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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3)
2002-11-22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섯가지 이유

가해자가 누구인지 분명한 억압이 그렇지 않은 억압보다 낫다고 말하면 무리일까.70년대 지식인과 학생을 감옥으로 보낸 건 박정희 정권이었고,노동자들을 최저생활로 내몬 건 재벌이었다.고문당한 피의자에게는 고문경관이 있고,매맞는 아내에게는 폭력적인 남편이 있다.그러나 네팔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행려병자로 몰려 6년이 넘도록 정신병원에 사실상 ‘감금’돼 있어야 했던 찬드라 꾸마리 구릉에게,가해자가 누구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가 힘들다.그녀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진 뒤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아는 이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지의 정신병원에서 강제투약을 받으며 지낸 그 세월이 어떠했을까.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믿거나 말거나,찬드라의 경우>(가제)는 92년 36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던 네팔 여인 찬드라의 실제 사건을 다룬 실화다.박 감독은 지난 9월 이 사건을 다루겠다고 마음먹은 뒤 찬드라의 공장 동료,경찰,정신병원 의사 등 사건 관련자들을 만났다. “경찰은 찬드라를 당연히 한국 사람으로 알았다고 한다.어떤 의사는 말이 안 통하는 상태에서 정신감정이 어렵다고 하는가 하면,다른 의사는 말을 몰라도 행동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며 찬드라에게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도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일까. “찬드라가 다니던 공장 관리는 널린 게 외국인 노동자인데 정신병 환자 같았다면 왜 고용했겠냐고 한다.멀쩡했다는 것이다.그러나 경찰이나 의사들,아무도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함에도 외국인일 거라는 의심을 안 했거나, 했더라도 무성의하게 지나쳤다.찬드라가 국적과 여권번호를 밝혀, 조회를 의뢰받은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국적의 철자가 틀린 걸 보고는 여권번호가 맞음에도 무시해버렸다.이런 무성의함이 바로 차별이라고 보는 거다.” 행정편의주의 내지 관료주의를 지적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무성의함을 보였다는 건, 그 ‘모두’에게 공통된 편견이 있기 때문일 터.이 사건은 외국인,그것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의 외국인을 업신여기는 문화가 한국에 만연해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불분명할지 몰라도 메시지는 분명하다.영화광으로 소문난 박 감독이 직설적으로 메시지만 실어나를 것 같지는 않다.그는 찬드라를 화면에 보여주지 않고,대부분을 찬드라의 시점숏으로 찍을 예정이다.이런 식이다.경찰관이 카메라(찬드라)를 보고 취조하다가,카메라가 옆으로 비켜서면(찬드라의 시점에서 제3자 시점으로 이동하면) 그 카메라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에 응하듯 당시 정황을 회고한다. 찬드라의 시점에 서는 카메라는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또 박 감독은 찬드라가 말하는 네팔어의 한글 자막도 대부분 생략할 계획이다.관객은 찬드라의 입장에서,또 경찰이나 의사의 입장에서 역할을 바꿔가며 그들의 답답함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적으로는 90% 가까이를 시점숏으로 찍는 게 흥미로울 것 같다.이 소재에 맞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인다.실질적으로는 네팔인 여성을 연기시킨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미학이라는 게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닐까.” 박 감독은 이 단편의 러닝타임을 20분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제작비가 5천만원밖에 지원되지 않지만 지난 10월14일(확인) 네팔 현지촬영까지 떠났다. 처음엔 디지털로 찍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키네코 비용을 지원받으려 했다가 그게 잘 안 돼 필름으로 찍는 쪽으로 계획을 바꾸는 중이다.“원래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인권에 관심이 있다면 있는 쪽이고.이 프로젝트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글 임범 isman@hani.co.kr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어떤 영화제발 내 말을 들어주세요

네팔 여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은 92년 2월 단기비자로 한국에 온다.서울 광진구의 섬유회사에 취업해 일하다가 93년 11월 동료들과 말다툼을 벌인 뒤 무작정 기숙사를 나온다.한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지갑을 공장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된다.사정을 설명하려 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 한다. 식당주인은 행려병자가 무전취식을 한 것으로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한국인과 똑같이 생긴 찬드라의 외모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한 경찰은 그녀를 ‘심신미약자’로 분류해 정신병원에 넘긴다.정신병원에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그녀에게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 붙는다.공장에선 행방불명 신고를 하지만 끈이 닿지 않은 채 찬드라는 낯선 땅, 말도 안 통하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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