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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로나19 시대에 프랑스영화계가 대처하는 방법

건물 외벽의 야외 상영회

예술영화관 ‘라 클레’의 야외 상영회.

3월 17일 이후 프랑스의 시계는 멈춰 서 있다.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문화 행사가 연이어 취소되었고, 전국 2200개 극장, 5천여개의 스크린이 8주째 완전히 활동을 멈췄다. 정부는 2200억유로(약 290억원) 규모의 영화긴급지원금을 발표했지만 프랑스 영화관 연맹의 리처드 파트리 대표는 3억유로(약 4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프랑스 영화산업이 제대로 된 산소통 없이 깊은 잠수를 강요받고 있는 동안, 3월 미국 VOD 플랫폼 서비스에 가입한 프랑스인들은 46%로 전년 대비 무려 10%나 증가했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관객이 아예 극장에서 영화 보는 ‘습관’을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파트리 대표는 이 시기만 지나면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올 거란 낙관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격리 기간 동안 스트리밍 사이트가 이렇게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영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티고 리서치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2.2%의 프랑스인들이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극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5월 11일 격리 완화 조치 계획에 따르면 식당, 커피숍, 대형 박물관을 비롯해 영화관은 무기한 영업 중단 리스트에 올라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칸국제영화제도 베니스·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5월 말부터 온라인에서 공동으로 이벤트 행사를 치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극장의 아늑한 어둠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이들은 그야말로 숨통이 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라 클레라는 예술영화관이 작은 산소주머니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4월 10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9시, 극장이 위치한 동네 건물의 벽에 프로젝터를 이용해 야외 상영회를 진행하며 ‘이미지의 격리 해제’라는 모토를 내건 것. 프로그램은 찰스 로턴의 <사냥꾼의 밤>(1955), 킹 비더의 <스타가 아닌 사나이>(1955) 같은 고전 작품들이다. 이 뼛속 깊이 아날로그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주체는 바로 예술영화관 지킴이 운동을 펼치는 ‘라 클레 리바이벌’이다. 68혁명의 혼란한 상황에서 문을 연 이 유서깊은 극장은 2018년 4월 소유주인 캐스 데판 은행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매각해 공식적으로는 영업이 중지됐다. 하지만 2019년 9월부터 감독, 촬영기사, 관객 등으로 구성된 시네필들이 영화관을 강제 점거하고 예술독립영화 상영, 문화 행사 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반항아들이 격리 기간 동안 투쟁의 수치를 한층 높여 야외 상영을 기획한 것. 매주 금요일, 집 테라스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동네 주민들뿐 아니라, 30명 남짓한 시네필들이 이들의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 벌금형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와 영화를 감상하는 특별한 상영회가 이어진다. OTT가 영화시장을 잠식하는 지금, 이 엉뚱한 소규모 동네 상영이 프랑스 극장의 앞날을 비출 자그마한 불빛처럼 보인다면 착각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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