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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2002 외화 비망록 [2]
2002-12-27

최고의 허풍쟁이부터 최악의 키스신까지

최고의 캐스팅 최악의 캐스팅

우리는 영화가 인간을 존중하길 요구한다. 특히 실재한 인물을 다루는 전기영화일 때 기대치는 한없이 치솟는다. 더블린 출신 작가 아이리스 머독과 영문학자 존 베일리의 오래 지속된 연애를 그린 <아이리스>의 주디 덴치, 짐 브로드벤트 커플은 머독과 베일리라는 두 인물뿐 아니라 둘 사이의 공기까지 맑은 거울에 비춰냈다. 반면 원작의 캐릭터를 ‘연쇄살인’한 캐스팅은 <레드 드래곤>의 에드워드 노튼과 랭프 파인즈. 노튼은 악과 교감하는 자기 혈관 속의 어둠을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를 싸움터로 몰아세우는 FBI 요원 그레이엄의 신경증에 감염되는 데 실패했고, 랠프 파인즈는 학대당한 트라우마와 외모 콤플렉스의 노예가 된 돌로하이드가 되기에는 거북살스럽게 잘생긴 사내였다.

올해의 동물: 거미

2002년은 아라크노포비아(거미공포증) 환자에게는 길고 눅눅한 악몽이었다. 올해 영화계를 접수한 동물은 여름 이후 쉬지 않고 은막 위에서 스멀거린 타란튤라의 후예들. <스파이더 맨>은 슈퍼 거미에게 물린 고교생 토비 맥과이어의 새로운 능력을 통해 거미가 얼마나 멋진 동물인지 널리 알렸다. <프릭스>의 유독성 폐기물에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거미떼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아라고그 무리는 왠지 닮아보여 워너브러더스의 재활용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망막을 더듬는 로보틱 거미도 뺄 수 없다.

붕어빵 상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슈팅 라이크 베컴>에는 데이비드 베컴이 나오지 않는다. 베컴과 부인 빅토리아의 대역 뒷모습이 마지막 장면에 섭섭하게 공항을 지나갈 뿐. 세 예지자의 예언이 분열될 때 소수자 의견을 기록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는 필립 K. 딕의 원작과 달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타이틀다운 비중을 갖지 못했다.

베스트 의상

브래드 피트가 ‘가을의 전설’ 의류 브랜드를 연다고 했었나 여성 관객에게 “내 남자친구에게 입히고 싶은 옷”으로 몰표를 얻는 올해의 의상은 <어바웃 어 보이>의 휴 그랜트 옷장에서 나왔다. 아무렇게나 만진 머리, 집히는 대로 걸친 옷처럼 보이지만 막대한 유산으로 유지한 스타일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반면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기타노 다케시의 원색 하와이안 셔츠는 꼬마의 ‘엄마 찾아 삼만리’ 보호자로서는 매우 눈치없는 코디네이션이었다. 올해의 의상상은 <로얄 테넌바움>의 천재지변에 가까운 천재 집안 뉴욕의 테넌바움 가족이 단체 수상했다. 기네스 팰트로의 팬더형 눈화장과 라코스테 원피스, 언제든 대피 5분 전인 벤 스틸러 삼부자의 빨강색 아디다스 추리닝에 이웃집 작가 일라이의 카우보이 룩까지 섞어놓고 보면 <섹스 & 시티>의 이른바 뉴욕 스타일은 몹시 지루하게 느껴진다.

최고의 허무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좋을지. <쓰리> 중 세 번째 에피소드 <고잉홈>의 한의사 여명은 3년간의 지극한 간호가 겨우 빛을 봐 죽은 아내가 되살아나는 날 연행된다. 독약 들이켜는 타이밍을 잘못 잡았던 셰익스피어의 두 연인이 이만큼 억울했을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주인공 베흐자드도 올해의 ‘황금삽’ 트로피감. 외진 마을에 출장온 탓에 베흐자드는 잘 안 터지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멀리 높은 언덕 꼭대기로 숨이 턱이 닿게 차를 몬다. 하지만 상사의 지시를 고대하는 그의 귓전에 울리는 건 “애비냐” 하는 어머니 목소리. <위대한 비상>의 철새들을 기다리는 허무는 거의 장엄하다. 팔이 짧아 뻔히 눈뜬 채 알을 도둑맞는 펭귄, 수만km를 고통스럽게 비행한 끝에 폐유에 발이 잠겨 레저 생활을 즐기는 사냥꾼 총에 맞아 추락하는 새들의 퍼덕임 속에 생은 고요히 계속된다.

베스트 에로티시즘

성(性)은 어둡고 습한 그 무엇이 아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이 투 마마>의 대담한 섹스장면은 포르노적 상상력도 얼마나 유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목욕타월만 두르고 샴푸를 빌리러 간 소년에게 여인이 말한다. “타월 벗어봐.” “가리지마.” “금방 커지네.” “한번 크게 해봐.” “도와줘” “내 가슴 볼래” “나도 좀 해줘.” 포르노가 무색한 대사지만 <이 투 마마>의 성적 판타지는 짜릿하면서도 다음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프닝의 섹스장면에서 여자친구에게 “여행 가서 이탈리아놈들과 안 잘 거지”라고 묻는 순진함과 풋풋함이 시종 유지되는 탓이다. <이 투 마마>에 겨룰 만한 섹스장면은 <몬스터 볼> 정도. “내 몸이라도 즐겁게 해달라”는 대사는 할리 베리의 몸매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만큼() 처연하다. 섹스신은 없지만 <워터 보이즈>의 소년 수중발레단은 여성 관객에게 <반지의 제왕> 못지않은 스펙터클을 서비스한다. 그야말로 ‘육체의 향연’이다.

최고의 팀워크 최악의 팀워크

스티븐 소더버그의 완전범죄 계획에 동참한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의 스타 군단은 <오션스 일레븐> 극중에서도 절도계의 드림팀이었다. 저마다 다른 장기와 단점을 지닌 남남끼리 프로젝트 팀으로 잠시 모여 들려주는 완벽한 잼 세션의 상쾌한 미학을 <오션스 일레븐>은 보여줬다. 방과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지구를 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파워 퍼프 걸>의 시끄러운 세 소녀도 스파이스 걸이 떠난 땅에서 걸 파워의 기치를 세웠다. 콩가루 팀워크의 대표는 한 감독이 “못 만든 옴니버스의 모범사례”라고 일컬은 <텐 미니츠 트럼펫>. 마치 각 감독의 영화에서 몇분씩 빌려와 이어붙인 듯하다는 험구를 들었다. 죽느냐 죽이느냐 게임에 갇힌, 그러나 끝내 패배하지 않았던 <배틀 로얄>의 불운한 클라스메이트들은 어느 쪽으로나 기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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