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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4>
2002-12-07

˝5세대의 배신을 넘어, 지하전영은 전진한다˝

정성일: 그런 것이 디지털의 실험성과 경제성이라면, 그렇다면 당신이 이끌리는 디지털의 미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아장커: 서사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시나리오에 기대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마치 글을 쓰는 것처럼 영화를 찍게 만듭니다. 생각하는 것을 바로 영화로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은 고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화면과 화면의 합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영화방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예는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입니다. 회화를 찍었고,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다시 찍은 사람을 한 화면으로 합성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생각하지 않은 영화의 한 방향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디지털영화가 좋은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표류하는 느낌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마음내키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자유자재로 찍을 수 있다는! 최후에 완성될 작품이 어떤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성일: 칸영화제 올해 경쟁부문에 왔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이라는 디지털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까 거기서 키아로스타미는 제작, 감독, 각본, 촬영, 조명, 편집, 녹음을 혼자 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원 맨 밴드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있습니까

지아장커: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만들 영화에서 아마 제가 모든 것을 다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큐라고 부르기에는 뭐한 영화인데, 제가 찍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사람을 찍어보는 것입니다. 여행지는 외지, 산촌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을 별로 안 하는 사람들을 찍어보고 싶습니다. 사람들과 교류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딪쳐보고 싶습니다. 아마 진짜 생활, 사실적인 생활 안에서 그 사람들이 갖게 되는 진실성, 아마 그 사람들의 상황을 그대로 찍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그것을 하나의 에피소드 식으로 찍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주 활짝 열린 영화를 찍어 보고 싶습니다.

정성일: <임소요>에 사용된 디지털 기종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지아장커: 디지털 베타랑 소니 PD150.

5세대, 블럭버스터로의 전향

정성일: 비공개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번 부산영화제 오프닝으로 장이모의 <영웅> 상영 여부가 논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03년 베를린영화제 오프닝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장이모의 <영웅>을 혹시 보았습니까

지아장커: 못 봤습니다.

정성일: <귀주이야기> 이후 시골에서 자기방식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제5세대의 선배가 갑자기 중국영화에서 블록버스터영화를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당신 지하전영 세대들의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지아장커: 장이모와 같은 감독이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붉은 수수밭>이나 <홍등>, 또는 <상해 트라이어드>에서도 그러한 변화의 과정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이모가 <영웅>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장이모나 첸카이거는 어떻게 보면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예술영화로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더이상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각도에서 또 다른 영웅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특히 장이모는 이런 가치관, 그중에서도 할리우드의 오스카 콤플렉스가 무척 심한 것 같습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 <영웅>이라는 영화는 제작과정에서도 항상 오스카상 후보에 어떻게 선정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 영화가 단지 어떠한 상을 받기 위해서 모든 제작과정의 통제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자기 원칙들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죠. <영웅>은 지난달 선전에서 일주일 동안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오스카상 후보가 되기 위한 작은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서 그 영화를 보러 온 모든 관객이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몰래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이것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공동적으로 지켜야 될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요. 만약에 한 관객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몸수색을 당하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된다면, 이것은 예술로서의 영화, 영화를 보러온 관객에 대한 대단한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장이모의 영화 자체에 대한, 예술에 대한 의식, 감독의 태도와 그리고 바깥에 있는 세상의 시선이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뭐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이 영화를 봤던 평론가들이 저한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평화라는 의도로 반항을 포기한 얘기를 다룬 영화같다나요. 비굴한 타협이지요. 이 영화는 영웅이 되기 위해 노예가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2월20일에 중국에서 상영합니다. 그때 저는 꼭 가서 볼 겁니다.

정성일: 아마도 이런 결과를 갖고 오게 된 계기는 리안의 <와호장룡> 인 것 같습니다. <와호장룡>은 아마도 전세계적인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화어권 영화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허우샤오시엔이 인터뷰에서 무협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아연실색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외국 자본이 당신들 세대에게도 어떤 형식으로든지 간에 그런 성공을 일정 부분 요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와호장룡>은 당신들의 세대에 어떤 영화입니까

지아장커: 제 생각에 <와호장룡>은 우리 지하전영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와호장룡>은 우리가 하려는 작업과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리안의 영화가 성공했다는 것이 굉장히 기쁩니다. 문제는 한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게 뭔가, 자기가 작업하려는 방향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영화 속에는 각양각종의 감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원하는 이런 작품을 찍는 감독이고 이런 작품이 일으킨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과정 중에 그런 즐거움만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