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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2]
2003-01-27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과 우디 앨런

당시 신사동 사거리에는 극장이 세개 정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새로 생긴 그랑프리였고 건너편에는 브로드웨이라는 극장이 있었다. <브로드웨이를 쏴라>라는 커다란 극장 간판은 맞은편 브로드웨이극장에 마치 선전 포고를 하듯 향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그것을 보며 낄낄거렷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건 그렇고 극장에서 대하는 우디 앨런의 작품 <브로드웨이를 쏴라>는 나에게 코미디영화가 주는 풍자와 해학의 극치를 경험케 해주었다. 채즈 팔민테리의 안상적인 연기는 아쉽게도 출연하지 않은 우디 앨런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워주었고, 브로드웨이의 허와 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진짜 예술가는 과연 누구인지를 영화는 쉴새없는 웃음 속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잠깐 생각난 김에 옆길로 이야기를 돌려보면(원래 난 주위가 산만한 성격이라 매번 이런 식이다), 이번에 우디 앨런에 대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나이였다. 50대 후반 정도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나였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최근 신작을 발표해 한국 개봉을 기다리는 그는 1935년생이다. ‘후아~!’ 우리나라 나이로 70살인 것이다. ‘읍스!’ 우디 앨런이 이제는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 이영순 여사와 동갑이라니! 따져보니 그렇게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유머로 가득했던 <브로드웨이를 쏴라>가 그가 예순이 넘어서 만든 작품이었다는 것에 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69년에 <돈을 갖고 튀어라>를 시작으로, 34년간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출했으니 원로 중에 원로가 아닐 수 없다. 잠시 놀라움을 이쯤에 접어두고 다시 본 얘기로 돌아가보자(사실 내 얘기는 항상 그렇지만 뭐가 본질이고 뭐가 사족이고 이런 게 없다. 그냥 지 생각나는 대로다).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는 기쁨에 들떠 있던 어느 날 동네 비디오 가게에 들른 나는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구석 후미진 곳에서 먼지에 쌓인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했다. <돈을 갖고 튀어라>, ‘우디 앨런 감독’ !!! 그건 뭐랄까 심마니가 출출하던 참에 비빔밥 해먹으려고 뒷동산에 미나리 캐러 갔다가 산삼을 발견한 그런 기쁨이 아니었을까 나는 ‘심봤다’ 대신에 우디 앨런의 모국어로 환호했다.

“오마이 갓!오케바리! 댓츠 얼라잇!” 그의 데뷔작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몇백원주고 빌리게 되다니…. 뉴욕 빈민가에서 자란 유대인 아이가 범좌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그의 영화들 중 가장 나를 웃긴 영화가 아닌가 싶다. 친구들과 함께 사탕기계(동전을 넣고 돌리면 사탕이 나오는) 속에 손가락을 넣어 사탕을 몰래 빼먹다가 자기 차례가 된 어린 우디 앨런이 손가락이 빠지지 않아 범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과정부터 멍청한 도둑이 되서 번번히 잡히고.감옥에서 탈옥을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이 정말 포복절도하게 만들어준다.

< 돈을 갖고 튀어라>가 그의 영화 중 제일 많이 웃었던 영화라면 가장 내맘에 든 영화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다. 기존의 그의 영화와는 달리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들이 참여해 열연한 뮤지컬영화다. 줄리아 로버츠, 드루 배리모어, 에드워드 노튼, 골디 혼 등등이 출연했으니 이 정도면 사실 스타시스템에 기댈 수 있는 혹은 그 시스템에 우디 앨런이 가려질 수 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하고 또 지금 사랑을 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랑에 흔들리는, 혹은 불타는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전편을 흐르고 있다.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울고, 웃고, 속고, 시샘하는 게 사랑의 속성이 아닌가. 그런 사랑의 속성을 그린 이 영화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은 현대판 사랑의 전래동화 같은 느낌이다. 이 영화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준비하고 있는 <불어라 봄바람>이라는 영화가 아무래도 이 영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살의 철없고 의욕만 있던 항준이에게 코미디의 새로운 기쁨과 가치를 일깨워준 그가 이제는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항준이에게 아직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잇다는 사실이 왠지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일흔살의 피터팬 우디 앨런 감독님께 짧은 편지 한장을 띄우며 글을 마칠까 한다.글 장항준 <라이터를 켜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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