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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DVD·비디오 올 가이드(2)
2002-10-11

네번의 웃음과 한번의 눈물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년 86분 출연 폴레트 고다드, 헨리 버그만

개봉 당시 <뉴욕타임스>는 <모던 타임즈>가 1936년에 대한 경멸을 1913년의 채플린이 가졌던 매너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 영화에서 룸펜이 아닌 노동자로 변모한 찰리는 기계의 리듬에 신진대사를 맞추는 무리한 작업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몸과 공장 시스템에 신경쇠약에 의한 고장을 일으킨다. 산업사회의 메트로놈에 강제로 비끄러매진 인간의 패닉상태는 버스터 키튼이 이미 오래 전부터 스크린에 옮겨온 주제다. 그러나 세계 여행길에 마주친 방향을 상실한 동시대인의 얼굴에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이끄는 동력으로 떠돌이 찰리의 정감어린 얼굴을 사용했다. 산업화된 1930년대의 세계에는 떠돌이의 자리가 없다. 그는 감옥이나 병원 밖에서는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마침내 20여년간 실존하는 어떤 인간보다 사랑받았던 채플린의 떠돌이 찰리는 선창가 소녀의 팔짱을 끼고 관객에게 마지막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간다. 공장에 남아 싸우는 대신, 어딘지 모를 먼 곳으로 도시 아닌 어딘가를 향해 영원히 떠나간다.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1940년 128분 출연 폴레트 고다드, 잭 오키

후대의 연구자들은, 채플린이 사회의 비판자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까웠다고 평했다. <위대한 독재자>는 미국이 히틀러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리하기 전인 1940년에 파시즘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를 촉구했다.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 최초의 토키영화였다. 그러니까 입을 떼자마자 내뱉은 채플린의 제1성은 파시즘을 향한 악담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전쟁의 쇼크로 기억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지다가 유대인 게토의 가게로 돌아온 이발사 찰리와, 찰리와 똑같은 외모를 지닌 토메니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힌켈을 오간다. 떠돌이 찰리의 마지막 희미한 그림자가 깃든 캐릭터인 이발사는 말수가 적고 독재자는 시종 말의 홍수를 쏟아낸다. 그러나 과묵하던 이발사는 클라이맥스에서 인간성에 대한 길고 열정적인 연설을 토해낸다. 이 연설은 찰리 채플린의 허구의 캐릭터 찰리에서 분장을 벗은 채플린으로 이행하는 첫 번째 순간이기도 하다. 유성영화 처녀작인 <위대한 독재자>에서 채플린은 공들인 버벌 개그(verbal gag)를 선보이는 욕심도 부렸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빗댄 박테리아의 나폴로니 등등 말장난과 힌켈의 장광설은 요즘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살인광시대 Monsieur Verdoux 1947년 120분 출연 마사 레이, 이소벨 엘솜

<살인광시대>는 프랑스의 연쇄살인자 랑드뤼의 이야기를 대공황 시대로 옮겨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본질에 대한 비판과 연결하고자 한 작품이다. 베르두 씨는 유럽에 몰아친 공황으로 성실한 은행원으로서의 긴 봉사도 보람없이 몰락한다. 이 사회가 다른 방향의 두뇌와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유복한 독신녀들을 겨냥한 중혼과 연쇄 살인을 가족을 위한 새로운 생업으로 삼는다. 베르두 씨의 여인들 중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남편의 온갖 함정을 유쾌하게 피해나가는 ‘철의 여인’ 애나벨라 역의 배우 마사 레이는 <키드>의 재키 쿠간과 함께 채플린 영화에서 채플린의 존재감에 밀리지 않은 드문 연기자로 남았다. 채플린 특유의 센티멘털리즘을 제거한 연출은 프랑스에서 호평을 얻었으나 관객은 베르두 씨에게 끝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데에 실패했다. 베르두 씨의 대사처럼 “리듬은 깨졌다”. 그러나 장 르누아르는 ‘아니다, 베르두 씨는 찰리 채플린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글에서 “이전까지 찰리의 모험담은 일종의 동화였지만 <살인광시대>에는 그런 불명확함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 영화를 옹호했다.

라임라이트 Limelight 1953년 140분 출연 클레어 블룸, 버스터 키튼

“뭐가 그리 급한가?” 영락한 과거의 코미디 스타 칼베로는, 자살을 기도한 이웃 처녀 테리의 목숨을 살려준 뒤 묻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채플린의 마지막 영화 <라임라이트>는 관객을 더이상 웃기지 못하는 늙은 어릿광대와 발의 마비로 좌절한 발레리나의 만남을 따라간다. 칼베로는 삶에 통달한 노인의 지혜와 선의로 테리의 심인성 마비를 고치고 다시 무대로 돌려보내지만 테리가 생의 의지를 회복하자 이번에는 칼베로가 흥행주들의 냉대에 부딪혀 낙망한다. 테리는 칼베로에게 청혼하지만 그는 젊은 반주자와 테리의 행복을 기원하며 ‘가장 떳떳한 무대’인 길거리로 나선다. 채플린의 소년 시절 런던 거리를 재현하고 무대 인생의 쓸쓸한 뒤안길을 비추는 <라임라이트>는 대단히 사적인 영화다. 심지어 채플린의 다섯 자녀가 조연, 단역으로 출연했고 아내 우나 오닐 역시 블룸의 대역으로 모습을 보인다. <라임라이트>는 너무 길고 잦은 공연장면으로 호흡이 끊기고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하지만, 마르셀 카르네의 <천국의 아이들>이 지녔던 시정(詩情)과 품위를 잃지 않는다. 채플린이 선동가들의 표적이 되는 동안 천천히 잊혀지는 방식으로 노년의 수모를 겪었던 버스터 키튼과 짝을 이룬 공연장면은 놓칠 수 없는 영화사의 한 장면이다.

뉴욕의 왕 A King in New York 1957년 120분 출연 돈 애덤스 올리버 존스턴

미국과 차갑게 절연한 채플린은, 망명한 왕의 이야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발견하고 영국 셰퍼튼스튜디오에서 <뉴욕의 왕>을 제작했다. 혁명으로 나라를 떠난 소국 에트로비아의 샤도브 왕이 선택한 망명지는 다름아닌 뉴욕. 샤도브 왕은 리츠 호텔에 피난처를 마련하지만 이내 자기가 도망쳐온 소란보다 더한 혼돈 속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와이드스크린 영화, 성형수술, 로큰롤, 상업광고 등 1950년대 미국 문화를 조목조목 조롱하던 채플린은 마지막으로 매카시의 마녀사냥에 복수의 화살을 겨눈다. 채플린의 아들 마이클이 공산주의자 부모를 둔 조숙한 소년으로 분해, 패스포트 없이 국경을 넘지 못하는 사회의 자유가 갖는 허구성을 공격하는 대사는 채플린 일가가 겪은 수난에 대한 노골적인 항의로 들려 미소를 자아낸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채플린의 단편영화들슬랩스틱과 스턴트, 짧고 진하게

채플린의 단편영화들은 두종의 DVD 박스세트로 나와 있다. 씨넥서스에서 출시한 3장짜리 디스크는 장편 <키드> 외에 단편 8편이 들어 있다. 채플린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건립해 만든 첫 작품 <개의 삶>은 길잃은 개와 떠돌이 찰리의 유사성을 그린다. 길 뒤편 공터에 웅크려 자는 찰리와 개의 유대감은 개를 바지 속에 감춰서라도 술집에 함께 가는 우정으로 발전한다. <개의 삶>(A Dog’s Life)의 직업소개소 장면은 슬랩스틱의 진수다. 창구 맨 앞에 서려는 찰리의 투쟁은 눈물겹게 절박한 것이건만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처럼 찰리를 외면한다. <어깨총>(Shoulder Arms)에선 군인이 된 찰리를 볼 수 있다. 뒤로 도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골칫거리가 되는 고문관 찰리의 모습은 초기 심형래의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어깨총>은 고문관 찰리가 독일 황제를 포로로 잡는 영웅이 된다는 몽상을 그린 작품이다. <위대한 독재자>는 <어깨총>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온 셈이다. <유한계급>(Idle Class) 역시 <위대한 독재자>에 영감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찰리는 여기서 떠돌이와 부자라는 상반된 캐릭터의 1인2역을 소화한다. 늘 피해자의 입장에 섰던 찰리가 이 영화에선 유유히 골프치는 한량으로 등장, 한바탕 소동을 불러온다. <봉급날>(Pay Day)은 찰리의 놀라운 액션 스턴트를 볼 수 있는 영화다. 아래에서 던지는 벽돌을 손과 다리, 엉덩이를 동원해 척척 받아올리는 모습은 역영사의 방식으로 찍은 대목이라 해도 감탄스럽다.

스타맥스에서 출시한 4장짜리 디스크에는 4편씩, 16편이 수록돼 있다. 이들 단편 가운데는 후일 장편영화에 응용하는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스파링 파트너를 하다 시합에서 챔피언을 이기는 이야기 <챔피온>(The Champion)은 후일 <시티라이트>의 권투시합으로 부활하고 <이민>(The Immigrant)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배 장면은 <황금광시대>에서 절벽에 걸린 집을 연상시킨다. <링크>(The Rink)에서 <모던 타임즈>에 나왔던 찰리의 롤러스케이트 솜씨를 다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백화점주인>(Floorwalker), <방랑자>(The Vagabond), <전당포>(The Pawnshop), <자립재정>(Easy Street)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 DVD 외에 비디오로도 <찰리 채플린 단편 모음집>이 나와있는데 이 비디오에 실린 단편 6편 가운데 DVD에 없는 작품은 <순례자>(The Pilgrim) 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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