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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DVD·비디오 올 가이드(1)
2002-10-11

네번의 웃음과 한번의 눈물

키드 The Kid 1921년 68분 출연 (채플린 외) 재키 쿠간, 에드나 퍼비언스

프랑수아 트뤼포는 ‘찰리 채플린은 누구인가?’라는 글에서, 가난을 묘사한 예술가는 채플린 외에도 있었지만 그만큼 가난을 가까이 아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런 까닭에 채플린은 어떤 동료보다 카메라 앞에서 빨리, 멀리 달렸다고 썼다. 초기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키드>의 밑바탕도, 가정을 등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 수용된 어린 찰스가 런던의 거리에서 맛본 굶주림과 경찰에 대한 두려움, 홈리스의 불안이다. 사건은 불행한 미혼모가 부잣집 자동차에 버린 아기가 우연의 장난으로 작은 떠돌이의 품에 떨어지면서 시작한다. 영화는 5년 뒤로 날아간다. 키드와 떠돌이는 한 사람이 유리창을 깨면 한 사람이 갈아 끼우고 팬케이크도 똑같이 반으로 갈라먹는 환상적인 파트너가 돼 있다. 채플린 영화의 모든 가련한 소녀가 그렇듯 결국은 부와 명성을 얻은 생모가 떠돌이와 키드가 사는 거리에서 자선을 베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촬영 시작 2주 전에 생후 3일된 첫 아들을 잃는 아픔을 삼킨 채플린은 <키드>를 “미소, 어쩌면 눈물 한 방울이 있는 영화”로 소개했지만 대중은 이 영화에 폭소와 진한 눈물로 반응했고 <키드>가 얻은 호평은 이후 채플린의 장편영화 창작욕을 북돋웠다. 씨넥서스 클래식 컬렉션에서 나온 3장짜리 DVD 세트의 첫 디스크에도 수록돼 있다.

파리의 여인 A Woman of Paris 1923년 90분 출연 에드나 퍼비언스, 아돌프 멘조

한두개의 릴로 영화가 끝나는 원 릴러, 투 릴러를 대체한 장편의 등장은, 극적 감정을 숙성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의미했다. 그것은 감성을 건드리는 슬랩스틱 코미디언 채플린에게 희소식이었다. 채플린이 “내가 출연하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비극”이라고 오프닝 자막을 붙인 <파리의 여인>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지붕 아래에서 그가 만든 첫 장편으로 채플린의 벗이자 히로인이었던 에드나 퍼비언스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최루성 멜로드라마의 공식인 간발의 차로 엇갈리는 운명과 여인수난기로 이루어진 <파리의 여인>은 초창기 영화에서 물려받은 정적이고 평면적인 스타일로 연출되었다. 애인을 만나러 몰래 밤 외출을 했다 쫓겨난 마리는 애인의 부모에게서도 내침을 당한다. 역에서 잠시 집에 다니러 간 그녀의 연인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발이 묶이고 속단한 여자는 홀로 도시로 와 부유한 바람둥이의 애인이 된다. 에드나 퍼비언스의 커리어는 이후 내리막길이었으나 채플린은 나이 들어가는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계약을 유지했다.

황금광시대 The Gold Rush 1925년 72분 출연 맥 스웨인, 조지아 헤일

금광 개척자들이 서부로 향하던 높은 희망의 시대. 작은 떠돌이도 알래스카 클론다이크로 향한다. 두터운 외투 한벌도 없이 언제나와 같은 헐렁한 입성으로. 찰리는 덩치 큰 빅 짐과 보금자리를 만들지만, 거구의 룸메이트는 정신이 나가면 찰리를 치킨으로 오인하는 못 믿을 친구다. 황금의 심장을 끝까지 잃지 않은 떠돌이는 천금과 사랑을 품에 안지만, 이 해피엔딩은 차라리 백일몽처럼 보인다. 그것은 <황금광시대>가 그린 추위와 허기의 고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황금광시대>에 나오는 빵과 포크의 댄스와 구두를 먹는 식사장면은 아마도 영화와 팬터마임 사상 추위와 허기의 고통에 대한 최고의 표현일 것이다. 한때 계급구조에 편입되지 않은 인간의 자유를 암시했던 떠돌이 찰리의 유연한 육체는, 그가 인파에 휘말리고 눈보라에 흔들리는 <황금광시대>에 이르러 더 거대한 흐름에 포획당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비디오로 출시된 <황금광시대>는 훗날 채플린이 대사와 해설을 덧붙인 1942년 수정판이다. 얼라이엔터테인먼트의 찰리 채플린 컬렉션1에도 수록돼 있다.

서커스 The Circus 1928년 72분 출연 메르나 케네디 앨런 가르시아

어릿광대를 연기하는 찰리 채플린이란 지나치게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서커스>는 광대의 애환과 페이소스를 설교하는 대신, 절묘한 몸의 코미디와 흥미진진한 상황을 연쇄시켜 관객을 최대한 즐겁게 한다. <서커스>의 천막을 지탱하는 기둥은 낯익다. 가련한 소녀와 서커스 단장인 가혹한 아버지가 있고 거기에 선량한 떠돌이가 끼어든다. 이 트라이앵글은 핸섬한 줄타기 재주꾼이 입단하면서 깨어지고 떠돌이 찰리는 고이 품어온 반지를 연적에게 건네는 고귀한 포즈를 취한다. 원숭이들과 씨름하며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는 줄타기 곡예 등 스턴트와 동물연기가 어우러진 슬랩스틱 연기가 화려한 작품. 거울 방에서 벌어지는 어지러운 추격전은 오슨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명장면을 예고한다. 소녀와 젊은이를 맺어준 떠돌이는 서커스 마차들이 떠난 자리의 흙먼지 속에 홀로 남는다.

시티라이트 City Lights 1931년 87분 출연 버지니아 셰릴, 해리 마이어스

이미 무성영화가 가버린 시대의 유물이 된 1931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라는 점에서 <시티라이트>는- 5년 뒤의 <모던 타임즈>와 함께- ‘저항의 영화’라고 불릴 만하다. 채플린은 토키가 영화의 시적 성격을 말살한다는 초기 비평가들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사운드의 도래가 작은 떠돌이의 임박한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예감하고 있었다. 천덕꾸러기 떠돌이는 어느 날 꽃 파는 눈먼 소녀와 만나 사랑하게 된다. 떠돌이가 목숨을 구해준 술꾼 백만장자는 취했을 때만 은인을 알아보고 돈을 빌려준 찰리를 도둑으로 몬다. 자기를 부자로 믿는 소녀의 개안 수술을 위해 찰리는 안간힘을 다하지만 정작 소녀의 눈뜸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점이 <시티라이트>의 눈물겨운 패러독스다. “당신인가요?” 눈뜬 소녀와 떠돌이의 재회에서 채플린이 짓는 마지막 미소는, 주로 힘세고 돈많은 자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을 속일 때 짓던 떠돌이의 보통 웃음과 달리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비굴하지 않은 그의 미소는 행복하면서도 너무나 어색해 가슴아프다. 그러나 <시티라이트>의 엔딩은 1930년대까지 채플린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모호하다. 떠돌이는 행복해진 여주인공과 맺어질 것인가? 가까운 친구로 초대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어느 추운 새벽에 보퉁이를 들고 지평선을 향해 떠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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