6462만명에서 올해 8232만명으로 27.4%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는데, 그 증가분을 고스란히 한국영화가 가져간 것이다. 이에따라 올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5.2%에서 49.5%로 올라서서 점유율 50%의 시대를 맞게 됐다.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이런 수치를 보이는 건, 전세계에서 미국을 빼고 프랑스와 타이 정도다.

역대 흥행순위 10위 안에 한국영화 7편

올해는 영화흥행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한해였다. 서울관객 120만명, 전국 350만명을 넘는 한국영화가 무려 5편이 나오면서 올해 흥행 1~6위 안에 들어갔다. <친구>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등 이들 5편이 역대 흥행 순위 10위(서울관객 기준) 안에 새로 들어가 한국영화가 기존의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와 함께 7편이나 차지했다.

한국영화가 역대 흥행작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국내 배급사와 할리우드 영화 직배사 사이의 역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90년대 초반 국내 영화관객의 70%까지를 가져갔던 워너브라더스, UIP, 브에나비스타, 콜롬비아, 20세기폭스코리아 등 5개 할리우드 영화 직배사가 올들어 지난 3분기까지 배급한 영화의 서울 관객 점유율은 37.5%에 그쳤다. 이는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배급사 두 곳의 같은 기간 점유율과 동일하다. 직배사들은 한국영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해부터 한국 영화의 배급에 나서 올해 UIP를 제외한 4개사가 <소름> <고양이를 부탁해> 등 8편을 배급했다. 그러나 <번지점프를 하다>를 빼고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고, 얼마 전부터 몇몇 회사의 매각 내지 합병설도 간간히 나돌고 있다.

낙관과 우려

한국영화의 성장세에 대해 앞으로도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앞으로 4~5년 동안 한국영화에 투자하려는 돈들이 보장돼 있다. 99년 무한영상벤처 투자조합을 시작으로, 중소기업진흥청의 지원을 받은 영화투자 전문 펀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20여개의 펀드가 조성됐다. 이들 펀드는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핫머니가 아니라, 5년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발이 묶여 있는 돈으로 규모가 모두 1800억원에 이른다. 또 중기청과 관계없이 미래에셋 영상펀드와 삼성벤처투자 두곳이 영화에 250억원을 굴리고 있다. 이들 벤처 캐피탈에 더해 최근에는 문화방송, 서울방송 등 방송국들이 영화투자를 준비하고 있고 하나은행 등 은행권 자금도 영화로 들어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서울 외곽의 수도권 도시와 지방의 대도시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방에서 서울보다 빠른 속도로 영화관객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청신호이다. 99년과 2000년을 비교할 때 부산 관객은 22%, 인천 71%, 경남 30%, 경기 34%가 늘었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극장의 전국 스크린 수는 지난해 92개에서 올해 147개로 더 늘어났다. 영진위는 올해 1인당 평균 영화관람횟수가 지난해 1.3회에서 1.7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혜준 영진위 정책실장은 “1인당 평균영화 관람 횟수가 선진국 평균 수준인 2회로 올라서면 연 관객 1억명, 극장 매출액 7천억원의 영화시장이 갖춰지는 것”이라며 “앞으로 3~4년 안에 그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영화의 질과 다양성이다. <친구> <조폭마누라>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에 더해 <두사부일체>까지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5편의 관객이 2200만명으로 올해 전체 한국영화 관객의 55%를 차지한다. 이 5편을 빼고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산정하면 30% 밑으로 떨어진다. 이런 계산은 가정부터가 억지스런 면이 있지만, 올해 한국영화 관객 동원의 절반 이상이 유사한 소재의 반복에 힘입고 있다는 건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이미 검증된 흥행의 코드만 쫓아 유사한 영화들을 내놓는다면, 액션과 코디미로 일관하다가 가라앉은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라며 “기획의 안이함을 피하고 아울러 해외시장 개척에도 더 노력을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